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안경 공방, 일무라노(IL MURANO)

오예슬 기자 / 기사승인 : 2022-12-07 00:16:17
  • -
  • +
  • 인쇄
인구의 절반이 안경을 쓴다. 그들에게 자신이 이용하는 안경원의 인테리어를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대답은 아마 같을 것이다. “벽은 하얗고요, 조명이 엄청 많아요” 하지만 일무라노를 이용하는 사람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사진기를 꺼내 사진을 찍을 뿐이다. 사진으로 오래도록 남기고 싶은 일무라노 인테리어.

 

40㎡가 조금 안 되는 협소한 공간이다. 진열된 안경테를 한눈에 살펴보기엔 적당한 크기의 공간이지만 자칫 답답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좌우로 벽면 거울을 설치했다. 거울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적인 공간은 40㎡의 제한된 면적에 공간감과 깊이감을 제공한다.

그리드로 거둔 일석이조 효과

벽면 거울보다 더 세련된 방법으로 공간감을 제공하는 인테리어가 바로 그리드(grid)다. 합판으로 제작된 그리드는, 가로와 세로 양방향으로 뻗어나가 교차되는 수직선의 집합을 만들어낸다. 덕분에 공간 전체가 위아래로 조금씩 넓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드는 벽면에서 끝나지 않고 천장으로 이어지는데, 천장으로 바로 이어지는 그리드를 모두 직선으로 처리하지 않고 아래쪽으로 반구 형태를 그리며 이어지도록 했다. 이는 반복된 직선이 주는 단조로움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드는 약 250여 개의 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드는 인테리어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담당하면서 진열장으로도 사용돼 꽤 실용적이다. 그리드를 꽉 채우고 있는 선글라스 때문에 일무라노를 선글라스 전문점으로 아는 이도 적지 않다. 이러한 오해야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드 하나로 시각적 효과와 실용성을 동시에 얻어 일석이조이기 때문이다.

 



와인바 아니죠, 공방 맞아요

사실 그리드가 한창 제작될 때 안경점 앞을 지나던 사람들은 이곳에 와인바가 들어서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무라노 김석태 원장이 의도한 것은 공방 같은 안경원이다. 그래서 인테리어 재료로 목재를 선택했고, 목재로 따뜻한 느낌을 내고 싶었다. 유리 세공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무라노 섬에서 이름을 따온 이유도 유리를 만드는 이들의 고집스러운 장인 정신을 본받고 싶어서다. 직접 안경테를 제작하지는 않지만 손님에게 안경을 제공하기까지 전 과정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일무라노가 정감 있는 안경 공방으로 인식됐으면 하는 그도 “조명 하나만 켜면 분위기가 정말 와인바 같아요”라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와인바로 착각할 만한 이유는 그리드뿐만이 아니다. 우아하게 빛나는 샹들리에와 구릿빛으로 반짝이는 조명도 한몫한다. 샹들리에는 김석태 원장이 안경 렌즈에 일일이 구멍을 뚫어 낚싯줄로 엮어 만들었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인테리어 시공을 담당한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U.lab) 직원들도 거들었다. 구릿빛 조명은 세계적 산업디자이너 톰 딕슨의 작품 Copper Shade다. 두 개의 조명은 목재가 발하는 은은한 갈색빛과 조화로움을 자랑한다.

동그라미로 부드러움을 입히다


 


유랩은 의도적으로 색을 많이 쓰지 않았다. 굳이 색을 쓰지 않아도 그리드를 채울 선글라스의 다채로운 프레임이 인테리어의 한 부분을 담당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치밀한 계산은 여기에 또 있다. 바로 샹들리에와 조명, 벽면 거울이 발휘할 수 있는 각 장점을 하나로 묶어 그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다. 세 가지 모두 주변 환경과 사물을 통과시키거나 혹은 반사시켜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이미지의 반복 덕분에 그리드가 가진 평면적 이미지에 입체감을 더할 수 있었다.

둥근 모양의 렌즈와 조명은 직사각형 면적과 네모진 그리드, 각이 진 안경 진열장이 가득한 공간에서 감초 역할을 해 부드러움을 입혀준다. 부드러운 곡선은 둥글게 처리한 그리드와 이어져 연속성을 느끼게 한다. 개별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요소들이, 알고 보니 모두 동그라미로 부드러움을 입히고 있었다.

안경원의 품격

 


일반 안경원이 너도나도 반값 세일을 외치며 상업적으로 흘러갈 때, 김석태 원장은 품격을 지키기로 했다. 그래서 공방을 표방하는 안경원을 떠올렸고 이에 유랩 김종유 소장도 공감했다. 두 사람은 기존 안경원 인테리어와 차별화를 위해 목재를 선택했고, 유리 진열장 대신 앞이 막힌 귀금속 진열장을 만들었다. 안경을 만드는 사람이 먼저 안경을 아껴야 안경을 쓰는 사람도 그 마음을 따라 자신의 눈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게 일무라노 인테리어다.

이렇게 일무라노가 품격을 갖춘 인테리어를 선보이는 바람에 안경원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부담스러워한 이들도 많다. 사방으로 안경이 그득하고 조명을 세게 때려줘야 안경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안경이 있어야 할 곳에만 있고, 은은한 조명이 빛을 발하는 곳도 안경원이라는 사실, 기억하자.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AD
오예슬 기자 오예슬 기자

기자의 인기기사

관련기사

해외 가구디자이너 ‘피터 메리골드’... 기하학으로 짜 맞춘 가구의 아름다움2022.12.05
‘아트리뷰(ArtReview)’ 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22 파워 100〉 선정2022.12.05
한복, 뉴욕 뉴욕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전광판에 전면 등장2022.12.06
자연 생태계의 보고, 무안 회산백련지2022.11.08
깨끗한 화장실을 위해 나무로 만든 '수납 박스'와 '변기 브러시'2022.11.16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