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적 없는 순간의 예술... 스위스 설치 예술가 샤퓌자(Chapuisat) 형제

오예슬 기자 / 기사승인 : 2022-12-05 22: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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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와 방임 사이에 발생하는 화학 작용을 표현
도발적이고 궁금하며 오묘한 감정을 촉발하는 공간
‘In Wood We Trust’

 

형 그레고리 샤퓌자와 동생 시릴 샤퓌자는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설치 예술을 선보인다. 그들에겐 집도 절도 없다. 형제는 ‘서식지’를 바꿔가며 그곳의 지역적 특징과 사람, 역사를 공부한다. 그리곤 그곳에서 보고 느낀 바를 담아낸 설치물을 선보인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일은 그냥 설치 미술이 아닌 장소 특수적 설치 미술(site-specific installation art)이다. 하지만 마음 편히 볼 수 없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형제가 설치물을 언제 무너뜨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품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긴장된 마음으로 감상해야 제맛이다.

건축과 공간, 통제와 방임

형제의 설치물은 건축과 공간의 경계에 있다. 그들에게 건축은 통제를, 공간은 방임을 의미한다. 통제와 방임 사이에 발생하는 화학 작용을 표현하는 게 그들의 임무다. 그 화학 작용이 뭔지 알려면 진실 게임을 해봐야 한다. 샤퓌자 형제의 작품은 건축일까, 공간일까? 

▲  트리하우스 형태로 제작한 작품으로 다소 불편하지만 주거가 가능하다.


분명 그레고리는 건축적 요소가 있음을 인정했다. 건축의 테마이기도 한 재료, 과정, 공간, 경계, 그리고 통로를 종합한 게 그들의 작품이라 한다. 단, 건축 이론은 필요 없다. 이론에 집착하다 보면 실험을 망칠 수 있다.

형제는 건축 실험을 위해 건축에 가해지는 그 어떤 책임과 의무도 벗어버리고 건축에서는 꿈꿀 수도 없는 직감을 이용한다. 직감을 따라가다 보면 본능에 충실해지고, 결국 작품은 원초적 형태를 띠게 된다. 형제의 작품에서 쌓고 올리는 단순한 행위에 대한 유희를 읽을 수 있는 이유다.

“우리는 직감적인 건축에 대한 실제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이 동물임을 확인해 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는 원래 자연의 일부니까.”

형제가 창조하는 공간은 반드시 도발적이어야 하며 궁금증을 유발하고, 오묘한 감정을 촉발시킬 수 있어야 한다. 들어가보고 싶은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주는 공간. 성인 관람객들도 형제가 만들어 놓은 공간 앞에선 좁고 어두운 통로 앞에서 쭈뼛거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들은 공간에 있어서도 인체공학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온몸을 구기거나 기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대부분이다. 다소 불편하고 심하게는 불쾌하기까지 한 협소하고 긴 공간은 관람객에게 육체적 한계를 느끼게 한다.

“이런 순간이 있지 않나, 모험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엄습해 어쩐지 길을 잃은 느낌이 들 때. 이런 감정은 당신의 모든 감각을 열리게 한다.”

두 형제의 변을 들어봤다. 하지만 더 헷갈리기만 하다. 어떤 제한도 배제한 건축은 오히려 방임으로 읽히고, 육체적 제한을 가한 공간은 통제로 읽힌다. 통제와 방임이 자유롭게 교차되는 형제의 예술 그 자체가 화학 작용인 듯하다.

 

▲  리빙(living)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형제, 나무와 함께 사라지다

통제와 방임은 형제의 성격에도 적용된다. 동생은 조용하고 참을성이 많은 완벽주의자인 반면, 형은 다분히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적이며 에너지가 넘친다. 이렇게 다른 둘은 예술에 있어서 공통적인 강박 증세를 보인다. 설치 미술을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메시지가 그들의 강박관념 자체다. 이는 결코 다작에 대한 강박이 아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에게 긴장감을 안겨 줄 수 있는 기념비적인 설치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예술가의 욕심이다.

