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ft Focus : 나무에 걸다

정인호 기자 / 기사승인 : 2025-09-28 16: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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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재민, 추억을 걸다 



가구 디자이너 권재민의 ‘Grow up the branch’ 시리즈는 나뭇가지 형태를 띤다. 유년 시절, 나무에 옷을 걸어놓고 그늘에서 쉬던 기억, 나뭇가지에 젖은 옷을 말리던 경험은 그에게 의미 있는 추억이 되어 작품을 만드는 하나의 모티브가 되었다. 작가는 사용자가 의자, 벤치, 행거에서 뻗어 나가는 가지를 보며 무언가를 걸기를 의도했다. 그뿐만 아니라 각자 기억하는 장소의 정취와 느낌을 떠올려보도록 권유한다. 가구의 기능은 단지 쓰임에 그치지 않고 시간과 공간 속에 얽힌 의미와 상징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평평한 지면과 중력에 반발하는 것처럼 위로 높게 뻗은 가지의 모습을 통해 권재민은 공간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사용자는 그의 작품을 보며 무언가를 걸어도 좋고 가구와 어울리는 공간을 상상해도 좋다. 추억이 어려 있는 시간과 공간을 상기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다.

권재민|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밀라노가구박람회를 시작으로 스위스 바젤에서의 ‘Design Miami’, 일본오사카의 ‘Living Design’ 등 다양한 해외전시에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2009년 개인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며 꾸준히 활동한다. 현재 협성대학교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2. 석희숙, 바람을 걸다 


예로부터 마을 초입에서 수호신 역할을 하던 솟대가 현관이나 창문에 걸려있다면 어떨까. 석희숙 작가는 솟대의 정취가 담긴 풍경(風磬)을 만든다. 그녀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강릉 초당동 근처의 진또배기라는 솟대마을을 보며 작품의 아이디어를 착안해냈고 대관령 지역의 자작나무와 동백나무를 깎고 다듬어 오리 풍경을 만들었다. 작가가 솟대를 풍경으로 형상화한 것은 어릴 적부터 서로 닮은 작은 것들을 모아 구멍을 내어 줄에 거는 일을 좋아하였기 때문이다. 석희숙 작가는 지금도 습관처럼 무언가를 매달고 거는 일에 심취해 있다. 바람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는 풍경을 보며 그녀는 무엇보다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석희숙의 풍경은 자연 그대로의 멋을 담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흔들리는 오리풍경에 잔잔한 종소리가 멋을 더한다.

석희숙|강원도 지역의 나무들로 다양한 공예품을 만든다. 강원도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으며 현재는 강릉에서 초려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3. 한용수, 기억을 걸다



생활에 얽매여 사는 이들에게는 시간과 공간이 자유롭지 못하다. 현실에 갇힌 채 소통과 공감, 기본적인 감정조차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한용수 작가는 ‘기억’이라는 새로운 울타리를 제시해준다. 빨간코네모 인형 작가 한용수는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조각처럼 모아 일기를 쓰고 소중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꿈과 이야기들을 하나의 매듭으로 묶어 어딘가에 걸어본다. 그의 인형에는 본능과 꿈을 넘나드는 작가의 기억과 경험이 투영되어 있다. 빨간코네모는 날고 싶다는 작가의 이상과 그것을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현실의 경계에 있는 셈이다. 작가가 살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인형의 얼굴에 담기기 때문일까, 그들의 표정은 다양하다. 한용수는 빨간코네모를 통해 때로는 발랄하고 때로는 어두운, 삶의 소소한 이야기를 따뜻한 나무 작품으로 전한다.

한용수|빨간코네모(Red nose square face) 인형 작가. 스토리텔링이 담긴 조형 작업도 병행한다. 건축, 실내외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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