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칼로 그린 그림... 김형관 작가가 나무라는 화판에 새긴 삶의 이야기

정인호 기자 / 기사승인 : 2025-08-24 22: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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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과 그림이 한데 어우러지는 나무 작품이 있다. 양각(揚角)으로 드러난 바위와 물감으로 채색한 물가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한 폭의 그림. 김형관 작가의 ‘그리움’이다.


김형관 작가는 학창 시절, 미술실에서 선배들이 수묵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며 한지에 번지는 먹빛에 매료되었다. 이후 김형관은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그의 화판은 종이에 한정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작가는 한지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움을 지닌 나무에 작업하기 시작했다.


“나무는 마치 한지처럼 물을 흡수해요. 어찌 보면 한지보다 조금 까다롭기도 하죠. 하나의 나무에서도 각각의 부분마다 물감의 반응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작업을 구상하고 수종을 고르는 경우보다는 나무를 보고 작품을 떠올릴 때가 더욱 많아요.”

 


그가 패이고 찢긴 측백나무의 하얀 결을 보며 만든 ‘참새의 하루’에서, 심재는 땅이 되고 변재는 물이 되어 한 조각의 나무에서 참새들이 노닌다. 은행나무의 옹이를 보며 거칠고 투박한 어머니의 손을 연상한 작업도 있다. 고단한 삶을 살아온 어머니, 천진하게 노는 시골 소년 등 그는 나무의 물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가족과 일상의 풍경을 솔직하게 작품에 담는다.

 


김형관이 사실적인 조각에 집중함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실제 이상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은 그가 조각의 형상을 두껍게 파는 고부조(高浮彫)가 아닌 저부조(低浮彫)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5mm 이하의 두께로 나무를 얕게 판다. 입체감에만 치우치지 않고 그림을 그리듯 나무 조각을 하기 위함이다. 채색 작업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나무에 칠을 하기보다는 수묵담채화를 그리듯 나무에 물감을 살짝 입힌다. 나무의 결과 숨을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조각에 회화를 접목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형관의 작품은 순수하고 자연스럽다. 그가 조각한 연꽃을 보면 시골 길 한편에 있는 아담한 저수지가 떠오르고, 어머니의 얼굴을 담은 작품에서는 모정이 온전히 느껴진다.


김형관의 작품이 조각인지, 그림인지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작가에게 나무의 상처와 옹이, 무늬결은 모두 캔버스의 일부다. 관객들 역시 그가 조각칼로 완성한 그림을 보며 잔잔한 수필을 읽듯 일상의 풍경을 접하기를 바란다.  

 


김형관|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회화와 저부조 작업을 통해 나무에 인물과 새, 꽃들을 표현한다. 예술의전당에서의 개인전, 대한민국청년작가초대전, 중국성도전 등 다양한 전시 이력이 있으며 현재 한국미술협회, 한국목조각가협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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