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나점수...기호로 만나는 식물성 이미지

육상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2-02-12 23:26:39
  • -
  • +
  • 인쇄
“나는 표면의 깊이(식(識),성(性),향(向))를 생각한다. 내 작품의 직관적 형태들은 거친 침묵의 표면을 드러낸다. 이를 수식하는 요소 중 하나가 표면이다."

 

유목하는 예술가의 눈과 몸으로 익힌 경험과 사유를 나무, 철, 흙 등의 자연재료로 체화하고 조형하는 것은 텍스트로 전이하기 위한 엄숙한 수행의 한 과정이다. 대중은 바로 이 텍스트를 통해서 작가가 경외심으로 수용한 숭고한 인식의 풍경을 공유한다.


조각가 나점수 작품의 근간은 식(識), 적(寂), 생(生), 명(明), 성(性), 향(向)이라는 6가지의 요소로 대변된다. 그는 공간을 시(詩)라고 표현한다. 작가가 ‘풍경’에서 느낀 바를 하나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그 ‘모습’들이 어떠한 공간 안에서 펼쳐졌을 때 또 하나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생명을 이미지의 표면 속으로 유폐(幽閉)시킬 수는 없다. 체온이 이미지가 아니듯이 살아 있는 것들은 체온 가진 것들을 의지하고 서 있으며, 생(生)과 명(命)을 바라보는 시선은 생명이 가진 것들을 바라보고 있다.”


가난한 작가에게 어느 날 나무가 와서 손을 내밀었다. “나를 분해하고 깎아 채색하고 다듬어서 곁에 두려무나.” 그러고 보니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것이 목재이지만 쓸만한 놈은 흔치 않다. 예술 이전에 마음을 맞추는 일이 우선이다. 사람도 그렇다. 괜찮은 벗 몇이나 두고 사는가.

 

나점수는 ‘가난한 이유’로 나무를 소재로 끌어들였다. 조각을 전공한 그에게 나무는 생소한 벗이 아니었으나 그보다 화려한 이력을 좇는 것이 유행인 시절, 유행에 둔감한 나점수는 혼자 걷는 일을 즐겨했고, 그 길에서 나무를 만나 동행했다.

 


“어느 날 연락이 왔어요. 안양 성 나자로 마을에 쓰다 버린 나무가 있는 데 가져다 쓰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조각가의 전업은 깎고 다듬어 의식을 맑게 가져가는 보통 날을 이어갔다. “현실이 그렇지 않나요. 가난하지만 부유한 예술가들이 상상의 폭을 넓혀갑니다.” 그의 작업 공간은 크라운 해태제과에서 제공한 장흥 아트밸리에 자리한다.

“대우주를 사유화하는 일도 하루 반나절의 상상이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상상에서 하차하는 순간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래서 이곳의 예술가들은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한다. “끝까지 매달리는 것이죠. 마치 시지프스가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올리듯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을 천형이라 여기고 사는 부류죠.”
 

나점수는 조각으로 새긴 감옥에서 상상력의 보폭을 넓혔다. 바위를 밀고 오르면서 놓고 싶었지만, 이것은 나점수의 방식이 아니다. “비록 내 의식의 표면이 사막일지라도 내 삶을 관통해온 평온을 바라볼 침묵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로 인해 기호화된 물성의 세상은 조화롭고 유혹이 없는 공간이다. 어느 날 아프리카 도법에 나선 나점수는 사막의 돌 표면에 ‘LOVE’라고 새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 두고 왔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빠롤’과 ‘랑그’를 다룬다. 소쉬르의 생각은 나 작가의 설명에도 등장한다.

랑그가 없으면 빠롤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랑그 역시 빠롤의 옷을 입고서야 모습이 드러난다. 빠롤의 경지는 나점수에게 예술이다. 단지 사랑(랑그)이라고 새기고 던져 버렸다면 이미 그 의미(빠롤)가 사라진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아프리카에 두고 온 ‘사랑’을 추억하며 작품에 새겼다. 어느새 그 사랑은 작가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기호로 자리 잡았다.


내 입술의 피가 마를 때까지

 

평단의 비평가들은 작가 나점수를 유목민이라 칭한다. 예술세계를 비행하는 역마살은 그의 낡은 배낭과 문명의 지도 밖에서 건져온 물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유목주의와 선을 긋고 오로지 발과 진심으로 다가서겠다는 생각은 역마살의 범위를 오래된 미래로 한정했다.

 

 

1998년 실크로드 횡단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전역(2005년-2007년)과 몽골, 러시아 횡단, 유럽투어, 중국-중앙아시아-터키횡단(2008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유목주의는 동물을 사육하는 그것과 다르다. 나점수가 발견한 것은 황무지를 이끄는 식물성이었다.

생명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식물군은 그의 작품의 주류를 이룬다. 선인장을 닮은 조각품들이 그 예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선인장이 아니다.” 생명과 자연이 투쟁하는 힘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한 것일 뿐, 흉내 내고 똑같은 형상을 새길 요량이면 애초부터 그는 여행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본시 작가는 자연을 모방하고 재현하고자 노력하는 기질을 가진 이들이다.

