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공간] 공간을 이용하는 최적의 방법

박신혜 기자 / 기사승인 : 2025-03-17 11: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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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벽을 세운다. 사실 세운 벽만큼 공간은 오롯이 사라진다. 이 아이러니를 벗어나기 위해 건축가 히로유키 다나카는 벽을 없애고 집안을 하얀 상자로 가득 채웠다.

도쿄 메구로 구에 속한 유텐지는 일본의 여느 동네처럼 단정하다. 집 앞에 세워진 자전거 한 대, 주인의 취향이 돋보이는 소박한 화단이 지나가는 이를 다정하게 불러 세운다. 젊은 연인은 좁은 골목길,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들 사이 오랫동안 버려져 폐허가 된 주택에 터를 잡았다.


블록 셋으로 완성하는 공간


 

 


분명 실내인데 바깥보다 더 황량하다. 건물의 구조나 천장, 벽, 이 집을 이루는 모든 것이 거칠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집안에 선뜻 살림을 풀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다듬어지지 않은 공간을 발견한 건축주와 건축가는 반색을 했다. 울퉁불퉁 못난 부분이 보이면 가릴 법도 하건만 가감 없이 드러냈다. 하얗게 칠한 콘크리트 벽을 타고 올라가면 보란 듯이 노출된 천장이 보인다. 숨기고 감춰서 매끈하게 만드는 것이 지루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디 하나 숨을 공간이 없다. 빼꼼히 고개만 내밀면 사방을 관찰할 수 있는 이곳은 정말이지 놀랍도록 자유롭다.

 

 

 

 

바닥에 깔린 삼나무가 시원스레 집안 전체를 점령하고 있다. 건축가는 콘크리트 골격으로 된 구조에 하얀 상자 세 개를 투두둑, 떨어뜨려 놓았다. 두꺼운 판지 사이에 석고 반죽을 넣어 굳힌 플라스터 보드로 만든 상자 하나에 아늑한 침실도 생기고 넉넉한 수납공간도 생겼다. 다정한 연인은 블록들 사이를 오가며 블록 안에서 잠들고, 블록 위에 숨은 다락방에 가기 위해 사다리를 탄다.


신발장과 자전거가 놓인 현관 입구에 들어서면 푹신한 침대가 놓인 커다란 상자가 보인다. 상자의 맞은편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숨은 공간이 나타난다. 공간이 가로로 나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침실 반대편 그보다 작은 상자에는 욕실이 들어가 있다. 건물의 외벽에 난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아낌없이 받아들이기 위해 상자를 오렸다. 집안에서 가장 작은 상자는 욕실 앞에 두었다. 미니어처 집짓기를 하듯 원하는 곳에 창을 내고 마음 내키는 곳에 블록을 쌓아놓고 보니 그 모습이 매우 만족스럽다.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사용할 것





건축가 히로유키 다나카는 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가 진행하는 작업에서 어쩔 수 없이 벽을 세우는 일은 없다. 이전에 작업했던 도쿄의 한 아파트의 벽은 그의 의도대로 대각선으로 조금씩 몸을 비틀었고 그 결과 훨씬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유텐지에서는 아예 벽을 세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벽이 사라지자 집안의 끝에서 끝까지 시야의 막힘이 없다. 풍족한 볼륨을 확보한 공간은 밋밋해서 심심할 법도 한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개별 장소마다 계단을 두어 이동할 때마다 생기는 높낮이에 오히려 운율이 느껴진다.

 

 

 


하얀 상자들 사이 복도를 건너면 툭 터진 개방형 거실이 나타난다. 한쪽에는 비계판 삼나무를 그대로 쓴 투박한 다이닝 테이블과 의자가, 다른 한쪽에는 딱 그만한 사이즈의 소파가 앉아있다.
묵직한 나무와 스테인리스 스틸의 조화로 이루어진 부엌을 중심으로 각자 자기 역할을 맡은 공간들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담백하게 딱 그 정도만





삼나무 바닥은 실내에만 머물기 답답했는지 전면을 가득 채운 슬라이딩 도어 밑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건물의 너비만큼 널찍하게 펼쳐진 앞마당에는 푸르게 잔디가 돋아나있다. 펜스 너머 골목으로 오가는 사람들과 자꾸 눈이 마주친다. 집은 안과 밖, 그 어디에서도 숨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자신감에 나도 모르게 그만 탄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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