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한 흙의 영혼을 보담다
바람을 맞았나, 비를 맞았나. 오늘도 가루가 된 도자기 파편들이 우르르 바닥에 쏟아진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떠돌던 이들을 씻기고 갈아 새로운 탄생을 위한 예를 다한다.
물질 소비 사회에 대한 차가운 연민
미물의 파편으로 태어나는 심다은의 도자 작품 <인간의 암석Humanrock>은 2020년 <실용practicality>와 2021년 <비정형 Atypical>시리즈의 연장선으로, 생산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시작된 작품이다. 학부시절 석고 슬립 캐스팅 작업을 하며 하나의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 수반되는 폐기물의 양을 실감한다. 형태에 대한 실험이 쓰레기로 이어지는 것에 회의감을 느낀작가는 장식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실용이 지닌 미학을 드러내는데 집중하기 시작한다.
현대 소비사회는 1초라도 생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든다. 트렌드와 필요를 구분 못하는 혼돈 속에서 사람들은 ‘실용’이라는 중요한 논제를 쉽게 망각하곤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노릇’이 부재한 사회에서 작가는 애도 없이 버려진 도자기들을 주어와 술어로 삼았다.
작가는 절구를 이용해 도자 조각들을 채를 통과할 정도의 유연한 알갱이로 돌려놓는다. 이를 점토와 섞어 1,200℃에 구우면 거칠거칠한 피부에 유약 반점이 찍힌 민낯의 도자기가 완성된다. 유약 마감을 하지 않고 완성된 도자기는 이전의 생애와는 달리 언제든 땅의 자리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심다은의 도자기 재생 작업은 2023년 신작 <인간의 암석>에서 다시 한 번 방점을 맞는다. 실용에 대한 찬미로 형태에 있어 개성과 장식성을 배제했던 작가가도자의 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는 영역으로 자리를 옮긴 후 처음 선보이는 작업이다. 새로 제작된 도자기는 작가의 손에서 해방되어 자연의 풍화에 순화된 암석의 모습을 흠모한 결과물이다.
심다은은 자신의 집과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구리와 남양주 지역의 길을 걸으며 눈에 띈 돌, 눈에 밟히는 돌, 한 번 더 쳐다보고 싶은 돌들을 채집하고 이를 도자의 형태로 옮기는 작업을 수행해왔다. 자연의 투박한 곡선이 그대로 재현된 도자기의 몸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튀어나온 주둥이와 바닥을 만날 수 있다.작가에게 이 두 요소는 암석이도자기로 인식되는 가장 최소화된 기의이다. 자연을 빼닮았으나 여전히 실용을 전제로 한 물건, 그 이상의 의미는 탐닉하지 않는다.
버려진 것들을 향한 애도, 순환을 위한 죽음
<인간의 암석>은 재료 그 자체가 형식과 의미를 결정한다. 한번 뜨겁게 타올랐으나 완성되진 못한 도자기 파편들이 바로 그 재료이다. 심다은이 도자기들을 절구에 넣어 빻고 갈아내는 행위는 암석이 분해돼 토양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풍화 과정과 같다. 인간의 생산력은자연의 풍화 속도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큰 격차를 벌렸으나, 작가는 무력감에 빠져 있기보단 자신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것들부터 살려내 보기로 했다.
한때 불을 만나 고집스럽게 단단해진 조각들이 작가가 내리치는 힘을 받아 서로 부딪치고 깨지고 마침내 형태를 온전히 잃음으로써 유연하게 뒤섞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작가는 유약에 둘러싸여 질료를 상실한 흙을 애도하고 다시 토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소생의 길을 터 주었다. 자연의 순환과 삶과 죽음의 연속성이 담긴 심다은의 도자기는 무수한 흙의 영혼들을 수장한 유골함이자 영원한 안식처가 된다.
회생한 흙의 영혼
“<인간의 암석>은 암석의 지구적 순환 속에서 겸허해지는 한 사람의 일기다.”
심다은은 허점이 없는 새것과 다루기 쉬운 재료보다 미물의 상태로 버려진 도자기와 암석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바다에 쏟아낸 거대한 오물에 한 컵 더 끼얹는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이미 엎질러진 무한 생산의 홍수에 자신이한 방울이라도 더 튀길까 하는 염려로 누구도 아프지 않은 방향으로 몸을 틀어왔다. 이 선한 행위가 과연 먼 미래에 지구를 구할 수 있을지, 이미 넘쳐나는 쓰레기들을 모두 갈아 새로운 무언가로 탄생시킬 수 있는 그날이 올지,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작은 도자기가 <인간의 암석>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 땅에 태어난 이유는 자연의 순환이라는 근원적인 속성에 예속된 나약한 인간임을 수용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죽음 앞에 서봤던 작가가 매일 깨진 도자 파편을 갈아 새 도자기를 만드는 이유는 삶의 유한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알갱이가 되었기에 섞일 수 있었듯, 인간도 언젠가 작은 입자가 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때 삶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암석이 부드럽고 차진 점토가 되어 풍부한 토양이 되기까지 거친 바람과 물을 맞는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 회생한 흙의 영혼을 수확한 작가는 이제 막 거친 풍화를 시작한다.
글 : 정다경(미술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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