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목공방
인생살이가 팍팍해서인지 ‘즐거운 인생’ 하면 인생은 즐겁지 않다고 말하는 반어적 표현으로 들린다. 하지만 김용회의 인생은 정말로 즐겁다. 지리산에 보금자리를 튼 것도, 평생 업으로 목다구 제작을 선택한 것도 다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가 만든 목다구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20년 전 그림을 그리던 한 청년이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대성골에 다다랐다. 가슴께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내려와 보니 그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한겨울 마른 풀냄새와 흙냄새가 반기는 유토피아였다. 한 철만 살다가겠노라 했지만 그는 지리산에서 중년을 맞이했다. 애초엔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하기로 작정했다. 열정만큼이나 많이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모든 그림을 도둑맞았다. 살아온 흔적을 모두 빼앗겼다는 충격으로 그림을 접었다. 그런 그를 달래준 건 다름 아닌 나무였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종종 동네 형을 따라 대나무 찻숟가락을 만들긴 했었다. 이제 화가로서의 명도 다했으니 밥벌이를 위해서라도 목다구 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원래 차를 좋아했다. 내가 쓸 다구를 만들다보니 재미가 있었고, 또 만든 게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더라. 그래서 큰 욕심 부리지 않으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그러다보니 조금 더 욕심이 생겨서 기왕이면 잘 만들어서 작품전도 해보자 한 거다. 당장 목다구로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한 가장으로서 스승 밑에 들어가 몇 년씩 목공을 배우는 건 그에게 사치였다. 나무를 구하러 팔도유람을 하고, 이 나무 저 나무 가리지 않고 목다구를 만들다 보니 어느 새 목다구 하면 ‘청오’라는 이름이 절로 따라오게 되었다.
“다른 나무 작업도 많지만 목다구를 선택한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목다구 작업을 내가 먼저 시작해서 그 기초와 입지를 다졌다는 뿌듯함이 있다.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어 일반 사람들에게 목다구의 매력을 알릴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청오의 목다구’는 주로 고재로 만들어진다. 목다듬이, 디딜방아, 마룻장, 절 기둥, 부엌문짝…. 비바람에 삭고 패인 주름 하나하나가 그에겐 예술이다. 가만히 나무를 쳐다보고 있자면 ‘나를 이런 모습으로 표현해줄래?’라는 나무의 말이 들린단다. 그 바람에 따라 나무의 특징적인 부분을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을 한다. 이렇게 오랜 세월 비바람과 사계절을 거쳐 단련된 나무는 어떤 칠을 하지 않아도 변형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나무의 질감과 무늬를 즐길 수 있도록 동백기름만 바르고 만다. 도시로 시집보낸 목다구도 그 자태에 변함이 없다. 작년엔 제주도에서 귀한 문짝을 구해왔다. 문짝에서 우리네 어머니가 들려주는 온갖 이야기가 들린다고 말하는 그. 수많은 손에 의해 열고 닫혔던 문짝에 어린 애환을 천천히 생각한다.
“사실 버려지는 나무 아닌가. 저런 나무가 나를 만나서 또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거라 생각한다. 허드레나무에서 찻상이 되고 차받침이 되고. 그런 나무를 만난 나 또한 행운아다. 나무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 일 아닌가, 하하.”
김용회는 작업에 욕심내지 않는다. 만들 만큼만 만들고 산 따라 강 따라 방랑시인마냥 지리산을 노닌다. 즐겁게 만들고 즐겁게 사는 그는 ‘청오’라는 호(號)처럼 늘 푸르른 오동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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