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나무가 가득한 정원에서는 자연과 전통의 정서가 어려 있는 박민철의 작품이 몸소 느껴졌다. 그는 30년이 넘게 살아온 목조주택에 앉아 자신이 만든 다도구와 차실가구를 보여주며 공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나무가 담아내는 이야기
박민철은 아버지를 닮아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만들기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목조주택 설계와 목조각을 일삼으셨고 그 피를 물려받은 박민철 역시 건축을 전공했다. 하지만 남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인 건축 설계는 그의 적성과 맞지 않았다. 그는 온전히 자신의 손으로만 무언가를 완성하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건축사무소에 취직하지 않고 여행을 다니며 방황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아버지의 창고에 무작정 자신의 공방을 꾸렸다. 터무니없는 시작이었지만 혼을 담아서 작업해야겠다는 포부가 깃든 ‘아틀리에 혼(魂)’이라는 공방 이름을 지었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것은 작은 소품이었다. 목공예품에 손맛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혼을 불태울 수 있는 거라고는 아버지에게 배운 기술뿐이더라고요. 아버지의 수공구와 기계들로 목조각을 시작하며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어요. 외국 서적들과 동영상을 숱하게 많이 봤죠.”
선천적으로 미술에 재능이 있었기에 조각을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섬세한 성격 덕분에 손맛을 살리는 작업도 수월했다. 그 때 당시 박민철이 조각했던 것은 사실적인 형태의 공예품이었다. 그는 나무 덩어리를 한없이 깎아내며 나뭇잎이나 꽃 형태의 그릇을 만들었다.
“공예는 장식성도 중요하지만 순수미술과 달리 실생활과 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평소 차 마시는 것을 즐겼던 저는 차도구, 그중에서도 그릇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시간이 흐르며 박민철은 수공구 뿐 아니라 목선반 기술도 숙달했고 그의 그릇은 점점 다양해졌다. 무턱대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무형의 것을 나무에 담아 그릇을 만든다는 작업 의지를 그는 꾸준히 고수했다. 그리고 자신이 십여 년간 작업한 결과물을 ‘나무가 담아내는 이야기’라는 주제로 응축시켜 ‘나무야’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나무야’를 통해서 박민철의 공예는 더욱 풍성해졌다. 유년시절부터 야생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그릇뿐 아니라 꽃병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작업을 보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의 집안 곳곳을 채우는 소품들을 보면 박민철이 얼마나 쉬지 않고 작업하는지 쉬이 가늠이 간다.
작업량이 워낙 많다 보니 그가 굉장히 다양한 품목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그는 그릇과 꽃병을 다채롭게 풀어낼 뿐이다. 박민철은 산새나 야생초와 같은 자연의 정서 뿐 아니라 옛 가구의 장석, 논개가 적장을 안고 뛰어내렸던 진주성과 같은 옛것의 형태도 공예에 담는다.
향수가 깊게 배어있는 그의 작품을 보고 사찰이나 한옥에서 현판을 의뢰하는 경우도 잦았다. 그는 서각을 하며 또 다시 공부에 매진했다. 글자의 형태만 따라서 조각하는 것은 쉽지만 붓이 가는 길을 체득해야만 제대로 된 서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점차 필체의 강약과 흐름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서예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현판을 제작한다.
공예에 혼을 담아서
박민철이 공예와 서예, 조각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나무에 대한 나름의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한 그루에서 얻을 수 있는 무늬와 질감이 다양한 느티나무를 특히 좋아했고 그 물성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5년 이상 건조와 가습을 반복하는 긴 기다림 끝에 삭힌 나무로 그릇의 무늬를 만들기도 했다.
“제가 만드는 단순한 형태의 그릇들은 마트에서 파는 플라스틱 접시보다 불편할 수 있어요. 값은 더 비싼데 변형이 되고 관리도 까다롭죠. 하지만 재료가 주는 감성이 있다는 데에 가치가 있잖아요. 수십 년, 수백 년 살았던 나무로 사람들이 사용할 물건을 만드는 거니까 신중해야죠. 좋은 무늬와 질감을 온전히 그릇에 담기 위해서요.”
한적하고 외딴 마을에서 홀로 작업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질 법도 하지만 박민철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다. 나무를 수시로 건조하며 공구와 기계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텐데 그는 자신의 브랜드 ‘나무야’를 운영하면서도 1년에 열 군데 이상의 기획전에 참여한다.
“소비자와 소통을 하려면 제 작업이 충분히 갖춰져야 해요. 하지만 금전적인 바탕이 되어야 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딜레마가 있죠.”
박민철은 ‘나무야’를 통해서 소비자들과의 타협점을 계속해서 찾으며 작품 활동에도 꾸준히 힘쓰고 있다. 많은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서 매달 하나 이상의 새로운 작품을 계속 만들다 보면 아이디어가 고갈될 것 같지만, 그는 아직도 만들고 싶은 것이 많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결국 무언가를 해결하고 설계하는 거잖아요. 필요가 기반이 되겠죠. 차(茶)와 조경처럼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문화를 공부하면 디자인이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에겐 필요한 게 계속 있을 테니까요.”
10년 전, 자신의 공방을 열며 다짐했듯 그는 여전히 혼을 담아 나무를 조각한다. 타고난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해가는 박민철이 앞으로 걸어갈 목공예의 길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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