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4월 관훈동 학고재에서 <눈매가 고운 목가구>란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렸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은 사오기(제주산벗나무)와 굴무기(느티나무) 고재로 풀어낸 양승필 소목장의 솜씨에 감탄했고, 이 전시를 계기로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제주도 전통 찬장 살레는 전국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제주도 찬장의 화려한 부활인 셈이었다.
제주의 맛을 발견하다

살레라는 독특한 이름은 일반적으로 제주도 전통 찬장을 이른다. 국립국어원 발행 사전에는 살레가 한 발을 들고 한 발로만 뛰는 모습을 뜻하는 ‘앙감질’의 제주 방언으로 되어 있으니 다리가 긴 전통 살레의 모습이 마치 앙감질하는 모습을 연상시켜 붙여진 이름일 수도 있겠다. 살레라는 이름에 담긴 속뜻이야 어쨌거나, 양승필 소목장은 목수의 길로 들어선 이십대에 살레의 매력을 발견한 이래 지금까지도 매일 살레를 만들고 있다.
양 소목장이 살레에 빠진 것은 비례미와 단순하면서 기능에 최적화된 구조, 그리고 쇠로 된 경첩 대신 문짝 위아래로 촉을 내고 그 촉을 문틀에 끼워 여닫을 수 있도록 한 제주도 특유의 여닫이문 구조 때문이었다. 스승인 박노영 선생 문하에서 전통가구를 배우던 1970년대 중반 당시 제주도 전통공방에서 나오는 가구들은 왜색이 짙게 배어 화려한 장석으로 목리를 가리는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전통가구 짜는 목수의 길로 들어선 후 이런저런 자료를 통해 공부한 제주도 전통가구나, 민구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양승필 소목장이 발견한 제주도 전통가구나 목공예품의 특징은 쇠로 쓴 장석을 최대한 절제하고 간결하면서 단아한 형태로 나무 고유의 목리를 통해 미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양승필 소목장은 그 원형을 살레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박노영 선생 문하에서 목수 일을 배우던 때는 물론이고, 박노영 선생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다른 공방에서 일을 하던 와중에도 양소목장은 제주의 전통을 살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자 하는 마음의 갈급이 심했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지인들의 도움을 빌려 공방을 차린 게 막 서른을 앞둔 나이였다. 이때부터 양승필 소목장은 스승 박노영 선생에게 배운 전통가구 기법을 기반으로 살레에서 찾은 제주의 전통을 살리는 변화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양승필 소목장이 공방을 차린 당시는 일제강점기부터 제주도 최고의 중심 상가로 발전한 칠성통 일대를 중심으로 전통가구를 짜는 공방이 스무 곳이 넘을 정도로 성업 중이었지만 제주도의 전통을 잇는 공방은 한 군데도 없었다. 만드는 가구들도 장석을 화려하게 써서 요란하거나, 짜맞춤 흉내를 냈지만 못을 쓰는 가짜 전통가구 일색이었다. 양 소목장 역시 어려운 여건에서 공방을 차려 운영하려니 이런 시류를 따를 수밖에 없었으나 점차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구의 질이 전반적으로 낮았고, 제주도의 전통은 간데없고 화려한 장식으로 교언영색하는 식이라면 머지않아 제주도 전통가구 공방은 몰락을 길로 들어설 게 뻔하다는 판단이 섰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양 소목장은 살레를 중심으로 제주의 맛을 가구에 담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렇게 하나 둘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가구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기 시작했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풀어놓는 이야기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제 중학교 은사가 소암 현중화 선생님인데, 선생님 서실에 제가 만든 가구를 넣어드렸어요. 소암 선생께서 서예계는 물론이고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워낙 명망이 높았던 터라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죠. 선생님 서실을 드나들던 분들이 제 가구를 보고 도움을 주셔서 제주도 세종갤러리에서 1989년에 첫 개인전을 열 수 있었어요. 2008년 학고재 초대전도 지인께서 제 가구 사진을 학고재에 보여줘 성사될 수 있었어요. 그 분이 전시회 준비할 동안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하라고 돈 2억 원을 흔쾌히 빌려주었으니 그 덕에 여기까지 온 거에요.”

양 소목장은 운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건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져버린 제주도 문화의 한 원형이 오롯이 담긴 가구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였으리라. 양승필 소목장은 가구나 목공예품에 담긴 제주 전통의 맛을 “단순하고 순박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 단순함과 순박함은 제주라는 지역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제주의 전통 궤나 살레는 매끈한 대패 마감이 아니라 곡자귀로 투박하게 면을 다듬은 것이 많은데 이는 섬 지역의 특성 상 연장 구입이 힘들고, 장석 역시 구하기가 만만치 않은 데서 기인했을 거라는 해석을 낳는다. 정교한 작업이 어려우니 형태 역시 단순하고 투박했다. 그런데 이렇게 제작된 제주의 가구나 목공예품의 단순함과 투박함은 사람들의 손때와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은은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제주목공예』,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
양승필 소목장은 제주도에서 난 사오기나 굴무기 고재를 주로 쓰는데, 이 나무들은 시간이 숙성시키면서 목재로 갓 태어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갖는다. 위에서 설명된 제주도 목가구 특유의 아름다움은 결국 원재료인 나무의 힘에서 나오는 셈이다.

