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마틴 슐레스케 <가문비나무의 노래>...잊히지 않는 카이로스를 위하여

박신혜 기자 / 기사승인 : 2025-03-17 11: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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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의미 없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 하고 특별한 의미가 담긴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 했다. 독일의 바이올린 마이스터 마틴 슐레스케 역시 악기를 만질 때마다 카이로스의 순간을 경험한다. 그는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소중히 모아두었다가 이 책에 담았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며 반성이고 깨우침이다.

삶을 노래하는 가문비나무

악기 만들기에 적합한 나무를 고르고, 목재의 특성을 살려 좋은 울림이 나는 바이올린을 만들며, 음이 어긋난 악기를 조율하는 일은 바이올린 장인 마틴 슐레스케의 일상이다. 그는 이 일상의 순간순간마다 삶의 지혜를 마주친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들은 어두운 산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빛이 닿지 않는 아래쪽 가지를 떨어뜨리고 위쪽 가지들만 빛을 향해 뻗어 오른다. 바이올린 만들기에 딱 좋은 가지 없는 목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고난을 통해 얻어진 목재에는 울림이라는 축복이 깃든다.


장기간 강한 바람에 시달리거나 어딘가에 눌려 무거운 하중을 받은 나무는 줄기에 이상재(reaction wood)가 형성된다. 자연 속에서 자라는 나무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바이올린 제작자의 역할은 각 나무에 형성된 고유의 결을 존중하는 것이다. 결을 존중하게 되면 나무가 자연스럽게 개성 있는 울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고유한 형태로 존재하던 나무를 베어 바이올린 하나를 완성하면서 그는 자신의 삶과 고통, 철학에 대해 생각한다. 대패질에서 나는 껄끄러운 소리로 나무의 결을 느끼는 동안 나무와 대화하면서 나무의 고통에 공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돌이켜본다. 그는 사무치는 고통에 좌절하고 자신의 아픔 속으로 매몰되지 않는다. 고통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픔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은 사색에 빠질 뿐이다.

 

 

 


1년의 52주 동안 하루도 넘기지 않고 기록한 사색의 증거가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문득 삶에 대해 의문이 들거나 인생이 너무 가파르게 느껴질 때 그의 메모를 뒤적여보자. 도나타 벤더스의 흑백 사진 속에서 진지하게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그가 순간 고개를 들고 당신에게 말을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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