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디자인하는 목수 임기연...나무액자를 말하다

김수정 기자 / 기사승인 : 2024-01-23 20: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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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집이 있듯 회화나 사진도 액자라는 집이 있다. 액자는 형식이 아니라 기억을 가두거나 담는 도구이다. 작은 나무액자 속 한 장의 사진은 그 누군가에게 시간을 정지시킨 채 시간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그 이야기의 사각 틀을 만드는 ‘꼴액자“ 대표 임기연 목수를 만났다.

작업장은 톱밥이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오로지 나무 액자만을 자르고 대패질하는 공간이기에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닐 텐데, 소나무 향이 가득 전해오는 이곳은 방문객을 낯섦과 익숙함으로 맞는다. 장비와 나무 재료들이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벽에 걸린 액자들은 마치 자로 잰 듯 가지런하다. 액자의 숲을 지나자 헝클어진 머리에 낡은 셔츠와 늘어진 슬리퍼를 신은 채 작업 중인 임기연 목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어느 한곳을 집중하고 있다. 누군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계속해서 보아 온 흔적을 읽을 수 있다. 무엇을 보았을까? 아마도 사각의 틀 속에 담길 한 장의 회화가 아닌 그것의 집을 보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의 액자에는 특별함이 있다. 아무리 화려한 액자도 그 속에 담기는 그림이나 사진을 뛰어 넘지 않아야 하는 그의 액자 철학이다. 그림보다 화려한 액자 틀에 갇혔던 우리들이었기에 그의 철학이 상식을 뛰어넘어 다가왔다.

“그림보다 튀면 안 됩니다. 액자는 환경과 공간이 어울려 본연의 것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임 목수는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액자가 아니라 작품과 조화를 이루는 액자,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통해 작품 표면 밖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목수다. 

 


임 목수는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여 미술을 배우게 되었고 약 30년 전 쯤 화실을 운영하면서 부업처럼 시작된 액자 만들기가 지금까지 이어졌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본업이 액자 만드는 일이고 그 일에만 충실하겠다고.” 답한다. 그의 액자는 회화나 사진의 그림자의 역할에 한정시키고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이미 액자라는 기능에서 벗어나 또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그이기에, 그의 액자는 겸손이 낳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나무라는 단순한 소재에 깊고 넒은 생각으로 날을 문지르는 그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하다.

‘액자도 예술이다’ 우연한 기회에 펼친 전시를 통해서 그의 액자는 많은 사람들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는 오로지 정성으로 작업한다. 정성을 다하면 그게 바로 예술이고 예술작품이다.

 


그의 작업장 이름은 ‘꼴’이다. 꼴은 사물의 형식이 아니라 ‘됨됨이’를 말한다. 그의 액자는 틀이 아니라 다른 작품에 빛을 더하는 견인차이다. 그것은 그의 겸손한 태도가 이룬 결과이다. 세상의 완성된 것에는 완성을 위한 구조가 있다. 그것은 희생이고 보조이고 보완이다.

하나의 작품이 견고한 품위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틀이 바로 액자다. 그것도 나무액자. 임 목수는 나무에 대한 치밀한 견해를 갖고 작품에 걸맞는 수종을 고른다. 그가 나무만으로 액자를 만드는 이유는 사람에게 나무가 좋다는 단순함이다. 그 단순한 나무가 장인의 손을 거쳐 액자 예술로 이어진 것은 형식을 뛰어넘어 됨됨이로 채워져서다.  

 

 


 

 

20년 이상 액자 인생을 살아 온 임 목수에게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꿈이 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작품이 영속할 수 있는 집을 지어주는 일이다. 이제는 그 집마저도 예술이 되었다. 예술이 예술을 짓는 패러다임, 그래서 임기연 목수에게 액자는 삶 그 이상의 오브제이다. ‘꼴’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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