“제주도 전통 살레에 마음을 빼앗긴 또 다른 이유는 사오기의 매력 때문이에요. 사오기는 제주도의 척박한 화산회토에서 자라면서 성장이 더뎌 눈매가 촘촘하고 예뻐요. 육지에서 자라는 산벗나무와 목질이나 색깔에서 차이가 많죠. 거기에 세월이 덧씌워지면 제주 사오기는 짙은 흑갈색으로 가라앉는데, 그 색감에서 오는 특유의 질감이 사오기 고재의 진정한 매력이죠. 육지에서 자란 산벗나무는 오래 묵어도 제주도 사오기와 같은 색이 안 나요.”
양승필 소목장이 꼽는 사오기 고재의 또 다른 장점은 치수 안정성이 좋다는 점이다. 목재는 아무리 건조를 완벽하게 해도 끊임없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환경에 따라 그 변화의 폭도 달라진다. 그런데 사오기는 이 변화의 폭이 작아 가구재로서 안정적인 치수가 확보된다는 뜻이다. 목재로 다시 만들기까지 다루기도 까다롭고, 실제 목재로 쓸 수 있는 양은 원재료의 50% 남짓에 불과한데도 양승필 소목장이 고재를 고집하는 이유다. 벚나무가 목재로 쓰인 기록은 삼국유사에 처음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깊다. 고려대장경의 60% 가량이 산벗나무에 새겨졌다는 연구결과 역시 목재로서의 산벗나무의 우수성을 설명한다.
사오기 특유의 질감을 살려 양승필 소목장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변형시킨 살레와 전통가구들은 수더분하면서도 맵시가 빼어나다. 찬장이라는 폐쇄형 가구의 원형을 유지하되, 살레는 이제 부엌에서 뛰쳐나와 안방, 거실, 서재 그 어디에도 어울릴 수 있는 자유분방한 가구로 재탄생되었다. 살레뿐만이 아니다. 머릿장이나 이층장, 서안에서 소반까지 그가 만드는 가구에는 양승필 소목장 특유의 단아함과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기품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련미를 겸비하고 있다.
가구의 본질에 충실하다

양승필 소목장이 가구를 만드는 서호공방은 애월읍에 있다. 양 소목장이 20여년 전 도심을 벗어나 이곳으로 온 까닭은 작업에 몰입하기 위해서다. 작품 만드는 시간 빼앗기는 게 아까워 장사는 뒷전이고,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고 오로지 작업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에 새벽 2시에 일어나 공방 문을 연 세월이 30년을 훌쩍 넘겼다. 그저 사람이 좋고 술잔 기울이는 게 즐거워 퇴근 길 종종 가구 공방 사람들과 어울리던 이십대 언저리에 그가 꿈꿨던 삶이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을 테다. 무엇이 그를 목수의 길로 이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양승필 소목장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에는 술친구로 만났던 목수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의 표현대로 한번 빠지면 몰입하는 스타일에다 어려서부터 서예나 그림을 좋아했던 예인 기질도 있었으니 물 만난 고기처럼 기꺼이 목수의 삶을 살아왔다. 새벽 2시에 작업을 시작해서 오후 6시에 일을 마치는 고단한 일상이 그에게는 그저 삶의 활력이었다니, 더구나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로 불편한 다리로 건너온 목수의 생이었으니 그에게는 목수가 그저 천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가 목수의 길을 걷기 위해 다른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수입이 들쭉날쭉한 직업 특성상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해 표고버섯 농장을 운영하며 가장의 역할에 충실했고, 지금은 작고한 김영갑 사진가를 비롯해 제주도 문화예술인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해왔다. 사람 찾아오는 게 번거로워 한적한 곳에 터를 잡았지만 지금도 친구들이 공방으로 찾아오면 그 반가움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허허 웃을 뿐이다. 그 시간을 달콤한 휴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승필 소목장이 삼십년 넘게 풀어낸 목수의 서사에서는 오래 묵은 사오기처럼 특유의 단단한 질감이 느껴진다. 사오기는 토양에 함유된 높은 염분에 저항하는 성질인 내염성과 물과 습기를 좋아하는 호습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 특유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육지의 그것과는 다른 성질을 갖게 된 것이다. 목재로 쓰여서도 세월이 흐르면 오히려 질감이 웅숭깊어진다. 양 소목장 역시 그렇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며 삶의 굽이굽이 주어지는 환경에 맞춰 인생을 계획하고 미래를 준비했다. 그런 가운데 목수로서의 삶은 더욱 더 깊은 질감으로 숙성되고 있는 듯 보인다.
양 소목장이 살고 있는 애월읍은 20년 전만 해도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제주도에서도 상대적으로 건조한 지역인데다 도심에서 멀어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제주도 이주자들이 가장 선호할 정도로 인기가 좋아 연예인을 비롯해 수많은 외지인들이 새롭게 제주의 삶을 시작하는 곳이 되었다. 제주도의 대표적 관광지로 변하면서 드나드는 유동인구도 많아졌다. 그런 번잡함이 싫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양 소목장은 조만간 애월읍을 떠날 예정이다. 새로운 곳에 터를 잡고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는 갤러리를 열 계획이다. 양 소목장은 이제는 자신의 지난 작업들을 하나 둘 정리해 제주도의 목가구, 목공예품들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그것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질문에 양승필 소목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누군가는 제 가구에서 제주도 전통의 미를 찾는 사람도 있을 테고, 가구의 생김새에서 보이는 특유의 비례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사오기라는 나무의 느낌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데 제가 만드는 작품은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가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쓰임새에 맞도록 잘 써졌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그의 대답을 들으면서 가구의 본질이 과연 무엇일까란 생각이 스쳤다. 화려하게 보이고, 잘남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기물이 가진 본질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생각 그 자체가 어쩌면 제주도 전통 목가구의 담긴 아름다움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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