형제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은 타인의 그것보다 훨씬 짧다. 그들에게 시간은 순간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시간에 강박을 느끼면서도 순간을 즐긴다. “이렇게 신나는 세상인데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니 이해할 수 없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래서 수명이 짧은 순간의 예술, 설치 예술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단명(短命)의 설치물은, 긴 여운보다는 곧 사라질 짧고 강렬한 충격을 남긴다. 프로젝트에 가까운 형제의 예술엔 이미 사라져버린 그들의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억이 강하게 서려 있다. 그들은 그것을 ‘강력한 집단의 기억’이라 부른다.

“우리는 여행을 많이 하고 집도 없기 때문에 전시가 끝나고 나면 작품을 해체한다. 해체한 목재는 학생들에게 주거나 지역 노동자에게 주기도 한다. 우리 작품은 족적을 남기지 않아 정말 좋다.”

이렇게나 짧은 시간을 사는 작품인데, 깊은 작품 철학이라도 확실하게 남겨야 하지 않을까. 형제는 이에 콧방귀를 뀐다. 자신들을 영원한 초보자라 칭하며 대단한 이론가나 철학자임을 온몸으로 거부한다. 형제가 하는 역할은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를 맛보게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도 하나 없이 오직 내면으로 들어가는 좁고 긴 통로를 제공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일한다. 스스로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현재 속한 영역에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독려할 뿐이다.”

 

 

수백 개의 목재를 교차시켜 매트릭스 구조를 형성한 작품. 계곡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예기치 않은 병렬이 나타난다. 규칙과 불규칙의 반복이 무한히 확장된다.

 

나무가 간직한 재미난 이야기

형제는 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가지고 놀기에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란다. 워낙 숲이 많은 주라 산맥에서 태어나고 자란지라 어렸을 때부터 숲과 나무와 친구 먹은 사이다.

목재소에서 신선한 통나무를 골라 작업 현장에서 바로 잘라 사용한다. 주로 더글러스와 낙엽송을 사용한다. 지난 2월 한국에서 열린 <스위스 젊은 작가전>을 위해서는 남양주에 있는 한 제재소에서 소나무 30그루를 구입했다고 한다. 형제는 항상 그 나라에 있는 목재소나 제재소에서 나무를 구한다. 지역적 특징과 문화를 함께 담기 위해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한 때는 한국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해 한국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적어도 6개월 이상 그 나라의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가능하다고 한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자칫 인상에 머물 수 있는 감정과 생각을 정제시킬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형제는 한국전(展)이 끝난 지 6개월이 지난 최근, 스위스에서 작업 중인 에 한국의 미를 담은 테이블을 제작해 설치했다.

나무로 만든 작품에 관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다. 는 두께가 32㎝인 목재로 만든 장난스러운 대피소로, 원래 프랑스 남부에 있는 산꼭대기에 설치하려던 작품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네덜란드 시청 앞에 설치하게 되었는데, 몇 주 후에 관리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 L’incomplétude permanente de la vie> 벌레가 파놓은 통로 안을 깨끗이 청소한 후 핑크색으로 칠해 침실을 만들었다.


“한 노숙자가 작품 안에 들어앉아 살기 시작했는데, 쫓아낼까요?”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신다면 저희야 영광이죠.”

형제는 어쩌다 어마어마하게 큰 벌레가 집을 짓고 살았던 아프리카 산 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그 벌레는 나무속에 원통형 구멍을 파서 살았는데, 그 구멍은 무려 길이가 4m, 지름이 1m였다.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을 사랑하는 샤퓌자 형제가 그냥 넘어갈 리 없다. 벌레가 어질러놓은 구멍 속을 깨끗이 치워 침실을 만들었다. 나무속을 핑크색으로 칠해 벌레가 창조한 예술 세계를 강조한 게 포인트다.

In Wood We Trust

샤퓌자 형제는 나무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약하다고, 무르다고 나무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다. 그래서 ‘In Wood We Trust’라는 문구를 떠올렸다. 자신들의 작품과 그 작품을 체험하는 관람객 사이의 소통과 신뢰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샤퓌자 형제는 이 문구를 공식화해 나무를 변호하는 구호로 사용하고 있다.

나무가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이 공공연한 사실에 어린아이처럼 흥분하는 샤퓌자 형제. 여전히 동심을 지닌 그들이기에 어린 시절 꿈꾸던 나만의 공간을 꾸준히 만들어 낼 수 있다. 남모르게 숨어 자신만의 세계를 펼치던 그 추억의 공간. 샤퓌자 형제는 늘 그곳에 머물며 꿈을 꾸고 순간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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