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세 갈래 길 위에 자리한 <칼산공방> 조감도 |
공간은 삶의 편린들이 전자파처럼 마주치고 엇갈리는 부산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긴 터널에 울리는 기억의 메아리가 울리는 곳이다. 그곳은 보인지 않는 마음의 안식처이면서 매일의 기운을 저장한 철학의 자리이기도 한다. 그런 공간을 가질 수 없는 현대인들이 매일 새로운 장소를 찾아 여기저기를 배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로 판화작가 정원철의 작업 공간 '칼산공방'은 양평의 고향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는 봉우리(칼산)에 대한 추억과 유년의 정서를 회상하면서 지역 공동체의 공방(共房, Network)을 만들려는 건축주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다. 이곳은 아버지의 근육이 닳고 헛기침과 무언의 암시가 잠들어 있으면서, 소년 정원철의 정서가 잉태되고 온전히 자란 땅이다.
![]() |
▲ 남쪽에 바라 본 <칼산공방>. 주변의 논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
![]() |
▲ 동남쪽 시선에 놓인 칼산 로고체가 눈에 띄인다. |
건축가는 목구조건축 칼산공방을 양평 용담천변 도로와 대석리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의 갈림길에 위치시켰다. 건물의 배치는 세 면에서 접하는 도로와 어긋나도록 방향을 설정하여 어느 길에서도 건물의 내·외부 공간을 중첩으로 경험할 수 있고, 진출입 시 각기 다른 거리에 존재하는 자연 경관을 보다 깊은 공간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그런 까닭으로 건물의 긴 변은 칼산 방향을 향하고 있고, 측변은 용담천 너머 용담고개를 향하여 주변 풍광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건축의 기본 매스는 마을 주요 도로의 보행 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2층을 후면에 배치하고 전·후면 볼륨이 겹치지 않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앞뒤로 밀어내어 흡입력 있는 출입구를 세웠다. 또한 전·후면 지붕 경사를 중심에서 바깥으로 내려가도록 계획하여 각 층과 각각의 영역이 통합하는 공간을 이루고 있다. 동시에 전면은 높은 층고를 가진 공간 볼륨을 형성했고, 후면의 볼륨은 남향 빛이 유입되는 안락한 공간을 이루고 있다.
각각이 공간으로 존재하는 내부
![]() |
▲ 1층은 개인 작업과 공동워크숍 공간이다. |
![]() |
▲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1층 작업실 테이블. |
![]() |
▲ 2층 다목적 공간 |
![]() |
▲ 2층과 연결된 발코에서는 또 다른 시야가 펼쳐진다. |
1층은 개인 작업과 공동워크숍 공간이고 천변 방향에 위치한 외부 데크가 이어지면서 그 경계를 자유로이 확장하고 있다. 데크는 작업 공간이자 공연 등의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공동 창작활동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는 필요 시 영역을 구분 짓지 않고 사용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면서 동시에 개인 작업 공간과는 적절히 분리가 가능한 멀티 공간이기도 하다.
2층은 지역사회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소통의 공간으로 준비했다. 1층과 공유되는 아트리움을 통해 작업 공간과 자연스럽게 소통되지만 분리 또한 자유로운 공간으로, 다른 성격의 모임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2층과 연결된 발코니에서는 사시사철 변하는 칼산과 주변 풍광을 조망할 수 있으며 내부 공간에서도 이를 적절히 조망할 수 있다.
간결한 내부 공간 구조
각 층의 천장은 목구조 서까래를 그대로 드러내어 아트리움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했고, 화장실을 포함한 코어 벽체의 마감은 구조용 합판을 그대로 드러내어 서까래와의 의도적 이질감을 유도했다. 어두운 합판은 공간을 차분하게 만들며, 조명과 결합된 밝은 서까래는 보다 높은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 |
▲ 건축주가 직접 만든 외부 목조 조형물이 조경의 정취와 잘 어우러져진다. |
개별 공간의 용도와 주변 풍광에 따른 창은 높이와 비율, 개폐 방식을 조정해 외부 공간을 향유하는 내부 공간의 활용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목공예에 조예가 깊은 건축주가 직접 만든 원목 프레임의 조명과 외부 목조 조형물 등은 건물 조경의 정취와 어우러져 주변 자연이 더욱 숙성된 풍경으로 다가온다.
‘칼산공방’은 목구조를 내부로 유도해 재활용함으로써 주변 풍경과의 조우함과 동시에 그를 해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큰 의의를 느낀다. 건축주가 바라듯, 이 공방이 공동체적 삶에 대해 성찰하고, 더 나은 공생에 대해 함께 궁리하는 실천적 예술활동의 플랫폼이 되기를 희망한다.
5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다시 고량 땅에 안착한 ‘칼산공방’은 매일 봉우리의 정상을 바라보며 귀향의 노래를 부르면서 밤의 그늘 속으로 곤한 잠을 청하곤 한다.
![]() |
▲ 겹겹히 어깨를 기댄 칼산 봉우리의 풍경이 더없이 아름답다 |
건축 개요
위치 : 경기도 양평군 대석리
대지면적 : 919 ㎡
연면적 : 197.84 ㎡
건축면적 : 167.85 ㎡
규모 : 지상 2층
주구조 : 목구조, 경량철골구조, 경량목구조
준공일 : 2022. 11
건축주 : 정원철
설계사 : 터미널7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주)
시송사 : 망치소리
사진 : 박영채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