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ft Focus...기물의 효용 ‘담다’

정인호 기자 / 기사승인 : 2025-07-20 21: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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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어딘가에 담으며 흔적을 간직하듯 공예가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기술을 나무에 담아 작품을 완성했다. 남궁선, 남궁흠, 신민석, 양병용, 네 명의 작가가 풀어내는 그릇과 함 이야기를 들어본다.

<남궁선, 전통을 담다> 



짜임 기법은 예로부터 목수들이 연마했던 섬세한 기술이다. 남궁선 작가는 전통결구법의 형태를 응용하여 그릇을 만든다. 주먹장, 나비장, 턱짜임 등 다양한 짜임 기법은 나무를 견고하게 이어주는 기능을 지닐 뿐 아니라 아름다운 장식 요소다. 작가는 소비자들이 짜맞춤 결구법에 쉽게 접근하여 전통을 느낄 수 있도록 짜임 기법의 미적 기능에 집중한다. 짜임으로 촘촘히 이어지는 사각형 구조의 그릇에서는 퍼즐을 맞추는 것 같은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이는 누군가를 만나기조차 바쁜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잠시 다과를 즐기는 시간을 통해서라도 즐겁고 편안함을 누리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남궁선은 나무 그릇에 전통 디자인을 담아 현대인들에게 편리함이 아닌 따뜻함을 선물한다.


<남궁흠, 마음을 담다>


어떠한 물건을 수납함에 넣을 때 누군가는 소중한 마음을, 누군가는 설레는 마음을 혹은 감추고 싶은 마음을 함께 담는다. 수납함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칫 홀대할 수도 있는 소품이지만 사실은 가구 못지않게 사용자와 교감하는 물건이다. 남궁흠 작가는 일상의 사소함을 포착하고 그 순간의 마음을 나무에 담는다. 달콤함을 쫓는 벌, 소중한 장이 담긴 장독, 나무 밑동이 잘린 그루터기 등 다양한 풍경에서 착안한 작품들은 저마다 고유의 색과 무늬, 향을 지니기에 열어보는 이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궁금한 마음을 담아 남궁흠의 나무 상자를 만지고 느낀다면 저마다의 감성으로 가득한 그의 목공예품이 더욱 특별한 이야기를 품게 될 것이다.


<신민석, 추억을 담다>


우리의 생활에서 잊혀가는 물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곡물의 부피를 재는 단위를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홉과 되, 말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신민석 작가는 어렸을 적 할머니를 따라간 재래시장에서 보았던 홉과 되를 추억한다. 거기엔 콩과 팥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시장 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이 채워졌다. 그는 자신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서랍, 함, 커피 핸드밀 등 다양한 공예품으로 재탄생시켰다. 부피를 재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던 단순하고 딱딱한 직육면체에 신민석의 해석이 더해져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작품에 표기된 단위는 실제 부피를 나타내기도 하며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준다. 그의 추억이 작품 각각의 용도와 크기, 비율을 정하는 지표가 되기에 신민석의 목공예에는 아련한 향수가 묻어난다.


<양병용, 생각을 담다>



양병용 작가에게 그릇은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는 물건이다. 그는 쓰임에 맞는 그릇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어떻게 만들까? 무엇을 만들까? 그릇을 좋아해 줄까?’ 작가의 생각은 목선반 작업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나무 덩어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의 생각을 담고 나무는 비워내야만 비로소 그릇이 태어난다. 칼이 회전한 흔적들이 나무에 동심원처럼 그려지며 고요한 파장이 생성된다. 이 적막한 순간은 양병용이 나무를 깎으며 담았던 생각들을 되새김질한다. 아주 작은 종지부터 큰 믹싱 볼까지, 그의 모든 작품은 아름다운 노동과 치열한 생각의 결과물이다. 옻칠을 할 때는 더욱 온전히 작가의 생각과 정성이 담긴다. 만드는 이 외에는 누구도 이 과정을 누릴 수 없지만 양병용의 그릇에는 사용자의 또 다른 기억과 추억, 생각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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