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공예의 복원 필요할 때
'새로움, 설렘, 기다림, 성장, 기대’라는 미래 규방공예 선망
대구에서 활동하는 침선공예가 최성미의 작업은 식물적 감각과 사유를 머금고 있다. 식물적 감각이란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함으로써 물질에서 의식까지 하나의 내면세계로 파악하는 것이고, 식물적 사유란 삶의 매듭을 엮어 자연적 생명력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원시사회에서 기인하는 자연숭배 사상과 생태주의가 서로 맞물려 삶을 지속하는 동양사상의 맥락이기도 하다.
공예가 일상의 마디마디와 맞닿아 생활과 문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장식이나 조형만 탐한다면 외형 중심의 동물성에 매몰되어 점차 고유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 현대공예가 무분별하게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오가면서 본질이 퇴색되고 외부의 독성으로 오염됐을 때, ‘식물성’ 공예의 복원력에 주목해야 한다.
최성미가 침선으로 매듭한 규방공예를 보면서 마치 한 여름 흙담장 아래를 수놓은 채송화의 향연을 떠올렸다. 붉거나 노랗고, 연분홍이거나 연노랑 빛의 채송화는 아무래도 소녀의 꿈과 감성에 맞닿아 있다. 7월에 피어 10월까지 피고 맑은 날 낮에 피며 오후 2시경에 시드는 일년생 쌍떡잎식물 채송화는 한 시절 여성들의 감각이자 여린 식물성 희망이다. 최성미의 규방공예는 담장을 따라 피어나는 채송화처럼, 바느질을 줄기 삼아 작은 천조각을 마주해 담장 밖의 해를 바라보는 것으로, 여백 그 자체이면서 삶을 일구는 식물성 에너지이다.
최성미의 작품을 돌아보기 전에 한국의 규방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규방이란 여성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방’이라는 제한적 의미에서 ‘여성 커뮤니티’라는 확장된 공간을 말한다. 혼수품을 마련하기 위해 솜씨 좋은 동네의 아낙들이 다 모여 몇 달, 몇 년에 함께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형성된 여성들만의 사회적 공간에서 그들은 서로의 삶을 얘기하고 고락을 나누며 살아왔다. 규방에서 창조된 ‘규방공예’는 여인들이 제한된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충실한 삶을 살았다.
천연염색, 침선(바느질), 매듭, 자수가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한국의 전통미는 생활공예품에 입혀져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특히 조각보는 규방공예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조각천을 활용하여 기하학적 패턴의 멋스러움으로 생활의 활기를 높이고 시각적 운치를 더함으로써 예물이나 고급 장식에 활용되기도 했다. 자연 소재로 삼베, 모시, 옥사 등을 활용한 발의 경우는 실용성과 더불어 은은한 운치와 소소한 낭만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규방공예 소품으로는 바늘방석, 가위집, 인두집, 인두판, 자집, 수저보, 골무, 다과보, 다기보, 두루주머니, 귀주머니, 약낭, 향낭, 강릉주머니, 별낭, 바늘쌈지노리개, 베갯모 등이 있으며 혼례용으로 사주보, 연길보, 혼서지보, 기러기보 등이 있고, 쓰개로는 남자용으로 복건, 호건 여자용으로 조바위, 남바위, 굴레, 아얌, 댕기 등이 있다.
또 의복류로는 남녀한복을 포함하여 배자(민배자, 누비배자, 털배자), 버선, 타래버선, 아이돌복, 전복, 토씨, 배냇저고리등 다양한 종류들이 있다. 조각보의 종류로는 바둑무늬조각보, 사선조각보, 불규칙조각보, 홑보, 겹보, 자수보 등이 있고 무명, 비단의 종류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하고 있다.
최성미의 침선 규방공예는 전통의 기법과 문양을 근거로 현대적 감각의 실용과 미술적 안목을 제시한다. 아름다움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외형보다는 마음의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가 규방공예를 만난 것은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어찌 보면 좀 늦은 나이에 시작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짧은 시간에 이토록 놀라운 기술과 감성을 구사하는 것은 오로지 선험적 경험 즉, 타고난 예술적 기질과 집요한 성격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규방공예를 하고 있지만 누구나 최성미의 작품이 되지는 못한다. 외형으로 보면 비슷할 수도 있지만 침선의 완결한 미와 색의 조합과 대비는 그만의 탁월함이 있다. 그의 천성적인 예술적 재능과 감각이 늦은 나이에 만개한 것이다.
그의 규방작품이 절묘한 기교와 서사를 잉태한 예술품에 이르는 것은 그의 천부적 재능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절정에 이른 예술품은 고유의 식물적 사유를 꿈꾼다. 석굴암의 본존불상, 반가사유상, 백제금동대향로가 예술을 넘어 도(道)에 이르러 자연의 숭고미에 천착한다. 식물성 사유의 보편적 미학은 시대정신을 가다듬고 무한의 반복성을 따른다. 그의 규방 민예품이 현대생활 문화에 보편적이지 않을 수는 있어도 결코 소외될 수는 없는 까닭은, 고전이 가진 고유의 생명력 때문이다. 식물성 천연 재료가 지닌 물질의 순수성과 오로지 사람의 감각에 의지한 치밀한 손기술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 그 자체이다. 혹은 효율성 때문에 기계적 수단을 가미하더라도 재료의 물질성만은 식물적 가치에 천착한다. 전통공예가 이것마저 포기한다면 이는 곧 산업화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서다.
작가는 ‘내일’을 가슴에 품고 ‘새로움, 설렘, 기다림, 성장, 기대’라는 단어를 되새긴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 규방공예를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의 필요를 조화롭게 결합시켜 궁극적인 아름다움에 도전하고 있다. 좀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예술을 추구해 세대와 세대를 잇는 규방예술을 추구하고 있다. 어제의 유산이 내일의 전통이 되는 공예의 장을 펼치고자 각고의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앞에 두고 흙담장 아래에 핀 채송화의 식물적 감각과 사유를 느낀 것은 지극히 개인적 취향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감각에 따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느끼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물의 용도와 기능에만 천착한다면 ‘아름다움’의 지속성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 최소한 침선공예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보자기에서 만이라도 색의 비례와 조화에서 식물성을 다지고, 넓게 펼쳐진 천의 나빌레라로 채송화의 꽃가루가 부유하는 식물적 상상을 펼쳐보기 바란다.
최성미: 현재 대구문화재단산하 대구아트웨이 소속작가이면서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규방공예를 가르치며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또한 공예트렌드페어(2022, 2023), 공예주간(남산골한옥마을, 2025), 홈테이블데코페어(2024), 한복박람회(2023, 2024, 2025), 아트스페어 대구아트웨이릴레이 개인전(대구현대시티아울렛, 2023), 집의 사물들_삶의품위(홍건익가옥 특별전, 2022 >, 인사동갤러리 ‘갤러리밈’(이달의 작가, 쇼윈도전시진행, 2021) 등 작가로서의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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