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타일로 세우는 건축... 아카네 모리야마에게 공간이란 모든 것의 시작점이자 변환점이다.

룬아 리포터 / 기사승인 : 2026-10-20 09: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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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요리사가 되고 국문학과 출신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건축을 배웠다고 반드시 건축가가 되란 법은 없다. 룰이 바뀌었다. 지키지 않는 것이 괜찮아졌다. 고심해 정한 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또한 미지수다. 이 시대의 스페셜리티가 그렇다. 뿌리란 땅속 깊이 내리는 부동의 상징이 아니라 씨앗을 더 멀리 날려줄 탱탱한 고무총과도 같다. 

 

넘치는 재주꾼들이 얌체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고 얽혀 있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커리어와 함께 자아를 찾아 나서는 행위를 격려하는 분위기다. 그런데도 앞으로만 가려는 발걸음을 돌려 한 스텝 옆으로 딛으려면 작지 않은 결심을 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분야를 바꾼다고 해서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이 쓸모없어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때로는 겁 없는 이단아들이 한 우물만 열심히 파는 베테랑들에 비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한다. 틀에 박히지 않은 시선은 장인들을 위협하는 날카로운 재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스톡홀름의 텍스타일 아티스트 아카네 모리야마(Akane Moriyama)는 일본에서 6년 동안 건축을 공부했다. 그동안 그녀의 공간은 거칠고 단단한 콘크리트와 강철, 나무와 유리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 아카네가 만드는 공간은 가볍고 부드럽다. 유럽에서의 새로운 진로를 선택한 그녀는 건축의 뿌리에서 텍스타일이라는 꽃을 피워 인테리어에 필요한 커튼 작업을 하기도 하고, 건물에 매달 설치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작업이 다반사이기에 염색 장인, 바느질 전문가, 설계 엔지니어들의 손을 빌리곤 하지만, 건축학도의 손을 거치는 천이라는 소재는 그동안 우리가 알던 원단의 세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천과 천을 엮는 기술은 최고가 아닐지언정, 공간과 텍스타일을 엮는 상상력만큼은 이곳저곳에서 러브콜을 받는 중이다.

건축에서 텍스타일까지 


 

2013년 10월, 텍사스 대학의 건물 사이로 오색찬란하고 투명한 천이 길게 걸쳐졌다. 아카네는 이것을 커튼이라고 표현했다. 햇빛을 가리거나 봉에 매달려 젖혀지는 천 조각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커튼이라는 공산품의 형태에 익숙한 우리의 눈에 다소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이 큐빅형 작품은 약 5일간 햇빛과 바람과 비를 맞으며 네모난 공간을 움직였다.

아카네 모리야마는 교토에서 건축 석사과정까지 마친 예비 건축가였다. 하지만 졸업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건축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보통의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건축가는 아니었던 것이다. 공간을 만들고 싶은 욕구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나, 보통의 방식으로는 도통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소재에 특화돼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페트라 블라이세(Petra Blaisse)라는 유럽 아티스트의 책을 손에 쥐여주었다. 건축과 패브릭의 접점을 발견하는 작업은 아카네가 그동안 찾던 미지의 영역을 현실로 보여주고 있었다. 더 고민할 핑계도, 머뭇거릴 이유도 없었다. 암스테르담에서의 인턴생활이 시작됐고, 유럽에 남기로 했다.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에 있는 학교로는 콘스트팍(Konstfack)이 제격이다. 텍스타일(Textile) 전공이 있는데 패션디자인과는 거리가 멀고, 그 외의 패브릭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다. 학교에 지원할 때까지만 해도 아카네에게 텍스타일 아트는 막연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면접에서 만난 교수는 아카네의 욕구를 이해했고, 그 머릿속에 있는 추상화를 그릴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그곳에서 그리는 공간은 건축학도가 바라보던 것과 전혀 달랐다. 건축학교에서는 직접 소재를 만지고 다루는 일이 흔치 않았다. 따라서 공간의 표면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머리로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면, 텍스타일 작업은 손바닥만 한 샘플부터 작은 건물 크기와 맞먹는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눈앞에 놓였고 모든 단계가 손끝에서 태어났다.

