공간의 전이를 통해 감각의 교차를 꿈꾸는 공간, 신어지당(新語之堂)

육상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5-09-01 11: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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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출입문은 가시와 비가시의 세계로 나뉘는 감각의 교차점이었다. 입구의 좁은 통로는 조도가 거의 없는 어둠이 습지의 안개처럼 가득했다. 90도로 꺾인 코너에 장승처럼 서 있는 반사경은 내방객의 신원을 조사하듯, 날 선 자세로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반사경에 비친 반대편의 공간으로부터 전해오는 작은 빛은 막연한 불안감을 상쇄했다. 사무 공간 ‘신어지당’의 손님맞이는 무심코 들어 선 흑백영화관의 긴장감 그 자체였다.

영감을 이끌어 내는 먹의 공간 



‘신어지당’은 시너지를 내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더 시너지스트’의 스튜디오 이름이다. 새로운 공간 언어를 고민하는 집단 혹은 공간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곳은 디자이너의 영감을 끌어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명확한 콘셉트에 충실하고자, 입구부터 매우 독특한 방식의 공간 감각을 시연한다. 이는 디자이너가 매일 쌓이는 경험적 감각을 고스란히 클라이언트에게 수혈하고자 하는 더 시너지스트의 전략적 의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간의 내부는 입구에서 느낀 긴장감을 순식간에 해체할 만큼 소박하고 느슨하다. 공예 기운이 려 있는 사무실은 일과 쉼이 공존하는 유유자적함으로 가득하다. 전통 소재의 한국적 공간을 그들만의 시선으로 디테일하게 재해석한 결과이다. 다실의 좌식 테이블과 익숙한 고전 소품, 직선의 빛을 스며듦의 빛으로 치환한 삼베 커튼, 조각보, 도자기, 부채 등이 걸러진 여린 빛에 몸을 맡기고 있다.



더 시너지스트가 공간을 구축하는 방식은, 반복 없이 저마다 다른 방식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와 손끝의 감각을 공간 전체로 전이하는 공예적 건축의 대가인 스위스 건축가 ‘피터 춤토르’로부터 수혈 받고 있음을 자인한다. 이는 다름과 지속의 감각적 전이에 맞닿아 있다.

빛과 사물의 교차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전이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신어지당은 전이 공간(轉移空間)의 가치를 담고 있다. 공간의 전이는 물리적 이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러함에서 저러함으로의 심리적 변화도 같이한다. 그래서 전이 공간은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이며, 어떤 심리적 변화를 통해 공간을 경험하게 할 것이냐를 결정짓는다. 몇 걸음, 몇 초 일지 모르는 그 순간에서 감정의 전이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때론 명상적이고 철학적 상태에 놓일 수 있으며, 그것은 가볍거나 혹은 무겁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어지당은 최소화한 빛과 한 사람의 통행을 고려한 복도 폭, 그리고 징검다리 구조를 차용한 바닥의 타일, 그 사이에 놓인 화산석을 희미한 빛을 따라 발을 옮기다보면, 직전의 외부 감정과 태도가 순식간에 소멸되고 오롯이 현재의 몸의 감각에 집중하게 된다. 이 순간적 감정의 전이는 오롯이 공간의 물리적 변화에 의한 것이다. 그렇게 동선을 따라 내부 공간에 들어서면 감각과 감정은 또 다른 공간에 집중하게 되는, 단계적 전이 상황에 고스란히 몰입하게 된다.

