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의 새로운 방향 제시
전시는 아트스페이스3 갤러리에서 11월 4일까지 열려
“가구는 말을 하는가? 생각을 하는가? 스스로 움직이는가? 고요히 머무를 수 있는가?”
이 엉뚱한 질문은 가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작은 단서다. 기능과 효율의 생활 도구인 가구는 우리들이 이해하는 상식에 두어도 되지만, 사물에도 격조가 있고 그것의 구성 인자 ‘물질’에 예를 갖추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서양식 삶의 구조를 차용한 생활방식은 그에 맞는 가구가 필수적으로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식의 가구가 있고, 그것으로부터 현재의 감각과 이해가 충만한 전환기적 현대 가구를 등장시켜야 함은, 한국의 가구작가들에게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생각했다. <신식가구 新識家具>는 우리 시대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2년 전 즈음 프로젝트를 출발시켰다.
프로젝트에는 조각가 나점수, 소목장 방석호, 가구디자이너 송기두, 아트퍼니처작가 정명택이 참여했다. 각기 다른 장르의 작가를 부른 데는 낯설어 생경하거나, 두터운 서사를 입은 가구를 통해 가구의 인식 체계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4인의 작가들은 ‘물(질)의 감춤과 드러남’, ‘조선가구의 미니멀리즘과 현대화’, ‘직선과 곡선의 비일상적 감각의 교집합’, ‘고전적 사물의 기척이 발현하는 무위’를 화두 삼아 물성의 이면을 탐미하고 조형해왔다. 자기만의 세계관과 입지가 단단한 작가들에게 <신식가구>는 ‘업(業)과 체(體)’를 화두로 제시하고, 가구의 인식에서부터 담론을 아우르고, 실체적 형태와 초월적 지위까지 해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가구는 일상과 밀접한 도구이면서 문명의 상징체로 인류와 동행해왔다. 그 역사는 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다. 세계 최초의 가구는 스코틀랜드의 오크니 제도에서 발견한 신석기 시대 돌침대와 돌찬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시작으로 서구의 가구 역사는 지금까지 형식과 기능이 어우러진 가구를 만들었고, 디자인에 있어서도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가구는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 이성에 호소했고,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에는 권위와 사치를 상징하는 형식과 문양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고전주의가 도래하면서 엄격한 자연주의 기준이 세워졌고, 산업혁명과 함께 열린 빅토리아 시대의 가구는 기계와 수공 제작의 오차를 경험하면서 ‘미술 공예 운동’의 시발이 되었다. 이 흐름은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시대로 이어지면서 유기적이면서 기하학 형태의 가구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지나치게 화려하고 사치스런 가구들은 곧 힘을 잃고 만다. 그즈음에 독일에서는 근대 디자인의 산고인 바우하우스가 태동하면서 모더니즘을 견인했고 그 영향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미술, 공예, 디자인이 제시하는 가구는 기학적 수치에 편중되어 과도한 형식과 억압적 의식을 강요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사물의 ‘현상’ 그 자체가 아닌, ‘현상물(現象物)’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신식가구> 또한 형식주의에 도취한 기형적 형태의 가구를 경계하고 형식의 새로움보다 그 새로움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역점을 두었다. 신(新)과 식(識)의 차이와 정도를 승화시키고 가구의 몸을 이루는 물질의 들숨과 감각의 날숨이 한 몸이기를 바랐다. 이는 물질의 질료와 작가의 정신이 반죽되어 시의 언어가 되고 몸의 체액이 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가구가 쓸모를 넘어 물성의 초월적 상태를 살피는, ‘알아챔’의 새로운 영역을 도모하고자 했다.
가구에 대한 이해의 시점을 달리해 물질과 형태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이끌어내어 사물의 도리(道理)를 발현하는 일은 현대 가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주요한 조건이 된다. 이 일련의 모든 상황을 이해한 작가들은 사물의 대표적 매체인 가구를 대상으로 담대한 의도와 독창적 작업으로 조율해갔다. 전시장에 놓인 20여 점 가구의 표지에는 기능을 바탕으로 상징과 은유가 도사리고 있어 관람객의 안목에 따라 가구가 내뱉는 언어와 표정의 차이가 확연하게 다를 수 있다. 기능을 찾으면 용도만큼 보이고, 의미를 얻고자 하면 물성의 서사는 물론 작가의 세계관까지의 들여다 볼 수 있다.
