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종이, 한·중·일 대결의 승자는?

육상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2-09-12 22: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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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의 우수성은 닥나무 사용에 있어
일본과 중국의 것에 비해 잘 찢어지지 않으면서도 물을 골고루 빨아들이고 번지지 않는 장점을 가져

서양의 종이가 보급된 이후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한지의 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천 년을 사는 종이로 불리던 전통 한지의 수명을 갉아먹었던 합리성은 오피스 공간에서 찾을 일이지 의식주의 질을 따져 묻기에는 표백제나 세척제, 형광물질을 배제한 한지의 가치가 우선한다.

한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도 없다. 그러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연 꼬리에 불을 붙여 민심을 조장했던 장면에서 보여지는 종이 연에 대한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 이를 통해 한지 보급이 일반화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한지는 중국의 선지, 일본의 화지와 제조법은 유사하나 주원료인 나무 선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 화지는 삼지닥나무의 인피섬유를 사용하고, 중국의 선지는 청단나무와 볏짚, 대나무 펄프를 혼합해서 사용하지만, 한지는 닥나무를 선별해서 사용했다.

이 수종이 삼국지의 결말을 기록한 연구 자료가 있다. 서울대학교 교수진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우선 한지는 표면이 거칠어 자연미를 주지만 화지는 섬유질이 한지보다 짧아 종이 조직이 치밀하다. 그러나 질감과 보존성에서 한지는 화지나 선지보다 앞선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과 중국의 것에 비해 잘 찢어지지 않으면서도 물을 골고루 빨아들이고 번지지 않는 장점을 가졌다.”  

 

▲ 한지의 고유 재료인 '닥나무'


한지가 천 년의 종이라 불리는 이유를 화지나 선지보다 월등한 보존성에서 찾는다. 한지에 쓰이는 닥풀은 천연 고분자물질인 다당류로 이루어져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결이 좋아지는 장점을 지녔다. 또 건축 자재 한지의 위상은 우수한 보온성과 통기성뿐만 아니라 우산으로도 거뜬히 쓰일 만큼의 우수한 습기 조절 능력에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한지의 우수성을 높이 치는 이유다.

한·중·일 종이 전쟁의 순위는 공표할 이유는 없다. 기후와 환경에 맞게 각국의 선조가 알맞게 개량 발전해 온 것이니 메달 색깔을 따져 물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이점 한가지만은 말해 두고 싶다.

한지는 “그 명칭과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에 이른다. 종이를 꼬아 만든 갑옷은 화살이 뚫지 못한다. 종이에 풀을 섞어 절구에 찢어 만든 그릇과 가구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원형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은 현재 일본과 중국이 자랑하지 못하는 사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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