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하우스, 낙엽송으로 지은 성역

김수정 기자 / 기사승인 : 2022-12-21 22: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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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소통하는 건축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했을 때, 차 한 잔의 여유를 위한 공간이 펼쳐졌다. 체코의 건축가 그룹 에이원 아키텍츠(A1 ARCHITECTS)가 지은 정원 건물 이야기.

자연과 소통하는 건축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했을 때, 차 한 잔의 여유를 위한 공간이 펼쳐졌다. 체코의 건축가 그룹 에이원 아키텍츠(A1 ARCHITECTS)가 지은 정원 건물 이야기.


모두를 위한 작은 공간_ Teahouse in the Garden

 


체코의 수도 프라하, 어느 산기슭에 작은 정원이 하나 있다. 야생 식물이 무성하지만 어딘가 우아한 분위기가 흐르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건축가 3명으로 이루어진 에이원 아키텍츠의 멤버, 데이비드 마스탈카(David Maštálka)가 만들어낸 다실 <티 하우스 인 더 가든> 때문일 것이다.

“전 차 문화의 전통 숭배자는 아니지만 친구들과 모일 수 있는 문화라는 측면에는 큰 흥미가 있어요.” 그래서 이 다실의 구도를 보면 마스탈카의 의도가 짙게 묻어난다. 서양의 차 문화에서는 부엌에서 물을 끓여 거실로 티포트를 가져오는 모습이 보편적이지만, 마스탈카는 일부러 다실의 실내 중심점에 찻물을 끓일 수 있는 화로를 놓았다. 그래서 손님들은 자연스레 화로 주위로 둥글게 모여 앉게 된다. 같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끼리 서로를 마주볼 때 형성되는 유대감. 그것을 마스탈카가 원했기 때문이다.

 

 


사실 구도 외에도 마스탈카의 노림수는 하나 더 있다. 그을린 낙엽송을 외장재로 선택해 겉보기에 건물은 다소 어둡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손님이 문안으로 들어서면, 은은한 빛으로 가득 차 경건한 느낌마저 주는 방을 발견하게 된다. 돔 형태의 천장에 반투명하게 종이를 발라 자연광을 통과시키고, 벽의 절반 정도를 시원스레 터서 정원 풍경을 방의 일부로 끌어들인 덕분이다. 그가 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유쾌한 반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놀라움도 잠시, 손님들은 곧 이 분위기가 가져다주는 이질적이고 느긋한 시간의 흐름에 깊은 인상을 받고,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된다.
 

수면에 비친 다실_ Black Teahouse

 


다실 ‘블랙 티하우스’는 프라하에서 멀지 않은 도시 체스카 리파의 호숫가에 세워져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추구했다는 점. 먼저, 건물 주위의 넓은 정원은 자연스러운 조경을 추구한 덕분에 마치 인근 솔숲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보인다. 들풀을 이고 있는 지붕이나 그을려서 까맣게 탄 낙엽송 외장재도 녹음이 우거진 풍경에 건물을 동화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한편, 건물 내부의 공간은 실내 중앙의 화로에서 마루를 지나 베란다로 향하는 일련의 흐름을 지닌다. 그런데 다실의 사방을 둘러싼 미닫이문의 존재가 재미있다. 서양 건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문이지만 건축가는 굳이 이문을 썼다. 이유는 앞서 본 대로 신중하게 보존한 자연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이다.

 


밀고 당기는 문과 달리 미닫이문은 열어놓은 틈이 액자의 사각형 프레임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다실에 들어온 사람은 미닫이문을 여닫으며, 다시 말해 액자의 크기를 스스로 조정하면서 자신의 눈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찾는 일이 가능하다.

그물이 덮인 독특한 모양의 다실 천장을 바라보면 중앙에 구멍이 나있다. 여기서 내려온 줄 끝에 주전자가 매달려 방 중앙의 화로와 연결되면서 구도상의 안정감을 부여한다. 또, 사방의 미닫이문을 전부 닫으면 어두워진 실내에 이 구멍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아롱거리며 한 편의 극을 연출한다.

방을 나와 낙엽송 판재를 깔은 베란다에 이르면 잔잔한 호수의 수면을 바라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블랙 티하우스는 단지 자연 속에 파묻힌 작은 집이 아니라, 건물과 공간을 적극 활용하여 자연과 소통하고자 하는 유기적인 건축물인 것이다.

 

 


사진 A1 ARCHITECT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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