<物> 나점수 / 다루고, 다가감의 여정
조각가 나점수는 물질이 형태에 구속되는 오류를 피하고 인위가 우연을 배제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가구를 보는 시선의 감춤과 드러냄을 읊는다. 그는 테이블의 본질은 비어 있는 것이며 그래야 여백을 품을 수 있음을 강조했고. 옮기기 불편할 정도의 무게를 가진 의자는 기능을 감추고 물질의 현상으로 다가가서 사유의 능력을 가짐으로써 기존의 의자와 차별성을 주었다. 또한 벽에 홀로 세워진 책장은 나무 한가운데를 깊게 파내고 그 자리에 단 한 권의 책만 두도록 해 단 하나의 세계관으로 진입하는 사유의 입문처가 되도록 했다.
<必要> 방석호 / 필요의 필요만 남기다
조선 가구는 기능을 내재한 기물이면서 이치와 격조의 대상체다. 소목장 방석호는 조선 가구의 정서와 감성을 현대성으로 전환을 도모하는 가구 장인이다. 그는 조선 가구의 특징인 사면의 수직, 수평 구조에 전통미와 현재의 감각을 교차시키고, 묵직한 먹의 중력에 최소한의 필요조건만 남긴 조선반닫이에 주력해왔다. <신식가구>에는 미묘한 곡선과 장식을 절제한 신작 두 점을 내놓았다. 절곡과 카빙 기법으로 마치 돌을 깎듯이 다듬은 표면에는 목수의 정신과 몸의 의도까지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필요의 필요’만 남아 기능과 형태의 미감이 교차하는 그의 반닫이는 국제적 수준과 교통하는 데 전혀 손색이 없다.
<각각의 감각> 송기두 / 구조적 감각의 교집합
건축을 전공한 송기두는 건축의 직선과 자연의 곡선이 만나는 가구에 감각의 속성을 입히는 가구디자이너다. 기능적이면서 동시에 미적 오브제로 조형된 그의 작업은 새로운 감각과 감성을 이끌어내어 가구 너머의 가구를 추구하고 있다. 집성한 목재의 결을 따라 흐르는 곡선의 앙상블은 가구의 미래성이 농후하다. <신식가구>에는 가구의 4면이 각각 다른 형태적 변화에 자연과 인공의 즉흥적 감각을 교차시켰다. 그는 비일상의 감각을 명징하게 전하고자 면의 여러 군데에 의도적으로 미완성의 자리를 남겨 시간차를 주었고, 표면에 드러난 감각의 충돌과 반동은 조화와 융합으로 마감한다. 곡선의 시선을 쫓아가도 좋고, 그냥 쓰다듬어도 좋다.
<둠> 정명택 / 역사의 흔적을 조형한 오브제
정명택은 한국 고건축에 내재된 사물의 정신과 공간의 내재율을 호흡하는 아트퍼니처 작가다. 그는 무위(無爲)의 순수미, 무심(無心)의 담백미, 무형(無形)의 공간미를 ‘데’와 ‘둠’으로 안착시키고 한국의 성정(性情)을 녹여낸다. 초석으로 사용한 자연석 ‘덤벙주초’를 갈고 다듬어 재료에 은폐된 물성의 담연한 자태, 생략과 무관심, 대범함을 미적으로 승화했다. <신식가구>에는 경주 황룡사 터에 놓인 초석(礎石)을 금속으로 재현해, 인간의 의지와 사물의 역사성, 물질과 비물질의 관계를 작품의표면에 남겼다. 역사와 현재가 생환하는 침묵의 흔적이 바람으로 흘러내려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4인의 작가들이 제시한 가구가 어떤 반응과 결과로 이어질지는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경우에 따라 낯선 형태와 생소한 메시지에 새로운 경험을 가질 수도 있고, 작품의 세계관에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자기 혁신을 통해 더 나은 가치를 도모하려는 작가들의 수고만큼은 간과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보이는 것에 감춰진 물질의 내밀한 언어와 보이지 않는 것에 스며든 사물의 이치를 구현한 <신식가구>의 지속적 운동성이 우리 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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