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옷이 마음에 안 든다면 바꾸거나 환불하면 되지만, 한번 뜯어낸 천장과 이미 페인트 칠한 벽은 교환도 환불도 할 수 없다. 그만큼 인테리어는 신중해야 하는 작업이고, 그래서 두려움이 앞서는 일이기도 하다. ‘인테리어 원 북’의 저자 윤소연은 이러한 걱정은 일단 접어두고 부딪쳐보기로 했다.
100일간의 준비 기간과 2주 간의 공사로 재탄생한 그녀의 신혼집은 블로그에서 먼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북유럽의 어느 한 아파트를 그대로 옮겨 온 것 같은 디자인도 인기의 한몫을 담당했지만, 무엇보다 꼼꼼한 설명과 방대한 양의 정보가 많은 이들을 블로그로 불러 모았다. 빽빽이 적어 놓은 일정표를 차근차근 보고 있노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절로 생긴다.
작은 방에서 시작한 꿈
인터뷰는 볕이 잘 드는 다이닝룸에서 진행됐다. 남향집의 장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다이닝룸은, 저자 윤소연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놓인 가구와 조명을 비롯해, 문을 다시 설치하고 가벽을 세우는 것까지, 모두 그녀의 손이 닿아 탄생했다. 이 정도 실력이면 전문가이거나 혹은 디자인을 전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윤소연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인테리어와는 관련이 적은 언론인, 그것도 프로그램을 분석하고 전반적인 방송의 플랜을 짜는 방송국 편성PD가 그녀의 직업이다. 그간 숨겨왔던 미적 감각이 이 집에서 발현된 것일까. 윤소연은 손재주가 없어 살림도 서툰 불량 주부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미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일찍 알았죠. 그래도 집 꾸미기에는 관심이 많았어요. 한번은 중학생 때 새 집으로 이사를 갔었는데, 제가 혼자 집 도면을 그려서 안방은 어떻게 꾸밀지, 거실은 어떻게 꾸밀지 계획을 잡아서 엄마에게 보여드린 적이 있어요. 물론 엄마는 돈 든다면서 본 척도 안 하셨지만요.”
내 방만이라도 꾸미자는 생각으로 당시 유행했던 ‘프렌치 키스’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액자로 만들어 걸기도 했다. 분홍색 벽지와 커튼 등으로 여성스럽게 꾸민 방이었다. 공간에 대한 애착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물론 그 작은 방에서 시작한 소소한 인테리어가 이렇게 커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셀프 리모델링 개척기
자취 생활만 12년, 이삿짐 싸는 일에는 도가 튼 그녀다. 스무 살 무렵 대구에서 상경하여 지금의 집에 이르기까지 윤소연은 전세와 월세를 넘나들며 수십번도 넘게 거처를 옮겨야 했다. 주거공간에 대한 불안이 20대를 점철했다.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마음과 정착에 대한 욕구는 갈수록 커졌다. 조금이나마 잘 갖춰진 집에서 지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분적으로 스타일링을 바꾸거나 예뻐 보이는 소품은 죄다 사들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지저분해보이기만 할 뿐 잡지나 책에서 보던 느낌은 나오질 않았다. 전문가에게 들은 답은 집 전체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혼 후 드디어 갖게 된 내 집에서 윤소연은 자신의 오랜 목표를 달성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엔 제가 직접 리모델링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첫 집이기도 했고, 막연히 예쁜 집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컸어요. 여러 인테리어 업체를 통해 견적을 알아봤는데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더라고요. 또 많은 돈을 들인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공간으로 바꾸기도 힘들다는 걸 알았죠.”
낙심하고 있던 찰나, 그녀에게 셀프 인테리어의 용기를 실어준 것은 다름 아닌 북유럽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윤소연은 진정으로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발견했다. 이전까지는 ‘보기 좋은 집’을 추구했지만, 북유럽에서 그녀가 만난 집은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철학과 취향이 있는 공간이었다. 집에 대한 생각과 영감이 확고해진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윤소연은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리모델링 콘셉트를 정했다. 방향이 확실해지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후 100일간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2주 동안 공사를 진행했다.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기초에 맞게 톤은 그레이로 잡았다. 어떤 색과도 매치가 가능하면서 모던함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쁜 직장 생활 가운데서도 틈틈이 시간을 냈다. 일이 끝나면 인테리어 사진을 스크랩하고, 마음이 맞는 시공업자들을 찾았다. 야근과 출장이 잦은 남편 대신 대부분의 리모델링은 혼자 도맡아야 했다. 이따금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부딪쳤고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으로 리모델링 아파트를 완성했다. 윤소연이 자신의 셀프 리모델링을 도전이 아닌 ‘개척’이라고 부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셀프’의 즐거움
폭풍 같은 2주가 지나고, 상암동의 보편적인 아파트는 특색을 갖춘 북유럽 아파트로 변했다. 부부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윤소연과 그녀의 남편은 집으로 가는 길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즐거웠다. 그들의 집은 그저 잠자는 곳이 아닌 행복을 충전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또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삶의 템포가 전보다 더 느긋해졌다고 한다. 공간이 그들의 생활에 여유를 불어 넣은 것이다.
리모델링 후 1년이 지난 지금, 처음의 그 감흥은 잦아들었지만 그만큼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집에 익숙해졌다고. 실수도 많고, 힘든 적도 많았지만 윤소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의지로 완성한 집에서 더없는 편안함과 내 것이라는 애정을 느낀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셀프 리모델링을 적극 추천을 한다는 윤소연은 결코 이 일이 특별하거나 전문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블로그에 작업 일지를 기록하고, 책까지 내게 된 이유도 그러한 까닭에서였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무엇보다 적은 비용으로 내가 원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셀프 리모델링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와 함께 여전히 스스로 집을 개조하기가 막막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인테리어 원 북’에 담았다.
“저도 셀프 리모델링을 하기 전에 여러 책과 잡지, 블로그 등을 참고했어요. 그런데 어디서도 내가 원하던 현실적인 정보는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는지, 또 누굴 찾아가야 하는지 등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은 부딪쳤죠. 무모하게 시작해서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다른 분들은 그러한 실수를 줄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책까지 내게 됐어요. 셀프 리모델링을 망설이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지금 시작하세요. 자신을 믿고, 각각의 시공자를 믿고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진행한다면 어떤 리모델링도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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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프 리모델링에 관한 모든 것...<칼슘두유 윤소연의 ‘인테리어 원 북’>
▲ 인테리어 원 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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