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이 교수는 경주 토함산 석굴암 지붕 양식에서 유레카를 외쳤다. 짜임의 힘만으로 어마어마한 석체 무게를 지탱하는 것을 보고 한옥건축에 적용하기로 한 것. 보 없이 부재만으로 지은 이 집은 한옥 건축의 오랜 숙제인 건축비 다이어트의 힌트가 되었다.
전 세계 주거양식 중 한옥만 한 멋과 자연미를 가진 집도 드물다는 찬사가 있지만 현재 ‘한국인이 사는 집은 아니다’라는 비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꾀어야 보배이기에 ‘꾀는 방법’을 모르는 현대인과 전통과의 간극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척박한 삶에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힐링’과 ‘여유’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토지 확보의 어려움과 건축비 부담은 한옥을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집으로 방치해 왔다. 그 단적인 예로 SH공사가 진행 중인 은평 뉴타운 한옥마을 조성 사업을 들 수 있다. 전체 156필지 중 우선 공급 100필지 가운데 고작 10필지만이 주인을 만났다. 높은 토지 분양가와 평당 1200만 원에 육박하는 건축비는 시민의 외면을 샀다. 도시에 적용할 한옥의 장래는 기존의 처방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체중에 시달리는 모양새다.
획기적인 발상 전환이 필요했다. 일본인 건축가 토미이 마사노리 한양대 교수의 실험은 이 무거운 양식을 ‘감량’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석굴암에서 발견한 한옥의 미래
경주 남산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일컫는다. 천년고도의 문화유산이 산재한 산 아래에 남산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토미이 교수는 가정집과 가게를 겸한 건축물을 짓고 싶다는 아라키 준 씨의 부탁을 받고 이곳을 찾았다. 이 일본인 건축주는 카레전문점을 낼 계획이며, 살림 공간이 별도로 필요하며, 그것이 꼭 한옥이어야 한다는 세 가지 단서를 달았다. 그리고 건축주인 제 자신이 쓸 수 있는 예산이 1억 남짓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부탁이었다. 통념상 건축비를 계산하면 본채 53m2(16평)와 별채 16.5m2(5평)에 합당한 총 건축비는 ‘21평*1200만 원=2억 5200만 원’이었다.
“아파트를 나와 작은 집을 짓고 싶다던 이 일본인 건축주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 신분이었습니다. 예전부터 한옥 설계를 벼르던 터라 일단 수락하기는 했지만 과연 주어진 예산으로 지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습니다.”
토미이 교수는 한옥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리고 1240년 전 지어진 석굴암(751∼774년) 구조를 접하고 무릎을 쳤다.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었다. 석굴암 천정은 몸의 척추 기능인 보가 없으면서도 이음과 짜임의 힘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건축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방안인 ‘보 없는 한옥’ 건축은 오래된 것에서 길어 올린 아이디어를 통해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에서 제 골격을 찾았다. “전통한옥하면 대들보를 주축으로 서까래를 타고 나와 하늘로 치솟는 처마를 가진 고래등 같은 이미지부터 떠올립니다. 그러나 천장을 가로지르는 대들보가 없으면 내부가 시각적으로 더 트여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거운 지붕에도 불구하고 집의 상·하부 구조가 균형을 이루는 대서 나오는 긴장감을 극대화해보고 싶었습니다.”
토미이 교수는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피레네의 성’에 등장하는 공중에 떠있는 바위의 묘사처럼 석굴암과 고인돌, 김중업의 건축물이 보이는 ‘떠 있는 돌’이 가진 긴장감과 품격에서 한국 전통건축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량화로 푼 한옥 대중화
다시 한번 난관에 봉착했다. 건축에 참여한 목공팀이 설계도를 가리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경험 많은 목수의 처지에서도 이런 구조의 한옥을 접해보기는 처음이었다. 구조 엔지니어가 작성한 디자인 도면도 이들에게는 생소했다. 결국 현장 팀원인 구가건축의 황보람 제자, 구조 엔지니어, 목수 등 모두가 매달려 축소본을 만들어 시연 과정을 옮긴 끝에 집은 형체를 갖춰 나갔다.
사실 이 작업이 건축학적인 한옥의 정의에 부합하는 일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구연한이 500년이 넘는 팀버프레임 주택과 현대식 경량목구조가 혼재한 서양의 주택 역사는 선택과 다양성의 의미로 해석된다. 한옥 역시 이런 다양한 실험을 거쳐 합리적인 대안이 제시되어야 할 시점에 섰다.
토미이 교수는 “한옥 시공비가 일본 전통 목조 건축비에 비교해도 매우 비싼 편”이라며 “한옥이 발전하려면 공사비를 합리적으로 낮추는 실험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라고 조언하고 있다. 경주 한옥 프로젝트가 완성 뒤 토미이 교수에게 돌아간 설계비는 현재 한 푼도 남지 않았다.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 중 40회 이상 서울과 경주를 왕복했으며, 구조 디자인을 위해 남은 돈을 지출했다. 하지만 재현 범주를 뛰어넘어 한옥이 가진 가능성을 새롭게 조명했다는 측면에서 그는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일찍이 경주 양동마을 향단에 올라서 자연환경과 건물, 마당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한국 전통건축의 공간미에 반한 그는, 일본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건축가로서 한옥을 생각하고 있다.
-토미이 마사노리 : 일본 요코하마 가나가와대 건축학과 졸업했으며 1996년 도쿄대에서 건축학 박사로 받았다. 일본에서 100채 이상의 주택을 설계한 최고의 목조주택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이후 4년간 한양대 전임교수를 역임했다.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