나점수는 탐구와 열정을 쏟아낸 뒤 남은 정서를 표현한 것일 뿐, 자연의 숭고함 속에 예술의 숭고한 정신을 집어넣고자 노력할 따름이었다. 여기에서 나무라는 소재는 시적 텍스트와 유사하다. 단순한 목재 기능으로써의 나무가 아닌 고도로 정제된 작가의 맑은 정신이 깃든 미학적 수사 어구가 나무인 것이다.

 

 

 

 

작가 나점수는 “스스로 나무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간이 본다는 것은 물질로 각인한다는 뜻인데 물성이라는 것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에 나무를 판단하는 것은 오만한 행위”임을 생각한 말이다. 그는 지금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나점수는 한 명의 철학자의 위치에서 사물을 헤아리고 지구와 지구 이외의 다른 차원의 연결고리를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이것은 끝없는 탐구 끝에 남은 정서이자 삶의 실천 방식이 되었다.

“관객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작품이 진행될 수는 없습니다. 작가의 주장 속에서 ‘밝을 명(明)’이라는 글자를 전하고 노력할 뿐입니다. 사물의 본질에 다가서는 과정, 그 속에 작가의 역할은 ‘불을 밝힌 자’, 나의 문법이 아닌 대상이 가진 근원을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지금 내가 처한 위치입니다.”

그는 종종 의식이 마르는 소리를 듣는다고 고백했다. 건조한 것을 보면 더욱 또렷이 생명성과 생명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사막 위를 걸었고 아프리카와 대화를 나누고 나무를 소재로 추상의 힘을 펼쳐왔다. 곧 건조함이란 기름진 것의 반대 개념에서 늘 깨어있는 작가 정신을 강조하는 말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건조한 사물의 행렬은 수직적인 기립의 나열과 더불어 생명의 상승 욕구를 대변하는 것이기에 그의 작업은 자라남에 대한 형상적 은유이기도 하다. 나점수 작품의 건조함은 희망의 또 다른 표현이다.

상상의 여백을 패다



김정락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유목민적 시각이 발견한 숭고한 풍경”으로 그의 작품을 설명한다. 숭고는 단순히 시각적 쾌를 넘어서는 궁극적인 아름다움이다. 18세기 미학자들에게 숭고는 인간의 감각의 한계를 넘는 최고의 미로 여겨졌다.

인간의 원초적인 자연관을 엿보게 하는 감성이 있는데, 그것은 공포와 경외이다. 무한이나 절대크기와 같은 것들이 바로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숭고에 다다르기 위한 기초적인 조형원리에는 수직과 수평이 있다. 이 단순한 원리들이 인간의 감각을 넘어서는 차원에 이르면 공포심과 경외감을 발휘하는데 나점수는 이러한 원리를 간파하고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점수는 이를 주관적 해석에 의해 다시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표면의 깊이(식(識),성(性),향(向))를 생각한다. 내 작품의 직관적 형태들은 거친 침묵의 표면을 드러낸다. 이를 수식하는 요소 중 하나가 표면이다. 식물의 형상들이 드러내는 표면은 숭고함을 일으키는 의식과 무의식의 층위와 연관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나 자신을 관조하는 침묵의 언어를 삶 속으로 이동시키려 한 것처럼 보인다.”

그를 대중적인 작가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작품을 구도의 한 과정으로 여기고 대승적인 작품을 남기고자 노력했다. 이 과정 속에서 의도적인 퇴행과 역행도 찾아볼 수 있다. 일테면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구매한 물품을 담은 비닐봉지로 옷을 지어 한국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할머니에게 입히는 식의 작업이다.


 


아프리카와 한국이 가져다 온 간극은 비닐 옷을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 속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대비는 엿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낯설게 하기’라는 형식주의적 절차만이 오롯이 머릿속에 각인된다. 짐바브웨, 모잠비크와 소말리아 등지에서 발원한 것이 한국의 촌부에게 다가서는 순간 우리가 겪게 될 충격은 이제껏 없었던 것이다.

이 낯선 것이 예술이라는 옷을 입게 되면 그 옷은 ‘옷’이 아닌 숭고한 무엇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싶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먹고살게 된다.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리치(Rich)’이다. 가난한 작가들이 이곳에서 열심히 활동해 부자가 되라는 그러한 융숭한 대접이 아니다. 예전 리치모텔이라는 간판을 두고 누군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모텔’이라는 글자만 삭제했을 뿐이다. 그러나 리치는 부유함을 상징을 넘어 배려가 엿보이는 공간이다. 서너 평의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축적되는 물질은 상징적인 것이다.  

 


물질은 작품이 되어 쌓여갈 것이고 작품은 다시 세속적 물질로 환산될 것이다. 그게 예술가가 먹고사는 법이 되어야 한다. 건전한 문화 생태계에선 이것이 자연스러운 구조다. 그러나 뉴트론티어 대상(1997), 청년미술제 본상(1998), 중앙미술대전 특선(1998), 송은 문화재단 지원상(2003), 상암DMC 상징조형물 선정 (2009)의 경력을 가진 작가는 여전히 가난하고, 건조하다.

가난한 그에게 주어진 여덟 번의 개인전과 열세 번의 국내외 단체전시는 부유한 우리를 구원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래, 더는 부자로 살 수 없는 노릇이다.

“비록 내 의식의 표면이 사막일 지라도 내 삶을 관통해온 평온을 바라볼 침묵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육상수 칼럼니스트 육상수 칼럼니스트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