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실... 차리는 즐거움을 맛보다

서바름 기자 / 기사승인 : 2025-08-24 23: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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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인 아름다움보다 자연스러운 미감을 전하는 푸드 스타일리스트를 만나다

 

‘스타일링’이라는 단어가 뒤따르면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 근사해진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패션 스타일링, 홈 스타일링처럼 많이 보고 들어 익숙한 분야고 있지만 ‘푸드 스타일링’은 조금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요리마다 그 재료는 물론 먹는 방법과 문화를 이해하고 스타일리스트의 감각을 보태어 그릇 위에 요리를 연출하는 일이 바로 푸드 스타일링이다. 요리를 맛있게, 바르게, 즐겁게 차린다는 슬로건으로 자연의 식탁을 추구하는 쿠킹스튜디오 차리다를 다녀왔다.

맛있게, 바르게, 즐겁게 차리다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는 일은 김은아 실장에게 오랜 꿈이었다. 그녀는 요리를 좋아했고 요리가 자신의 손에서 근사한 그림이 되는 일이 즐거웠다. 그녀가 푸드스타일링을 해온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주변에는 그녀의 직업을 의아해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제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냥 ‘요리사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죠.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음식을 맛있게, 바르게 그리고 즐겁게 차려 먹는 방법을 제안하는 거예요. 일상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말이죠.” 

 


우리나라 식(食)문화에도 서서히 유행과 취향이 자리 잡고 있다. 10년 전쯤 ‘웰빙(Well-Being) 문화’를 시작으로 슬로우 푸드와 유기농, 채식 등 다양한 콘셉트의 식단이 유행처럼 번졌다. 또 한식, 일식, 중식, 양식처럼 나라별 음식으로 취향을 구분하던 예전과 달리 염분 농도를 낮춰 요리하는 저염식부터, 단계별 채식은 물론 식수까지 골라 마시는 등 사람들의 입맛 취향도 더욱 세분됐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음식을 고민하며 먹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패션이나 공간에 자신의 취향을 풀어내는 스타일은 이미 다양하지만 푸드 쪽은 아직 부족하죠. 맛있게 먹는 걸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맛집’이라는 키워드가 화제가 된 것처럼 ‘어떻게’ 먹느냐에 대한 취향을 갖는 게 다음 단계인 듯해요.”
단지 배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시대는 지났다. 먹는 음식과 방법이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김은아 실장은 음식에 대해 조금씩 변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더 깊이 있게 일상에 스며들기를 바랐다.

나를 위한 식탁 



음식이라 하면 단연 맛있게 먹는 즐거움이 가장 크겠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처럼 잘 차려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라는 그녀다. 그런 그녀 역시 자신을 위한 식탁보다는 직업상 보여주기 위한 요리나 다른 사람을 위한 식탁을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이의 상을 위해서는 좋은 재료를 사용해 건강하고 신선하게, 또 예쁘게 담아 음식을 차리는데 막상 제 끼니를 챙길 때는 일을 하고 남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냉장고에서 꺼낸 찬 통을 통째로 식탁에 올려두고 먹곤 했어요. 문득 남들에게는 차려먹는 즐거움을 전한다며 온갖 정성을 들이고 정작 저는 그 즐거움을 외면한 채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먹고 있더라고요. 제 자신부터 식탁의 즐거움을 느껴야겠다고 다시 다짐했어요.”

 


요즘 그녀는 아무리 바빠도 한 끼 정도는 잘 차려먹으려 한단다. 자신처럼 바쁘게 지내다 보니 가장 편안하고 즐거워야하는 식사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요즘 학생이나 직장인들에게 음식을 사서 먹는 한이 있더라도 차려 먹을 때 조금 더 정성을 들이고 먹는 시간을 조금 더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잘 차려진 음식을 먹는 것처럼 집에서 자신을 위해 밥상을 차릴 때도 잘 차려 먹었으면 해요.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할 때 조금 더 정성을 들이고 아름다움을 더하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더라고요.”

자연의 온기를 담다


동교동의 10평 남짓한 반 지하 원룸에서 시작한 ‘차리다 스튜디오’는 현재 서울에서 가장 핫한 동네인 이태원과 합정동에 자리해 있다. 차리다의 수장인 김은아 실장 역시 각종 전자제품 브랜드의 냉장고 CF연출은 물론 다양한 푸드 관련 광고와 매거진, 방송을 섭렵하며 푸드스타일링 분야에 입지를 단단히 다졌다. 최근에는 다양한 공예 작가들과 함께 요리에 필요한 도구와 식기를 제작해 판매도 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매체에서 그녀의 스타일링을 선호하는 이유가 무어라 생각하는지 물으니 ‘자연스럽게 차린다’라는 답변을 해왔다. 

 


“음식을 예쁘게 담고, 차리는 게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이지만 인위적으로 예쁘게 담아내려고 애를 쓰지 않아요. 음식은 신선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면 충분하거든요. 음식의 재료는 모두 자연에서 나는 것들이기 때문에 스타일링에서도 그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하죠.”

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는 그녀의 주방에는 유독 나무 식기와 도구가 많다. 호두나무 도마와 올리브나무 식기, 티크 고재 테이블과 원목 마루 등 시선이 닿는 곳곳에 나무가 숨을 쉬고 있었다. 

 


“푸드스타일리스트에게 나무는 아끼는 소재 중 하나에요. 나무 접시에는 어떤 요리를 올려놓아도 잘 어우러지거든요. 자연에서 온 재료들이 자신의 터전이었던 곳을 알아보는 느낌이랄까요. 또 개인적으로 차가운 느낌의 스테인레스나 광이 번쩍이는 세라믹 보다는 따뜻한 나무 소재와 도자에 더 끌리기도 하고요.”

이날 김은아 실장이 에디터에게 내어준 간단한 다과 상차림에도 나무 접시가 올랐다. 그녀의 스타일링을 찾는 이들이 많은 것은 어쩌면 그녀가 그릇에 담아내는 따뜻한 온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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