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
십여 년 전,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뉴욕으로 떠났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황금의 나라 신라’를 위해서다. ‘한국 문화재의 지존(至尊)’으로 불리는 이 유물이 뉴욕으로 떠나기까지는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문화재청이 불상의 반출에 제동을 건 것이다.
“중요한 유물인데 너무 많이 해외로 나갔다”는 이유에서였다. 소식을 들은 박물관 측은 불상 없이 특별전은 없다며 강수를 뒀고, 청와대까지 나서 중재한 끝에 반출이 허락될 수 있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을 조건으로 어렵사리 허락된 반출이었다. 일만 킬로미터의 긴 여정을 앞두고 불상은 일주일에 걸쳐 세심하게 포장됐다. 포장을 마친 불상은 마침내 작은 상자에 담겨 비행기에 실렸다. 보험금만 500여억 원,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 귀한 불상이 담긴 곳은 뜻밖에도 평범한 오동나무 상자였다.
사실 오동나무는 그리 귀하게 대접 받는 나무가 아니다. 심은 지 십년이면 넉넉히 자라 목재로 쓸 수 있고, 단단하고 가벼워 책상이나 옷장 따위를 만들 때 만만하게 쓰인다. 심지어 오동나무로 만든 관을 뜻하는 ‘동관삼촌(桐棺三寸)’은 가장 보잘것없는 관을 의미한다. 그러나 유물을 보관할 때 오동나무는 무척 귀하게 쓰인다. 오동나무의 뛰어난 습도 조절 능력 때문이다. 오동나무는 습한 환경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건조한 환경에서는 수분을 배출해 실내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오동나무는 고서를 보관할 때 더욱 요긴하게 쓰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장서각 수장고의 바닥과 벽면이 모두 오동나무로 마감되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박물관이 아니어도 오동나무가 인정받는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악기 공방이다. 오동나무는 울림이 좋아 악기의 재료로 즐겨 쓰인다. 오동나무를 악기로 쓴 역사는 우륵이 가야금 켜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지금도 가야금은 오동나무로 만든다. 일찍이 조선시대 문신 신흠은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 소리를 듣고 “오동나무는 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고 노래하기도 했다.
가만히 보면 오동나무는 어머니를 닮아 있다. 오동나무는 널찍한 이파리 빼고는 튀는 구석 없이 수수하고, 산중 어디서든 통직하게 자라나 불기운과 습기를 말없이 견딘다. 베어져 쓰일 때에는 불상이나 소리같이 아름답고 연약한 것들을 자식처럼 품어낸다. 옛 사람들도 오동나무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을까. 옛 사람들은 어머니의 상중에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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