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소설이나 수사물을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범행 현장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장면이다. 쓰레기는 그가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고 점심으로는 어떤 음식을 먹었고 어떤 맥주를 선호하는지와 같은 생각지도 못한 디테일들을 적나라하게 알려준다. 우리 사회의 맨얼굴도 쓰레기통을 뒤져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는 그러한 호기심으로 8개월 동안 도시의 쓰레기를 탐색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넝마주이가 된 대학교수
2001년 12월 제프 페럴은 애리조나 대학의 종신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고향인 포트워스로 향한다. 사람들은 그가 종신교수직을 박차고 나왔으니 뭔가 대단한 연구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한 거라곤 노숙자들이나 입을 만한 넝마를 걸치고 거리로 나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이었다. 그것은 기행(奇行)이 아니라 일종의 현장 연구였다. 그는 그 8개월 동안 물건을 파는 가게는 일절 방문하지 않았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품 대부분을 쓰레기통과 폐기물 처리장에서 해결했다.
쓰레기통에는 멀쩡한 장난감과 책, 심지어 뜯지 않은 선물까지 쓰레기가 아닌 것들이 즐비했다. 페럴 교수는 이 물건들을 팔거나 기증했고, 주운 책으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꽉 차거나 반쯤 찬 술병도 어디에나 널려 있어서 다른 쓰레기 탐색자들과 파티를 벌였다. 마약 투입용 주사기도 수없이 많아서 쓰레기를 주울 때마다 바늘에 찔리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뜯지 않은 선물 상자, 깨끗한 옷가지, 술병, 실탄, 주사기들이 한데 뒤섞인 도시의 쓰레기통은 그가 몸담고 있는 미국 사회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의 디스토피아
리폼이나 DIY를 하다보면 종종 이런 회의가 들곤 한다. “새 물건도 싼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천원상점에 가면 만 원도 되지 않은 돈에 웬만한 살림을 장만할 수 있고, 꽃놀이에 입고 갈 쉬폰 원피스도 명동에 즐비한 SPA 브랜드 매장에서 3만 원 정도면 살 수 있다. 그렇게 오늘도 필요 없는 물건이 카트에 담기고, 잊힌 물건들은 간단히 버려진다. 거리의 간판, 손바닥 위 스마트폰까지 구석구석 스며든 광고들은 물건을 통해 당신의 삶이 한층 나아질 수 있다고 속삭인다. 어디에나 소비를 권하고 욕망은 장려된다. 자본주의가 만든 이 거대한 시스템은 도무지 절제할 줄 모른다. 존재가 비워진 자리에 물건들이 쌓인다.
머리로는 안다. 이렇게 비판하고 자조해 봐도 새로 나온 물건은 여전히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소로우처럼 홀연 도끼 한 자루 들고 숲으로 들어갈 순 없으니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기로 한다. 즐겨찾기에 추가된 쇼핑몰 목록을 몇 가지 지우고, 장을 보러 갈 때는 밥을 든든히 먹고 살 것을 꼼꼼히 적어서 간다.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와 현금을 써서 소비 심리를 위축(?)시킨다. 화장품은 가짓수를 줄이고, 커피 먹은 종이컵은 다시 사무실에 가져가 조금 더 쓰고 버린다. 리폼과 DIY를 취미 삼아 즐긴다. 포스트잇에 꼼꼼히 적은 위시리스트를 아쉽게 지우며 약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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