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의 재해석’이라는 주제를 토대로 가구 디자인을 풀어내는 신인 왕현민. 그가 가구로 풀어낸 첫 번째 구조는 바로 건축의 골조다. 에펠탑의 철골 구조에서 완벽한 형태와 안정감을, 그리고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유려한 곡선 건축물에 미적 영감을 얻어 폴리곤(Polygon) 시리즈가 탄생했다.
두 번째 시리즈 무브먼트(Movement)는 생물의 세포배열에서 발견한 구조를 패턴화하여 가구에 담아내고 있다. 철골과 생물 세포, 어찌 보면 가구와는 다분히 이질적인 소재를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그의 디자인 스토리를 전한다.
구조로 가구를 풀다
그가 진짜 가구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것은 건축 구조와 가구의 상관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다. 가구를 만드는 기술을 훈련하기보다 디자인에 중심을 둔 학과 커리큘럼 특징상 과제를 위해 디자인 사례를 찾아보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중 건축가들이 만든 가구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건축물의 구조를 적용한 가구 대다수가 일반적인 형태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특징을 발견했어요. 또 디테일한 요소에도 목적이 있고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 겸비하고 있었죠. 디자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주제를 찾지 못하곤 했는데, ‘구조’라는 해답을 얻게 된 계기였어요.”
그가 만드는 가구의 구조는 일반적인 가구의 형태와는 다르다. 기능적인 가구라고 보기에는 기하하적인 조형에 가깝다. 그 이유는 그가 주목하는 건축의 형태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에 있어서는 골조에 집중했지만 건축의 외관과 형태에 있어서는 유려한 곡선에 매력을 느꼈다. 나무라는 소재로 가구를 만들면서 물결처럼 흐르는 곡선을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무를 깎아내는 기술이 훈련되지 않았다면 더욱 어려운 작업이다.
그는 스스로 목재로 곡선을 표현하기에는 정통적인 기술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곡선 형태의 디자인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그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 바로 짧은 직선을 조금씩 비틀어 연결하여 이어가는 곡선이다. 그렇게 폴리곤 시리즈는 아이스크림 막대 모양의 짧은 직선 스틱으로 곡선 유기체가 완성되었다.
생물의 세포, 패턴이 되다
그의 두 번째 시리즈인 ‘무브먼트(Movement)’는 연재물 작업인데, 이번에는 생물의 세포 배열에서 발견한 패턴이 그 핵심이라고 했다. “우연히 식물 세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동그란 세포 입자들이 조밀하게 붙어 배열된 구조를 보다가 문득 그 입자들의 외곽을 하나의 선으로 이어봤죠. 불규칙한 간격으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물결 패턴이 그려지더라고요. 순간 이거다 싶었어요.” 그는 두 번째 구조 모티프를 찾아낸 것이다.
건축 구조와 다르게 생물의 구조는 자연스러운 형태로 불규칙한 것이 특징이었다. 또 살아있는 것에서 따온 모티프였기에 그 역시 가구에 생동감과 유기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고 싶었다. 웨이브 라인으로 전면을 디자인한 캐비닛과 벽 조명은 마치 보는 이로 하여금 일렁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디자인의 형태는 세포 배열의 구조에서 가져왔지만 무브먼트 시리즈에서 그가 중점을 둔 점은 바로 이 일렁거리는 착시현상이다. 구조라는 하나의 주제에서 가구의 디자인을 풀어가는 왕현민은 단지 그 디자인 형태에만 집중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모티프를 가져온 본래 대상의 속성까지 가구에 담고자 했다.
소재의 물성을 활용하는 조형
왕현민이 풀어가는 주제는 명확하다. ‘구조’라는 주제로 앞으로 풀어나갈 소재는 다양하다고 했다. 다만 지금 그가 조형을 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재료가 나무뿐이라는 게 아쉽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가구를 만들다 보니 가장 친숙하게 다룬 소재가 나무였어요. 나무 역시 완벽하게 이해하고 능수능란하고 기술적으로 다루는 건 아니지만, 금속이나 플라스틱, 유리 같은 소재보다는 자연스럽게 만지고,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죠. 그래서 나무로만 작품을 하게 됐죠.”
그는 소재의 물성을 정확히 이해해야 그것으로 조형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요즘 구조를 재해석하는 것만큼이나 열성인 일이 바로 소재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자 의외의 것에 시선을 두고 그 구조에서 모티프를 얻는 디자이너. 그에게 소재 선택의 폭이 다양해졌을 때 어떤 가구의 조형이 새로이 등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자료제공 왕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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