사무공간의 혁신적 발상  


 

 

업무공간을 디자인할 때, 업무를 보는 공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완충 공간이다. 다양한 방식의 업무 형태를 지원하고 다층적 방향으로의 사고를 이끄는 공간, 어떠한 행위도 강요하지 않는 일상과 업무의 경계를 완충하는 유용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곳에서는 다실이 그 역할을 한다. 혼자의 다실은 명상의 공간, 여럿의 다실을 마당 같은 공간이다. 하나의 기능만이 아닌 행위와 목적, 시간의 차별에 따라 반응하는 다목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다실을 계획함으로 인해서 공간의 가변성은 필연적 요소이다. 공간을 설계할 때 가변성을 둔다는 것은 행위의 다양성과 재미를 부여하는 것이며 서로 다른 시간대의 역할이 교차하는 지점이 된다. 가변적 공간을 위해서는 행위에 대한 분석과 심리에 대한 관찰, 기술적 해결과 심미적 절충을 필요로 한다. 더 시너지스트는 미팅이나 회의 뿐 아니라 특강, 세미나 등 공간에서 일어날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공간의 가변 확장성을 고민하였고, 수단에 있어서는 한국 전통 가구의 디테일에서 힌트를 얻었다. 

 


미닫이와 여닫이를 복합화 한 방식을 빌미로 다실과 샘플실 두 공간은 확장 및 중첩으로 기능과 재미를 더한다. 다실에는 방문자 또는 신어지당원의 미각을 채우기 위한 다과 준비 공간이 있다. 이곳은 다실에서의 진입 뿐 아니라 별도의 숨겨진 진입로가 있다. 두 번째 가변적 요소는 복도 중간의 45도 거울은 다과 준비 공간이 숨겨진 동선이자 문이다. 이 45도 거울 문은 열기 전까지는 벽처럼 존재하지만, 다과 준비를 위해 밀어 열면 빛이 쏟아지는 공간이 열린다.

좌식의 다실은 손님들이 편하게 단을 오르도록 다듬잇돌을 두었다. 시류에 벗어나 쓰임을 다한 것이지만 위치 값과 용도를 재구성한 다듬잇돌은 묘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다실을 마주한 샘플실은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위한 사물이 전시된 곳으로 공간디자인이 사물디자인으로 전환되는 공간이다. 또한 샘플실과 시각적으로 연결된 온실은 입식 회의 공간으로 회의 테이블 상부와 측면을 삼베 천으로 감싸 노출 콘크리트의 차가운 물성을 감쇄하고, 소리의 울림을 가라앉혀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업무 공간 외의 공간은 조명을 최소화하여 빛과 형태가 만드는 그림자가 공간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나도록 한 것도 빠뜨릴 수 없는 요소이다.

목재 없는 목재 공간 



신어지당에서 목재를 쉽게 감지할 수 없다. 합판으로 공간을 분할했지만 묵직한 먹의 질감으로 목 무늬를 감춘 덕분이다. 합판의 결에 산수화의 먹 감도를 다층적으로 올려 통일감과 다양성을 얻어냈다. 이를 통해 전체 공간의 맥락이 이어지는 느낌과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렴한 재료인 합판을 이용 ‘익숙한 것에서 찾는 낯섦의 즐거움’을 주며, 전체 공간적 성격, 느낌과의 조합으로 포괄적 시각을 구사하고 있다.

향후에는 신어지당이 좋아하는 공예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으로 신선한 감각이 풍성한 공간에 시각적, 촉각적 즐거움을 주는 목재의 안정감과 편안함을 가질 계획이다. 이롸 함께 주목되는 것은 벽면을 두른 목재 선반의 구조와 기능이다. 각목을 연결한 선반은 합판 벽면의 한쪽 얼굴이자 가구로서 다용도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매우 간결한 기법으로 재료의 특성과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신어지당’은 예술과 공학,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설계와 시공 등의 다양한 과정과 관계에 있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선택적 공간이다. 공간, 분위기, 감정, 생각의 전환을 일으키고자 공간 전환의 컨디션, 환경과 공간의 성격, 진입 방식 등을 제공한다.

이는 고착화된 공간이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과 느낌을 발전시키는 공간이다. 그래서 ‘우리의 다음 공간은 또 어떤 방식으로 전이해서 구현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또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재발견, 재해석하여 한국적 모던과 클래식을 다양성으로 구성하는 근간이 될 것이다.


디자인: 더 시너지스트
시공: 더 시너지스트
사진: 홍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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