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미술 전문 출판사 ‘타셴(Taschen)’이 꼽은 세계 3대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아릭 레비. 코오롱, LG, 행남자기 등과 협업해 국내에서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인터뷰는 독자가 인터뷰이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므로 그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그의 답변은 탄성을 자아낼 만큼 간단명료했다. “저는 아릭 레비예요.”
전쟁과 문명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소년
아릭 레비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불안한 국정 탓인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심한 난독증으로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매일 살아남기 위해 또,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극복해내기 위해 사투했다. 16살 때는 1,500개가 넘는 서프보드를 만들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이 작업이 아주 고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바다와 파도와 예술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워터맨’이라 칭했다. 그런 그를 스위스로 이끈 건 바로 ‘사랑’이다. 무용수였던 연인이 스위스로 떠났고 연인의 빈자리를 참을 수 없었던 그는 과감히 생업을 버리고 스위스행을 택한다. 그리고 거기서 디자인과 사랑에 빠졌다.

“창작은 통제할 수 없는 근육”이라고 말하는 그는 스위스에 있는 유럽 아트센터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엔 일본에서 활동하며 여러 창작의 아이디어를 얻었고, 유럽으로 돌아와서는 제품 디자인, 현대 무용ㆍ오페라 세트 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세계 유수 브랜드와의 협업은 물론 일류 갤러리ㆍ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돌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Rock' 시리즈인데, 거울로 마감한 스테인리스강 조각물이다. 조각의 각 면이 주변을 반사해 시각적인 산란을 일으킨다.
지금은 파리에서 L-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계속해서 여러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그가 디자인 스튜디오를 연 것은 디자인에 대한 그의 첫사랑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즉, 여러 분야에서 창작하고 협업을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디자이너임을 잊지 않으려는 다짐이다.

갈라지고 구부러진 나무 의자
체코의 가구 브랜드 톤(TON)의 공장에서는 스팀으로 쪄 부드러워진 나무를 손으로 구부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장 안을 왔다 갔다 하며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서로 합을 맞춰 나무를 두드리고 구부리는 모습은 마치 제 눈을 위한 노래 같았어요. 심지어 그런 전통 벤딩 방식은 처음 접하는 거라, 그 노래를 배우고 싶은 충동이 일었죠. 단순히 부를 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완벽하게 잘 부르고 싶어서 톤과 작업하는 내내 그 방식을 고집했어요.”
평야가 교차하고 연결되는 지점에서 영감을 받아 의자의 다리를 구부러지고 갈라진 나무로 형상화했는데, 이것은 그에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갈라짐과 곡선을 잘 구현할 수 있는 나무를 찾고, 찾은 나무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구부렸다. 의자의 다리는 끝 부분이 두 개로 갈라지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구부러져 의자의 바닥과 등받이를 지지한다. 이 의자를 완성하기까지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톤 역시 그와 함께 오랜 시간 고민했고 함께 아이디어를 냈다.

디자인할 때 그의 몸과 마음은 하나가 된다. 그는 이 순간을 신뢰하며 즐긴다. 하지만 이런 워커홀릭 같은 말을 하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예술과 기술, 휴머니티와 혁신, 머리와 가슴이 녹아 있는 디자인이야말로 진정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죠. 세상은 물체가 아닌 사람에 대한 것이에요. 사람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행동하고 길을 만들죠. 그것들은 제게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주는데, 그게 싫지 않아요. 제 삶과 작업을 풍성하게 하거든요.” 사람을 향한 디자인을 지향하는 그는 자신의 현재와 이상이 일치하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확고하고 분명한 태도는 여러 수집가와 기관들이 그를 찾고 투자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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