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아티스트 ‘프란체스카 보네시오’...경계를 흐리다

전미희 기자 / 기사승인 : 2025-07-28 10: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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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뜰리에 37.2는 일상과 예술,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길거리에 상자가 하나 버려져 있다. 환경미화원이 주우면 상자는 쓰레기가 된다. 노숙자가 누우면 이불이 된다. 그냥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 그 앞에서 누군가 궤변을 늘어놓으면 예술 작품이다. 사물은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이 흥미로운 관계 맺기에 건축가 프란체스카 보네시오(Francesca Bonesio)는 사물 대신 공간을 대입한다.

 

조금 불편한 건축

이미 역할을 다 한 프랑스의 한 사화산에 덩그러니 나무판자가 하나 놓여 있다. 대자연에 던져 진 방 하나.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버려진 나무 상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군가 사용한다면 건축이고, 바라만 본다면 작품이다. 이는 마이크로아키텍처(Micro Architecture) 아뜰리에 37.2(Atelier 37.2)의 작품 슬로핑 하우스(Sloping House)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뜰리에 37.2는 이탈리아 건축가 프란체스카 보네시오와 프랑스 사진가 니콜라 기로(Nicolas Guiraud)의 만남으로 이뤄졌다. 건축가와 사진가는 각각의 영역을 오가며 아뜰리에 37.2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어 냈다. 이들의 작업은 주로 마이크로아키텍처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큰 공간을 설계하기보다, 일시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작은 건축이자 조각품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이를 정의내리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관계성에 따라 공간이 품고 있는 잠재된 이야기가 터져 나온다. 즉 사람과 관계를 맺는 작품은 건축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오브제가 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뜰리에 37.2는 이처럼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한다. 

 

 


프랑스의 한 사화산에 설치된 슬로핑 하우스는 정해진 기능이 없다. 재활용 목재로 만든 이 공간 안에 누군가 들어간다면 그를 위한 피난처 혹은 휴식공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쉬기에는 바람을 막을 문도, 휴식을 취할만한 의자도 없다. 앙상한 철골만이 위태롭게 설치되어 있다.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허리를 잔뜩 구부려야 한다. 공간 안에서도 온전히 서있을 수 없다. 바닥에 주저앉게 되면 풍경이라고는 드넓은 잔디밭만 보인다. 철골 위에 앉아서야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지만 이 마저도 편하지 않다.

공간의 기능을 축소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건축이 되고 예술이 되는 작품을 만든 것일까. 불편함으로 인해 사람들은 여러 시도를 해보게 된다. 궁금증을 유발하고, 계속해서 자극한다. 슬로핑 하우스에서도 바닥에 앉았던 이는 하늘을 보기 위해 일어나보기도 하고, 철골 의자 위에 안아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 공간의 진정한 기능을 유추해 나갈 것이다. 물음을 제기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아뜰리에 37.2의 조금 불편한 건축은 우리에게 잠재된 예술적 호기심을 불러 모은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

이들의 작업은 대지 예술의 성격을 띠고 있다. 슬로핑 하우스 또한 자연을 배경으로 설치되었으며, 또 다른 작품인 ‘아테올로지(Arteology)’도 프랑스 중남부의 오베르뉴 주 화산 지역을 캔버스 삼아 작업했다. 산허리에는 재활용 목재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목장의 울타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종의 의식을 치루는 공간 같기도 하다.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작품은 오래 전 멸종된 매머드를 형상화한 것이다. 산 정상을 따라 설치된 목재는 동물의 등뼈를 상징한다. 멀리서보면 뼈만 남은 고대 동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아뜰리에 37.2는 화산이 주는 공포와 궁금증을 고대 동물로 나타냈다. 인간은 거대한 자연 앞에 기원에 대한 신비를 느낀다.  

 


게릴라성 작품인 ‘통행하는 사람(Un Peuple de Passage)’은 도시 곳곳에 출몰한다. 때로는 자연이나 갤러리, 박물관 등에서 마주칠 때도 있다. 이 조각품은 특정 공간에 놓일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가 부여된다. 도시에서 마주친 이 조각품이 설정한 세계와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는 구분되어 있지 않다. 대중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유령처럼 생긴 조각품을 마주한다. 작품이 형성하는 가상 세계와 현실의 공간이 만나면서 그 경계가 흐려진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공간에 조각품을 놓아 대중의 관심을 유발한다. 동시에 현실 세계를 가상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도 가져온다.

아뜰리에 37.2은 자연 혹은 도시라는 넓은 공간을 예술로 끌어들이며, 작품을 갤러리에서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했다. 그럼으로써 대중은 예술을 보다 친근하게 여길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 현실의 공간에 놓인 가상의 작품이 어우러지면서 그 경계를 무너뜨린다.

친근함이 주는 역발상


 

 

 

티후푸는 남태평양 타히티 섬에 존재하는 해변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파도가 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파도는 15m까지 도달하며 놀라운 위력을 자랑하고, 보는 이를 두렵게 만든다. 이를 형상화한 나무 파도 ‘티후푸’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를 위한 것이다. 작품 아래 놓인 아기 침대는 마치 아기가 파도에 쓸려갈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아기에게 위협적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나무가 주는 포근함이 아늑한 잠자리를 완성한다.

아뜰리에 37.2는 이처럼 친숙한 소재인 나무로 작업한다. 재료와 작품의 역설적인 관계는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낯선 작품이지만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도처에 널려 있는 재활용 목재도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일상엔 수많은 예술의 씨앗이 흩뿌려져 있다.

자료제공 Atelier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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