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탄아라리를 들으러 강원도 정선에 갔다가 오랜만에 지게를 봤습니다. 지금은 쓸 일은 물론이거니와 볼 일조차 희박한 게 지게입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지게꾼들이 저 멀리에서부터 비키라며 고함을 지르던 모습을 본 것도 여러 해 전입니다. 도시에서는 지게를 쓸 일이 드문 편이지만, 영 없는 건 아니었지요. 한 20여 년 전만 해도 서울 변두리 판자촌에서는 겨울이면 연탄배달부 아저씨가 리어카에 싣고 올라온 연탄을 집집마다 지게로 옮겨 나르기도 했으니까요.
겉보기엔 별 것 아닌 듯 보여도 지게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운송 수단 중 하나였고, 더욱이 옛사람들이 발명한 가장 우수한 도구 측에 든다고 하지요. 각 부위를 가리키는 명칭이 따로 있을 정도로 제법 고등한(?) 구조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새고자리, 지게꼬리, 등태, 동바 등 명칭만 해도 열 개가 넘습니다. 게다가 각 지역마다 부르는 명칭이 제각각이니 지게의 ‘계보’도 어느 집 족보 못지않은 것 같습니다.
지게를 이루는 가로축을 세장이라 하는데, 세장은 밤나무나 박달나무 같은 단단한 목재를 씁니다. 아무래도 세장이 지게의 힘을 받는 부분이다 보니, 밀도가 높은 나무를 쓰는 게 좋겠지요. 지게는 보통 소나무를 깎아 만들고 그 외에도 참나무나 참죽나무를 씁니다. 미탄면 기화리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이 지역에서는 지게로 노간주나무를 최고로 친다”고 하셨습니다. 가볍고 단단하기 때문이라는군요. 과연 노간주나무는 침엽수인데도 나이테가 오밀조밀한 것이 꽤 야무져 보입니다. 노간주나무는 매우 유연해 예로부터 쇠코뚜레로 사용되었습니다. 단단한 나무가 유연하다니 살짝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도 있겠지만, 나무가 단단하다고 해서 유연성과 담 쌓고 지내는 건 아닙니다. 하드우드인 애쉬도 탄성과 휨감성이 좋아 야구배트로 사용하니 말입니다.
혹시 소리꾼 김용우의 <지게 소리>라는 곡을 들어보셨나요? 구슬프면서도 한없이 적막하고 아름다운 노래지요. 노랫말처럼 청천하늘에 뜬 잔별이 처연히 반짝이는 느낌이 듭니다. 옛날에는 삶이 고달플 때 지게 다리에 작대기를 두드리며 소리로 마음을 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미탄면에서도 아라리 시연을 할 때가 아니고는 지게를 진 채 소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이 점점 첨단으로 간다고 해서 삶이 팍팍하지 않은 건 아닌데 지게도, 지게 작대기도 없으면 무엇으로 장단을 맞출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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