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은 《덧(Overlaid)》... 섬유를 통한 지속되는 관계와 기억의 구조

편집부 / 기사승인 : 2026-07-08 13:5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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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천동 삼익비치아파트에서의 축적된 시간과 기억
삶의 흔적과 관계의 구조를 섬유로 재구성
건축과 남겨진 섬유 사이에 존재하는 작가의 의식구조

 

이성은의 작품《덧(Overlaid)》은 가장 사적인 공간인 부산 남천동 삼익비치아파트에서의 축적된 시간과 기억을 섬유의 구조로 번역한 것이다. 작가는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삶의 기반이 되어 온 아파트를 단순한 주거 공간이나 건축물이 아닌, 시간과 관계가 켜켜이 쌓인 장소로 재해석했다.

작가의 기억 속 삼익비치는 건물보다도 먼저 바다와 아파트 사이에 놓인 넓은 잔디밭으로 남아 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발걸음과 계절의 변화, 바닷바람과 비를 견뎌 온 잔디밭은 선명한 초록의 풍경은 밟히고 마모되며 다시 자라난 황갈색의 표면으로 대체, 작은 섬유 단위들이 형성하는 구조로 감각했다.

작품은 재건축을 앞둔 삼익비치아파트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사라지는 건축 자체를 기록하기보다 그곳에 머물렀던 삶의 흔적과 관계의 구조가 어떻게 다른 형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그 일환으로 가족들이 오랫동안 입어 온 니트 의류를 수집하고, 이를 해체한 뒤 다시 연결하여 기둥, 구, 파편적 조형물로 재구성했다. 한때 몸을 감싸고 생활의 일부로 기능했던 의류는 더 이상 입는 옷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 표면에는 착용자의 몸의 온기, 움직임, 습관, 반복된 마찰의 시간으로 마주했다.

작업의 주요 작업군인 〈보풀 시리즈〉는 이러한 의류의 해체와 재해석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니트 의류의 외부 표면만이 아니라, 피부에 직접 닿아 있던 안쪽 면에 주목한다. 의류의 겉면에 생겨난 보풀이 반복된 사용과 마찰의 흔적이라면, 안쪽 면은 오랜 시간 몸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온기와 움직임을 받아들인 내부의 층위이다. 이러한 내부를 작품의 표면으로 전환함으로써, 보이지 않던 시간과 감각의 구조를 바깥으로 드러낸다.

이때 보풀은 단순한 손상이나 낡음의 징후가 아니다. 그것은 반복된 접촉 속에서 섬유가 바깥으로 밀려 나오며 만들어낸 시간의 흔적이다. 손이 많이 간 옷에서 발생한 보풀처럼, 오래 밟힌 잔디가 황갈색의 표면으로 남듯, 작가는 마모와 접촉이 만들어낸 표면을 통해 한 장소와 몸에 축적된 시간을 읽어냈다. 해체된 니트 조각들은 다시 연결되고 응집되며, 더 이상 개별 의류가 아닌 하나의 섬유적 기둥이자 덩어리, 그리고 장소의 기억을 품은 새로운 구조로 전환했다. 

 


《덧》에서 ‘덧’은 무엇인가를 새롭게 덧붙이는 행위라기보다, 반복된 시간과 접촉이 표면 위로 밀어 올린 흔적에 가깝다. 사라지는 건축과 남겨진 섬유 사이에서, 작가는 우리가 살아온 장소가 어떻게 몸에 스며들고, 기억 속에 축적되며, 다시 다른 물질과 형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표현했다. 재건축을 앞둔 장소를 보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해체 이후에도 지속되는 관계와 기억의 구조를 섬유를 통해 다시 세워 보려는 과정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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