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소목장 김동귀... 전통과 소목의 시대정신

장상길 기자 / 기사승인 : 2026-09-26 22:04:09
  • -
  • +
  • 인쇄
평생 일궈온 공예의 길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전통의 미래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이처럼 질문을 안 한 적도 없는 것 같다. 질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김동귀 소목장은 공예에 입문하던 시절부터 술술 자신의 이력을 풀어냈다. 그의 얘기 속에는 한 목수의 순수한 열정이 담겨 있었고, 공예가이자 목수의 길을 걸으면서 겪었던 진한 아픔도 있었다.

김동귀 소목장은 오로지 전통공예의 멋에 이끌려 나무를 손에 잡았고, 그 멋을 자유자재로 부리기 위해 풍찬노숙을 마다치 않고 기예를 닦았다. 그는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것을 자신에게 남겨진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공예를 향한 순수한 열정



김동귀 소목장은 경남 진주 태생이다. 그의 외가는 외조부부터 외숙부까지 진주에서 농방을 운영하던 목수 집안으로 김동귀 소목장은 외가를 드나들며 자연스레 소목의 세계를 접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경남공예품경진대회에 작품을 출품할 정도로 목공예에 대한 그의 관심도 남달랐다.

진주교대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던 시절은 물론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을 받은 뒤에도 공예를 향한 그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스승도 없이 화각공예를 배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초등학교 교사 시절부터 그를 사로잡은 것은 공예와 나무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었다. 

 


화각공예를 터득하기 위해 진주 시내 정육점을 샅샅이 뒤져 모은 쇠뿔을 근무 중이던 학교에서 끓이면 냄새가 진동해 교장에게 지청구를 듣기 일쑤였고, 어렵게 구한 카메라 한 대를 들고 단청의 문양을 찾아 심산유곡의 절집들을 주유했다.

당시 진주에 즐비했던 골동품 가게를 이 잡듯이 뒤지는 것은 물론이고 서울에 올라가면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찾아다니며 전통공예 자료 수집과 연구를 이어갔다. 그의 청춘에 각인된 것은 공예와 나무라는 ‘오래된 미래’였다. 돈이 나오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1976년 경남 공예품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것이 혹시 계기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피는 못 속인다던가. 가구 짜던 소목장으로 평생을 산 외할아버지와 외삼촌들의 세월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란 소년은 필연 나무 만지는 목수로 살아갈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김동귀 소목장은 1990년 물 맑고 산세 좋은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 웅석공방을 차렸다. 본격적으로 공예가의 길을 걷기로 작정하고 부산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목칠공예 공부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가 졸업한 진주교대에서 강의를 2년 정도 하니 스스로 한계가 느껴져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동귀 소목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소목장 보유자였던 천상원, 송추만, 정돈산, 강대규의 작업과정을 비교 연구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로부터 꼭 26년이 흘렀다. 그 26년의 시간 동안 그는 공예경진대회 9회 연속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나전은 물론 남태칠에 이르기까지 전통공예의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대학시절부터 전통문양을 연구하기 위해 주말이면 카메라를 메고 전국의 사찰을 헤맸고 기술적으로 막히는 부분들이 있으면 외삼촌을 찾아 가르침을 청하며 쌓은 기예로 2012년에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소목장(상감기법) 보유자에 지정되는 영광도 안았다. 2005년에는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인테리어재료공학과 교수가 되었으며, 편도선과 폐에 생긴 암덩어리를 떼어내는 수술을 보름 간격으로 두 번이나 받고도 끝내 병마와 싸워 이겨냈다. 상감기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색동목을 개발한 것도 각고의 노력이 거둔 결실이다.

전통공예의 미래



김동귀 소목장은 외가를 통해 진주의 전통 소목은 물론 천상원 소목장을 비롯해 수많은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소목의 기법과 장인의 정신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전통이란 과연 어떻게 현대에 자리매김해야 하는가의 고민이 이어졌다. 그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형문화재 신청을 한 것은 그 장인들의 기술과 혼을 제도적으로 이어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아픔도 겪었지만 사사로운 아픔보다 더 컸던 것은 역시 장인이자 교육자로서 전통공예에 대한 사명감이었다.

김동귀 소목장이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자율전공학부에 문화재수리와 보수, 목칠을 배울 수 있는 목수 트랙을 개설한 것도 이런 전통 계승의 일환이다. 공예의 전통을 대학교의 정규 과정으로 끌어들여 좀 더 체계적인 교육 방법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교수 퇴임 후에는 산청의 웅석공방에 체계적인도제교육 시스템을 도입해 자신이 40년 넘게 연구하고 터득한 수많은 공예
의 기법들을 후학에게 전수할 예정이다.

김동귀 소목장은 현대에서 전통은 현대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통에 기반하되 재료에서 도구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들을 최대한 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정신이나 혼, 즉 공예를 대하는 마음만큼은 순수하고 지극해야 한다고 믿는다. 전통을 해석 없이 답습하면 몽매한 전통으로 남겨질 수 있다.

