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지라도... 목조각가 ‘인드라밀로’

전미희 기자 / 기사승인 : 2026-01-31 09: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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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함과 예측 불가함, 인드라 밀로가 경험한 나무의 세계다

 

나무는 그 자리에 서있을 뿐이다. 조각가는 그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안에 담긴 기쁨과 두려움, 밀도와 우연을 기꺼이 받아들이다.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조각가 인드라 밀로는 나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

에보니가 이끈 밀도 있는 삶 


 

나무와 돌, 실 등으로 작업을 하는 조각가 인드라 밀로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자랐으며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자랐을 당시 작가가 처음으로 접한 예술은 전통과 종교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녀에게 조각은 인간 세상과 영혼의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이었다. 또한 자연과 동물을 연결해주며, 볼 수 있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한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10년 동안 웹디자이너로 일한 인드라 밀로는 2008년 조각가의 길로 들어섰다. 조각을 시작하던 초반, 작가는 추상적인 형태를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나무를 접하고 달라졌다. 자연의 생리에 눈을 뜨자 인드라 밀로는 구체적인 형태를 조각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자연의 과정에 기초해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었고, 작가는 자신의 조각상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동물, 특히 개를 조각함으로써 추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그 단순한 형태를 표현하게 됐다. 이후로도 여러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개 조각상은 ‘존재’를 나타내는 작가만의 방식으로, 그녀 작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나무의 단단함에서 출발했다.


 


“처음 목조각의 세계로 저를 이끈 건 작은 에보니 나무 조각이에요. 작고 가벼워 보이는 나무를 손으로 집었을 때 저는 그 단단함에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순식간에 에보니가 지닌 밀도에 압도되었어요. 그 순간 나무가 제게로 뛰어들었죠.”

단단하기로는 돌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무가 가진 밀도는 작가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안겼다. 그 때부터 인드라 밀로와 나무의 관계가 시작됐다. 작가는 나무의 모든 걸 사랑했다. 갈라진 틈과 나이테, 껍질, 가지, 그리고 나무를 조각함으로써 생기는 가능성. 나무는 돌처럼 단단하지만 더 강한 우연성을 지니고 있었다. “나무 없이는 이 세상 어떤 것도 영속적일 수 없어요. 아무것도 고정할 수 없죠. 하지만 한편으로 나무는 어떻게 튀어나갈지 몰라요. 뒤틀리기도 하고, 색이 바래기도 하죠. 나무가 지닌 예측 불가능함이 바로 제가 원하던 세계예요.”

소재의 기운을 모으다 



인드라 밀로는 영감을 얻는 과정이 작업을 하는 대부분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꿈과 생각, 머릿속 이미지, 세상에 대한 인지가 나무를 통해 표현된다. 때로는 나무 한 조각으로 인해 예술적 열망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전 나무 조각을 모으기 좋아해요. 이를 하나로 잇고 색을 입히고, 서로 다른 수종의 나무로 형태를 만들고 다른 소재를 더하고.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화합과 조화를 발견하죠. 그래서 제 작업은 대부분 실험적이에요.”

처음 조각을 했던 것은 돌이었지만 이후 나무와 실 등 인드라 밀로는 작업에 여러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소재를 연결하고 모험하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모든 소재는 저마다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또 그 기운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조각하고 작업을 구상해야하는지 인드라 밀로는 알고 있었다.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소재 중 하나인 실은 형태를 잡기 어렵고, 면적이 없어 2차원의 세계만을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작가는 실 한 가닥을 세워 작업을 하거나 나무나 금속 조각 등의 표면에 걸쳐 형태를 만들어 낸다. 얇고 가는 실에서 3차원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작가만의 방식이다.

“전 형태의 성장과 팽창, 응집 등을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모두 자연의 현상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니까요. 식물과 나무, 곰팡이, 이끼 등 자연이 어떻게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탐험하는지 제 작업을 통해 알아나가고 싶어요.”

소재를 합하고, 이를 키워나가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집중이다. 작가는 작업에 있어서 기술적인 부분은 기초 자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무와 여러 소재를 가지고 작업하는 일은 기계적이고 단순한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나무 혹은 돌 등 자신이 만지고 있는 소재 사이에 흐르는 기운의 흐름이 중요하다. 즉 소재가 지닌 물성을 파악해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인드라 밀로가 생각하는 작품을 만드는 이상적인 과정이다.

나무가 안내하는 세계 



인드라 밀로의 작업은 대부분 오크로 만들어졌다. 서어나무나 삼나무, 아카시아 등을 쓰기도 하지만 작가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나무는 오크와 아카시아다.

“삼나무로도 작품을 만든 적이 있는데, 향이 매우 좋지만 삼나무보단 역시 오크가 더 좋아요. 아마 그 밀도와 무게 때문일 거예요. 깎기 위해 나무와 씨름을 할지라도 전 무게감이 좋아요. 거기서 느껴지는 강인함이 매력이거든요.”

작가는 작품에 쓰이는 나무를 직접 자르거나 사지 않는다. 자신이 써야할 나무라면 저절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주로 버려진 목재를 모으고 이를 작품에 사용한다. 언젠가는 어떤 이로부터 폐창고에서 나온 철도침목을 받은 적이 있다. 그에게는 분명 쓰임을 잃은 목재였고 쓰레기에 불과했지만, 인드라 밀로는 되레 이를 행운으로 받아들였다.



“매우 부패한 나무여서 작업하기에 까다로웠어요. 하지만 이런 조건을 지닌 나무로 작업하는 게 전 정말 재밌어요. 전 모험을 즐기거든요. 나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를 때 두렵기도 하지만 신이 나요. 가끔 나무 속에 숨어 있는 벌레에 물리기도 하고 부패가 심해 나무 그 자체를 살리지 못할 때도 있지만요.”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마저도 이 일의 아름다움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소재,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우연성이 나무가 지닌 매력이므로. 예술가에게는 이보다 더 감각을 자극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작업실에서 다음 생을 기다리는 나무와 마주할 때면 작가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그 단단함이, 그리고 이를 통해 펼쳐질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자기 자신을 예술가로 존재하게 만든다고, 인드라 밀로는 말한다.


 


사진 제공: 인드라 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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