“패브릭에 한해서는 종류에 제한을 두지 않아요. 쉬지 않고 변하는 것이 텍스타일 설치작업이기 때문이죠. 특정 소재를 선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머물러주진 않거든요.” 텍스타일이란 마음껏 여지를 주는 소재다. 특정한 형태, 크기, 컬러, 무게 등을 정해도 공간의 모양과 빛, 공기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전시 방문객들은 각자의 장면을 기억에 품고 돌아간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하기에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패브릭의 성질이 아카네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또한 같은 이유였다. 이토록 자유로운 소재는 복종시키려 하기보다 어르고 달래는 것이 좋다고, 작품 스스로 생명력을 갖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자신의 역할이라고 했다. 특히 자연광이나 바람이 오가는 장소를 선호하는 이유도 작업과 공간이 소통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 공부하길 정말 잘했죠. 저는 언제나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텍스타일 전문가들은 실 또는 원단에서 출발해요. 일단 작품을 구상하고, 그 후에 디스플레이를 고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전 그 반대라고 볼 수 있어요. 공간에서 출발해서 원단으로 옮겨 가죠. 텍스타일이라는 분야 안에는 많은 기술과 지식이 있고, 그걸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해요. 텍스타일 하나만 바라보고 온 사람들에 비하면 기술 측면에서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접근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어차피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요. 때에 따라 장인이나 기술자에게 도움을 청하고 함께 만들죠. 직접 배우기도 하고요. 제가 다다르고자 하는 곳은 거기가 아니에요. 그래서 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텍스타일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여전히 생소하다. 옷이나 홈패션이 아닌 원단의 세계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고, 도예나 목공만큼 대중적인 공예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아카네 역시 그 희소성 때문에 느끼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신의 직업을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대화에 숭숭 구멍이 나기 일쑤다. 하지만 이런 이해의 부재가 실질적인 어려움을 주진 않는다. 딱히 초조해 하지도 않는다. 벽에 붙어있는 달력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나열돼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중 또는 산업의 반응이란 즉각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텍사스 대학교에 설치한 Cubic Prism이 2년이 지난 2015년에서야 반응을 얻기 시작한 것처럼 몇 년 전에 만났던 사람이 불현듯 메일로 프로젝트 제안을 보내오기도 한다. 그녀는 성실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다. 앞서가는 것보다 꾸준한 것이 기억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앞서는 순간들이 찾아오더라고. 그래도 제멋대로인 소재로 큰 설치물을 만드는 작업이란 상상하기 어려운 난이도의 일일 것 같다고 말하니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창문에 걸 커튼 한 장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는 걸요.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대답했다.

스웨덴과 일본 사이

스웨덴에 비교하면 일본은 한국에 가깝다. 동양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가는 사람과 부딪힐 일이 별로 없는 스톡홀름에 비해 발 디딜 틈 없는 도쿄 한복판의 인구밀도는 그 사회의 경쟁률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바삐 돌아가는 사회의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고 금세 적응해버린다. 아무리 좋은 것과 유행하는 것을 가져다줘도 더 큰 자극을 원한다. 그래서 일본 건축은 실험적이고 새롭다. 대신에 오래된 것의 가치는 점점 퇴색되고 있다. 스웨덴은 오히려 그 반대다.

건축이 호황을 누리던 60년대에 모든 해답을 찾기라도 한 듯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는 쪽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 새로 짓는 건물에도 별다른 특징이 없다. 반면 일반인 기준에서의 인테리어 디자인 수준은 많이 높아졌다고 한다. 집을 관리하고 꾸미는 것에 대한 감각이 전반적으로 탁월해지니, 텍스타일 디자이너에게는 그야말로 좋은 비즈니스 그라운드가 아닐 수 없다.


 

아카네 모리야마는 스웨덴과 일본을 오가며 일한다. 학생 시절 맡게 된 첫 프로젝트는 교토의 작은 집이었다. 건축가 나카야마 히데유키가 지은 O-house에 달 커튼이었는데, 높이가 자그마치 7미터나 됐다. 텍스타일을 처음 다뤄보는 아카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도움을 청하면 손 내밀어 줄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쌓았다.

스톡홀름에 정착한 지도 8년이나 됐다. 딱히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졸업과 동시에 교수와 일을 하게 됐고, 긴 인연은 아니었지만 스튜디오를 등록하고 비자를 신청하기에는 충분한 계기가 돼줬다. 일이 일을 물고 왔고, 하나씩 차근차근 해내는 사이 세월은 흘렀다. 스웨덴에서는 일본을 생각하기가 쉬운데, 일본에 가면 스웨덴은 곧장 멀어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스톡홀름의 스튜디오에 있었는데, 마치꿈을 꾼 듯 가물가물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도쿄나 교토에서 현재 스톡홀름의 스튜디오 같은 공간은 꿈도 꾸기 힘들다. 아카네는 스웨덴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기도 했고, 스튜디오는 언제나 저렴한 월세로 구할 수 있었다. 예술가로서 자립하고자 하는 학생이 굳이 자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다. 게다가 스웨덴의 자연환경만큼 마음에 여유와 건강을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아카네의 스튜디오는 잔잔한 물가와 소박하게 피어있는 들꽃 옆에서 역사가 깃든 건축물의 모습으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런 특수한 환경이 분명히 작업에 영향을 줬을 거라는 의견에 곰곰이 생각에 잠긴 그녀는 “그러고 보니 가장 컬러풀한 작업을 했을 때가 한겨울이었네요. 만약 하와이에 있었더라면 그런 색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라며 무의식을 더듬었다. 그래도 겨울에는 일본에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스웨덴의 겨울에는 너무 길게, 또 깊게 빠지지 않는 게 좋으니까.



아카네에게 디자인과 아트의 경계선은 없다. 텍스타일이라는 요소로 무한한 공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그것만이 그녀의 동기와 영감이 됐다. 그 결과물이 햇빛의 투과를 막아주는 한 장의 원단이 됐든, 마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천의 나풀거림이 가득한 공간이 됐든 간에. 거창한 계획 같은 걸 세우지는 않지만 특유의 차분함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행보에서 일본 건축학도의 꼼꼼함과 스웨덴 아티스트의 자유로움이 풍겼다. 아니, ‘Akane Moriyama Studios’라고 적은 포스트잇이 문에 붙어있는 공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오색찬란한 패브릭이 구석구석 뒤엉켜있는 스튜디오 선반에는 지난 시간 아카네가 실험하고 모은 샘플 박스들이 쌓여 있었고, 모두 전면에 숫자 도장이 가지런히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앞으로 넘버링 될 빈 박스들이 차분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글 사진 룬아┃사진제공 Akane Moriyama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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