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늘 위에 있지만, 오히려 바닥에 닿았을 때 가장 진하게 느껴져요.”
푸른 유약이 흙의 침묵에 동조한다. 흙이 감싸 안은 하늘의 감촉은 흘러내린다. 그것은 침묵 속에서 번져 나오는 감정의 결이며 머묾이며 침잠이다. 눈물이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듯, 백자의 곡선을 따라 푸른 유약이 번진다. 그 흐름은 한없이 고요하지만 결코 멈춰있지 않다. 미묘하게 떨리면서 바닥을 향해 속도를 높이고, 때로는 곡선 위에 머물러 숨을 고른다. 추락이 아닌 선택이다.
박서희는 ‘조선백자의 현대화’를 작업의 화두로 삼는 도자작가다. 유물에서 형태와 장식의 모티브를 얻어 현대의 미감으로 재해석하고, 순도 높은 백색의 흙 위에 푸른 하늘을 얹는다. 그의 작업 속 푸른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고요와 청량, 그리고 무게와 서글픔이 뒤섞인 하늘의 표정이다.
형태와 유약은 서로를 감지하고 응답하며, 그 대화 속에서 필연은 다시 우연으로 변주된다.이 흐름이 닿는 곳은 바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에게 그것은 하늘을 의미한다.
흰빛의 흙 위에 내려앉은 푸른 유약은 청량함을 간직하면서도 한 방울의 눈물처럼 무겁게 번져간다. 떨어지기 직전 혹은 막 닿은 순간, 그 무게는 더욱 깊이 스며든다. 조선백자의 흰빛은 깨끗하고 단아하지만 그 순도 높은 색 안에는 서늘한 결이 숨어 있다. 흰은 밝고 선명함이자 이별과 상실, 그리고 다시 이어짐의 시간을 품어왔다. 박서희는 그 위에 자신의 하늘을 덮는다.
번짐과 멈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무게와 다시 위로 치솟는 감정의 파동. 그의 하늘은 단순히 시각적인 청량감이 아니라, 잠시 숨이 멎는 듯한 정적과 서글픔을 동시에 남긴다.
가마 속에서 태어나 일정한 표면 위를 타고 내려와서 바닥에 닿아 멈추는 일련의 흐름은 삶의 한 장면처럼 느리지만 단호하다. 작가의 손끝에서 시작된 계산된 우연은 우리 앞에서 눈물 한 방울로 완성된다. 그것은 떨어지지 않았다면 혹은 번지지 않았다면 결코 태어날 수 없는, 우연과 필연이 맞닿는 지점에 남은 감정의 침묵과 떨림을 위한 흔적이다.
모순갤러리에서 열린 전시는 오늘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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