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가구의 현재를 만나다...<정재훈 형태 形態-선을 잇다>

육상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2-11-18 21: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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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가구의 정서가 충만한 작품 선보여
현대화를 위한 전통 가구의 기지개 엿보인 전시
전통 목수의 고뇌를 이해하는 계기
▲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테이블의 하부 구조

 

“조선의 조선 가구, 현대의 조선과 구 그 어느 가구도 온전하게 자리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견강부회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수천 년을 지속한 공예는 모더니즘을 기점으로 삶의 방식에 있어 일대 변혁을 맞는다. 전통의 수공 방식으로 회기 하려는 반발적 의도로 아르누보와 아르데코가 주창됐고 이는 곧바로 장식미술로 이어졌다. 이는 19세기의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적 대변혁기에 기술의 효율과 아름다움이 만나는 지점에 탄생한 모던 디자인이 20세기를 지배하게 되면서 공예는 미술의 일부로, 혹은 대량 생산 산업의 일부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을 자임하게 됐다.

간략한 서양의 공예 역사에 때맞추어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불운의 역사를 거치면서 조선의 생활양식이 단절되고, 외세에 의한 근대화를 맞으면서 우리의 문화는 빈사 상태에서 재정립해야 했다. 이 와중에 조선의 공예는 국가 주도의 전통과 장인의 형식으로 잘린 역사를 이어가야만 했다.

 

▲ 이층책장

 

▲ 서랍의 내부 목재는 가래나무를 사용했다. 

 

조선 시대는 조선식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에 의해 가구가 탄생했을 것이다. 전통의 정신과 전통 공예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기술과 형식이 현재로 이어지려면 근대주의 모더니즘 양식을 넘어 각별한 현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오늘에 살면서 수백 년 전의 가구를 제작하는 조선 목수의 고충은 그래서 깊고 넓다.

“모든 선이 이어지면 하나의 형태가 되고 온전한 하나가 된다. 그 선은 과거와 현재, 옛 향기를 부르는 것이며, 이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세상이며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최근 전시를 연 조선 목수 정재훈이 전시 도록 서문에 남긴 말이다. 한 목수의 글이 이렇듯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앞에서 언급한 조선의 생활양식이 현재에 상주하지 못하고 단절된 채 유물로 취급받는 현실에 대한 회한의 감정이 담겨 있어서다. 여전히 조선 가구는 견고한 의식과 기술에 둘러싸여 시대를 부르지 못하고 있다. 조선 가구는 조선에도 없고 현대에도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여전하기에, 목수 정재훈의 조선 가구는 가구 이전에 어떤 사명감으로 다가온다.

 

▲ 협탁 세트


나무의 생명력에 전통의 기술과 감각을 심는 것도 벅찬데, 여기에 현대인의 생활양식까지 녹이는 일은 절대로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전통은 그 맥락이 끊이지 않고 지금에 이어져야만 하는 숙명을 가지기 때문이다. 자칫, 옛것을 복제하는 것만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전통은 형식도 중요하지만 정서를 통과시키는 정신적 세계가 탄탄하게 자리해야 한다.

목수 정재훈이 조선 가구의 선율에 섬세한 역사적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가구의 효능을 뛰어넘는 역사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의 가구가 완벽한가를 묻기 전에 조선 가구의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전통의 기술이 완벽하게 구사되고, 느티, 참죽, 가래, 오통 나무의 질감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이면 조선 가구로서의 충분한데, 여전히 정 목수의 가슴은 답답한 것은 한 시대 전통 목수로서의 책임감 때문 아닐까 짐작해 본다.

정재훈의 가구는 전통에 정직하지만 현재에서 보면 완고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그의 가구에서 어떤 부분을 수용하고, 어떤 부분을 이해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조선 가구가 어떤 진화를 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요구 때문이다.

 

▲ 소파 테이블


조선 목가구의 전시 자체가 드문 상황에서 정 목수의 개인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신작인 작은 협탁, 소파 테이블, 식탁 테이블에서 느껴지는 목질과 전통 기술의 조화는 현대 가구에서 느낄 수 없는 질박과 온화감은 이번 전시의 각별함으로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조선 가구의 가치와 감각이 여전히 견고함을 알기에 충분하다.

고딕 양식으로 복귀하려 했던 유럽의 아르누보 양식이 바우하우스의 현대화에 소멸 당한 역사를, 우리의 조선 가구는 결코 재현해서는 안 된다. 전통과 현재를 공존케 할 수 있는 것도 조선 가구만의 특권이라는 것을 전통 목수는 알아채야 한다. 시대를 이끄는 새 감각과 형식으로 우리의 정서와 감각이 우러나는 가구가 또 다른 미래의 조선 가구다. 정재훈의 조선 가구 또한 그 진통의 한가운데서 최선을 다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작은 해법까지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번 전시의 의미는 충분하다.

 

전시 <정재훈, 형태 形態-선을 잇다>는 운중화랑(성남시 분당구 운중로 137번 길 14-3)에서 11월 23일까지 만날 수 있다.

 

▲ 사방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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