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간주나무 |
홍성군청 앞의 왕버들나무에 작은 노간주나무가 자라는 사진을 보았다. 수령이 300년을 넘긴 왕버들나무의 높이가 10m인 것에 반해, 가지 사이에 작은 새처럼 앉아 있는 노간주나무의 키는 겨우 40cm다.
찾아보니 서울의 경복궁 관리사무소 주변의 개오동나무에도, 충북도청 정원에 있는 느티나무에도 작은 노간주나무가 사뿐히 앉아 자라고 있다.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커야할 녀석이 무슨 연유로 남의 몸에 빌붙어 있나 싶다가도, 굳이 제 자리가 땅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타고나기를 사람의 손을 거치 않고 자연의 힘에 이리저리 옮겨지다 자를 잡는 것이 노간주나무라고 하니 사려는 곳이 흙이든, 나무든 크게 중요하지 않을 테다.
뭣보다 나는 노간주나무의 그‘생명력’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살려는 의지, 무력함에 대항하는 몸부림. 그리하여 제 의지와 상관없이 새가 떨구어준 위치에서 어떻게든 가지를 뻗치려는 그 태도가 결코, 구차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비단 노주나무만이 아니다.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은 이름 모를 나무들이 그게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겨울의 끝에서 그 생명력은 더욱 유난스럽다. 한낮의 해가 한 뼘씩 길어질 때마다 나뭇가지 위로 싹은 종알종알 움튼다.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 아아, 마침내, 끝끝내 /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 꽃피는 나무다.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중에
시가 노래하는 나무는 어디에 기대는 법 없이 오직 자기 안의 힘으로 대지 위에 오롯이 선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괴로울지언정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될 만큼 강하다.
세월호가, 이태원이 기약없이 사라졌다. 대책 없는 슬픔들이 어제와 오늘 사이를 메운다. 너무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 마침내, 끝내, 꽃을 피우는 나무의 생명력이 바다와 하늘에도 전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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