김동귀 소목장의 말을 빌리자면 목수가 700년 묵은 느티나무를 쓴다고 가정할 때, 그 나무에 담긴 700년의 시간과 역사를 이해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다. 나무가 자란 토양이 점토층인지, 위치가 계곡인지, 마른 땅인지 햇빛이 나무에 어떻게 떨어지는지 등을 알아야 나무의 속을 예측할 수 있다. 나무의 속을 예측할 수 있다는 건 나무의 성질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느티나무라도 자란 환경에 따라 성질은 완전히 다르다. 경험을 통해 나무를 이해해야 재목을 보는 안목이 생긴다. 그 다음이 나무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안목이다. 결국 목수는 좋은 나무를 만나 적재적소에 쓸 뿐이라는 것이 김동귀 소목장의 생각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우선 재목으로 쓸 고목들이 흔치 않아 나무를 경험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런 시점에서 전통이라는 이유로 재료나 도구에 제한을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전통 수작업을 중심에 놓되 작업 과정에서 가장 적합한 도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재료나도구가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것이 기물로써 누군가에게 쓰이는 실용 공예품이건, 소장되는 예술품이건 거기에 담긴 정신이고 혼이라는 것이 김 소목장의 지론이다.

색동목의 가능성


 

김동귀 소목장이 목수로서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는 점은 그가 기능은 물론 다양한 공예 분야의 이론적 체계까지 겸비했다는 점이다. 그는 도자기를 제외하면 돌에서 종이는 물론 쇠까지 전통 공예가 소재로 삼는 모든 재료를 다 경험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연구를 비롯해 「통영소목장의 호장줄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성퇴뇌문과 겹귀뇌문을 시문하던 천상원 소목장의 기법을 연구하며 상감기법에서도 매우 깊은 성취를 이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김동귀 소목장은 전통 공예 기법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고민했다. 1995년 공예품경진대회 대상을 수상했던 ‘지리산의 신비’가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그의 첫 결실이었다. 지리산의 곤충을 모티브로 곤충 조각에 은상감 기법을 도입한 이 작품은 소목과 상감 등 전통 공예 기법과 지역의 특성을 접목한 김 소목장의 역작이었다. 손으로는 공예의 기예를 닦고, 마음으로는 전통의 시대정신을 고민하며 공예의 미래를 자신만의 나이테로 그려가고 있는 그의 열정 뒤에는 항상 나무라는 자연의 본령이 함께 숨 쉬고 있었다. 

 


김 소목장이 소목의 주재료인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색동목을 개발한 것은 상감기법의 현대적 해석이자 나무라는 재료의 해석이다. 일본 하코네 지방에서 전승되는 상감기법과 우리나라의 상감기법은 먹감나무나 오동나무 등 색이 다른 목재 단판을 직선으로 포개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엮는 방식에서 동일하다. 이러한 상감기법은 고대 이집트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고 한다.

김동귀 소목장은 상감기법을 연구하고 직접 시문하면서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나 그 밖에 다양한 패턴으로 상감을 엮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다 지층의 절단면에서 퇴적 단층의 다양한 패턴을 보고 염색된 나무 조각을 적층해서 패턴을 구하는 ‘색동목’의 단초를 얻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김 소목장이 개발한 색동목은 수 천 수 만 개의 염색나무 조각을 금형 틀에 넣고 고주파로 고열에서 접착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접착된 나무 조각은 자외선에서 탈색될 염려도 없고 가공 방식이나 나무 조각을 적층하는 방식에 따라 수없이 많은 색과 패턴을 얻을 수 있다. 내구성도 탁월하다. 이처럼 색동목은 전통가구의 화장재와 공예품의 원재료로서의 가능성은 물론 현대적인 인테리어 재료로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특히 쓸모없이 버려지는 잡목을 원재료로 이용할 수 있어 국토의 70%가 삼림임에도 사용되는 80%의 목재를 수입하는 현실에서 삼림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인생에는 파고가 있다. 목수의 삶도 그렇다. 김동귀 소목장은 무형문화재이자 대학교수이면서, 나무를 재료로 신소재를 개발한 소재개발가로 평생을 살면서 영광도 얻었고 아픔도 얻었다. 하나만으로도 벅찬 일들을 그러모으며 살아온 힘은 공예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었고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겠다는 온고지신의 마음이었을 테다.

김동귀 소목장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장인의 길에서, 또 교육가의 길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 공예의 맥을 현대에 잇고 미래의 가능성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방향성이 무엇인지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선대의 전통을 잇고 후대로 이어질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데 허리 역할을 하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 소목장에게 남겨진 고민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전통의 시대정신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AD

관련기사

스튜디오포 개이전 <내가 던진 모든 질문>...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2026.08.24
“무늬에서 사물로, 다시 공간으로”... 장응복의 공예 세계 《에퀴녹스 추분_춘분》전2026.09.21
젊은 도예가들의 정신적 원형 모색 전... ‘Clay of Eidos : 추상을 위한 절대 조형'2026.09.07
Clay of Eidos : 추상을 위한 절대 조형...김가윤 <매핵기>2026.09.26
‘제2회 서울시 유리지공예상’에 이태훈 <안개 속 푸른 밤의 녹턴>…기술의 완성도에 심사위원 전원 일체로 선정2026.09.04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