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이까지 하나로 만든다.” 고은 시인은 자신의 시 ‘자작나무 숲에 가서’에서 나무의 순수함과 정직함을 이야기했다. 헐벗은 몸으로 추위와 맞선 겨울나무는 세상의 타락과 무관하다. 그 위대함에 인간은 자연 속에서 저절로 경건해지고, 저도 모르는 새 동화된다.
1년 중 반이 겨울인 모스크바는 추위와 싸우는 사람 수 만큼이나 나무도 많다. 추울수록 인간은 옷을 껴입고 나무는 서로를 의지하며 숲을 이룬다. 모스크바 교외의 한 숲 속에 위치한 주택은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자연과 담을 쌓기보다 이를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그러자 어느 순간 집은 숲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건축이 겨울을 나는 방법이다.
모스크바 숲 속 주택
러시아의 건축가 알렉산더 지드코브(Alexander Zhidkov)는 자작나무 숲 속에 주택을 짓기 위해 건축 기술과 디자인이 아닌 주변 환경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숲을 침범한 건축물이 이를 훼손하지 않고 존중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 설계 목표를 세웠다. 건축 부지는 남쪽으로 자작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경치를 방해하지 않고 보다 효과적으로 구역을 나누기 위해서는 부지의 조건을 수용해야만 했다. 집의 방향과 채광은 이에 따라 결정되었다. 자작나무 숲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집은 북동향으로 세워졌고, 울타리 대신 커다란 창문으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쪽을 택했다.
주택은 총 두 건물로 이뤄져 있다. 작은 건물은 단층으로, 냉난방에 필요한 시스템을 갖춘 보일러실과 차고지가 있다. 실질적인 생활을 하는 공간인 본관은 2층 건물로, 동쪽을 향해 커다란 창문이 나 있다. 건물의 전면부는 낙엽송으로 마감했다. 덕분에 집은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고 숲과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낙엽송은 건물 내부의 바닥이나 벽 등 실내 마감재로도 일부분 사용되었다. 집 안팎으로 같은 소재가 쓰이자 건물은 통일감 있고 안정적인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집의 중심이 되는 공간은 2단 창문이 설치된 거실이다. 거실의 커다란 2단 창은 햇빛과 바깥의 공기가 실내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반면 남쪽에서도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뒤편에도 창문을 냈다. 거실의 벽은 외장재와 마찬가지로 낙엽송으로 마감했다. 나무의 따뜻한 색감이 모스크바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어주었다.
어두운 색감의 낙엽송은 주택에 중후한 매력을 더하지만 자칫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또 채광과 뷰를 위해 건축가가 택한 것은 유리다. 유리는 건물의 무게감을 덜어주며, 좁은 내부에서 시선을 바깥으로 유도하여 집 안을 더욱 넓어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건축가는 커다란 창문을 만들어, 남향이 아님에도 집 안으로 빛과 공기가 잘 통하도록 했다. 또한 내부는 벽을 최소화한 오픈 플랜식 구조로 구성하여 실내의 답답한 인상을 줄이고, 서로 다른 두 층을 효과적으로 연결했다.
따뜻함으로 채운 실내
목재 이외에도 주요하게 쓰인 인테리어 소재는 회색 벽돌이다. 벽돌은 벽난로의 벽 마감과 부엌에 일부분 사용됐다. 나무만 쓰기보다 적절히 소재를 배합해 단조로움을 없앴다. 무엇보다 회색 벽돌로 인해 집 안은 한층 더 모던한 인테리어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천장은 화이트 컬러로 마무리하고, 간접 조명을 사용해 회색 벽돌과 자연스러운 컬러 그라데이션을 이뤘다, 공간은 나무의 따뜻함과 모노톤 컬러의 조합으로 깔끔하게 꾸며졌다.
실내는 최대한 절제된 데커레이션으로, 인테리어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심플한 공간 장식은 역설적으로 매우 풍부한 인테리어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하얀 벽으로 에워싸인 공간은 조명이 비치자 더욱 환하게 강조되었고, 복잡한 형상을 지닌 책장과 밝은 색감의 소품들은 모노톤 배경 속에서 각각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심플함과 단조로움은 종이 한 장 차이와도 같다.
거실의 메인 영역은 테라스와 부엌을 연결하고 있으며, 계단을 오르면 2층의 작은 거실로 향할 수 있다. 이곳은 곧 아이의 방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본관에는 마스터룸과 별도 침실, 욕실 등이 있다. 침실은 모두 목재로 내부를 꾸몄으며, 욕실은 석회 타일을 깔았다.
주택 내부의 가구는 팔레트우드 소재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집 구석구석 배치해 실내의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했다. 또한 패브릭과 목재를 사용해 만든 소품을 주로 쓰고 있다. 패브릭과 목재는 풍부한 질감으로 촉감이 살아있다.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소재는 공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건축뿐만 아니라 인테리어와 사소한 소품에서도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모스크바의 숲 속 주택은 바깥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편안하고 진정성 있는 집을 완성해 나가고 있다.
사진 Eugene Kuliba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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