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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신애 작가 <작가 미상의 슬픔> |
애도 그 자체가 선명한 시절, 공예와 미술이 동일체를 이루고 애도의 경건한 슬픔을 조각하고 보살피기로 했습니다.
애도는 구석진 방의 침대에서부터 일상의 공기 속까지 떠돌아다니다가 우리를 급습하는 몹쓸 놈의 비물질입니다. 누구든 예외일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애도는 밤의 습기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에 우리 모두를 대상체로 삼는 비정한 슬픈 체액입니다.
애도는 가까이할수록 늪에 빠져드는 듯한 모호한 난제이며, 자기 몸에 적당히 맞춰 봉제할 수 없는 절대적 대상입니다. 하지만 자타의 애도를 외면하거나, 상실한 시대는 이기적 평화로 위장한 짐승의 시대와 다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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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공간 복도에 설치된 애도 관련 작품들 |
공예는 저잣거리에 고립된 기물이지 않기 위해 타인의 슬픔을 디자인하고, 미술은 슈퍼에고의 불덩어리를 식히기 위해 자신의 애도를 노래합니다, 자기 세계관을 재생하는 작가들에게 애도는 호기스러운 주제이면서 한 번은 건너가야 하는 검은 담즙의 땅입니다.
이번 전시는 메마른 땅을 굽어살피고, 리비도의 정염을 정화하고, 상실한 소녀시대를 추모하고, 상처투성이인 몸을 어루만지고, 고독의 냉기를 다스리고, 무명인의 무던함을 기억하고, 사물의 근본을 자각하고, 적막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애증의 맥락을 구분하고, 퇴고 이후의 후유증 지각하고, 그리고 이 모든 애도를 애도합니다.
2024년 5월 9일, ‘애도’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자기만의 위패와 비문을 조각해 애도의 집을 지었습니다. 10개의 방에 드리운 애도의 그림자에 위령제를 올리는 일에 미술도, 공예도 그 밖의 어떤 경계도 없습니다. 오로지 애도를 빙자한 궁극의 자유만 있을 뿐입니다.
이 찬란한 오월의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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