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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의 기원 |
스승과 보낸 길 위의 시간
나를 규정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현재에 몰입하는 것 이외에는 기댈 것이 없었던 시절, 하나의 문장도 나에게 거대한 세계였고 안식의 처소였다. 글과의 인연은 참 소중했고 그것은 좌표처럼 나를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자신과 대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나를 일깨워 주신 분이 은사이자, 길 위의 스승이었고, 나에게 있어 예술가의 한 표상이기도 한 신현중이었다. 신현중은 불현듯 전화를 걸어서 제자인 내게 일을 부탁하셨고, 여행을 떠날 때면 “야 시간 비워둬라. 이번에 떠난다. 모자란 돈은 내가 해결 할 테니 가는 거다”라는 식으로 나를 여행에 동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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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뮬고기1 |
그렇게 우리는 아프리카로 떠났다. 하지만 아프리카 여행은 내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협박, 갈취 그리고 수없이 많은 부조리함과 압박은 물론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야 할 정도로 고단한 여정의 연속이었다. 길에서 촬영을 하던 중에 납치되어 쓰레기 하치장에서 카메라와 돈을 빼앗기고 버려지는 일도 있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길 위의 여정은 체력적으로도 극한의 경험이었다.
신현중은 강도를 만나면 미리 준비한 돈다발로 강도들과 협상을 했고, 지나던 길에 마음을 끄는 사물이 있으면 돌 한 덩이, 버려진 비닐 조각 등을 가리지 않고 배낭에 우겨 넣었다. 해가 지고 숙소에 도착하면 쉴 새도 없이 그리고 해가 채 뜨기도 전에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됐다. 그렇게 여정이 길어지면서 배낭의 무게도 늘어났고, 그 배낭을 짊어져야 하는 나의 고단함과 고뇌도 늘어갔다. 그때는 그 여행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여행 도중 “이것이 우리다”라고 종종 말하는 선문답 같은 말씀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여행은 생각을 멈추게도 하지만, 수없는 의심과 상념을 머릿속에 심어 놓는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느끼는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알아차렸으면 스스로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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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주 |
어떤 위로도 없었으나 스승의 그 말 자체가 나에겐 위로였다. 그런 후에 나는 나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성소가 아니면 어디가 성소이겠는가? 이것이 나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예술가 신현중은 왜 하필 아프리카라는 설움의 땅을 그렇게 미친듯이 떠돌아 다녔을까? 그렇게 길을 걸으며 수집했던 온갖 사물들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수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고 수없는 상황과 대면하며, 아프리카의 감동어린 풍경을 수없이 바라보며 인간 신현중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내려놓았을까? 길 위에서 “온 세상이 조각이다”라고 말하는 예술가 신현중은 그때 아프리카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그 해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그 자신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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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의 생명체를 위한 문명 |
거대한 짐을 짊어져 본 자만이 그 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삶의 무게가 어떠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짐을 내려놓은 후에 참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이 내딛는 발걸음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는 신현중의 세상이기도 했지만 또한 나의 세계이기도 했다. 나는 그 길 어딘가 폐허와 같던 사막의 마을에서, 혹은 빈자들의 가난한 비닐 천막에서, 천진난만한 오지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 삶은 예술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가난한 삶을 보고 폐허를 상상하는 순례자는 없을 것이다. 순례자는 폐허 위에서 조차도 성(聖)과 속(俗)을 분별하지 않으며 성찰의 과정으로 승화 시킬 뿐이다. 나는 가끔씩 ‘시작에서 끝을 보고 끝에서 시작을 본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았다. 아마도 빈곤한 의식의 끝이 종착(終着)이 아니길 바라는 어떤 기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혼잣말처럼 “이것도 우리다”라고 중얼거린다.
글자에 담긴 신현중의 사유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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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기 |
스승 신현중의 삶과 세계를 글로 쓰기란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단지 어느 한 때 제자로서 내가 바라봤던 모습을 옮길 뿐이다. 물론 그것이 그를 설명하기에 부족한 언어임을 나는 안다. 하지만 한 예술가를 엿보기 위해 그 예술가의 전 생애를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스스로 명명한 작품의 제목과 전시 제목들을 통해 예술가 신현중을 들여다보려 한다.
<환생(幻生)을 위한 식물(植物)인간> <환생(幻生)을 위한 배양실험> <우제류를 위하여> <신빙하기> <동(東)으로 동(東)으로> <모태를 찾아서> <방생(放生)> <철기시대의 기억> <소멸(消滅)> <플라스틱의 봄> <방주> <서식처의 기억> <청해진을 느끼며> <흔적> <천문(天問)>에 이르기까지 신현중의 작품세계에는 식물에서 동물, 탄생과 죽음 그리고 환생, 자유와 생명의 상징인 방생, 문명의 탄생과 역사, 생명의 기억과 과학, 농경과 유목, 문명의 이동과 삶의 흔적, 우주와 인간, 역사와 현재를 넘나드는 방대한 시선이 그의 사유체계를 통해 작품으로 구현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특별히 신현중을 기억하게 하는 작품인 <우제류를 위하여>는 인류의 문명 건설을 가능하게 한 네 발 달린 짐승들에 대한 경의를 표한 작품으로써 생명 갖은 것들에 대한 존중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들은 인류에게 봉사하였고 우리는 그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지 않았다. 만약 감사의 대상이 인간에게만 해당된다면 생명은 ‘우리’에 포함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현중에겐 생명 있는 것이 곧 ‘우리’라는 시선이 있었으며 그것이 작가의 시작이고 작품의 세계임을 알아차린다면 신현중이라는 한 작가를 이해 할 수 있는 경계 앞에 다다른 것이라 생각된다.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신현중은 삶을 지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인간 인식의 저층위로부터 해석하려 하고 있으며 문명, 과학, 역사적 산물들을 생태적 언어로 재배열해 우리가 유폐시켰던 다양한 존재가치를 상징체로 전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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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생을 위한 배양실험 |
신현중은 ‘문명충돌’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이전부터 동서의 고대 문명 교류사에 관심을 갖고 역사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특히 선사시대 유물에 관심을 갖고 수집을 해서는 곧 작품으로 녹여냈다. 내가 학생시절 조각이란 관념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스승 신현중은 “인류의 모든 흔적이 조각이다”라고 나를 가르쳤고, 그런 그의 예술적 상상의 범주는 생명 전체의 모든 과정에 대한 시선으로 나타났다.
특히 어머니를 위해 제작한 <환생(幻生)을 위한 식물(植物)인간>을 보면 신현중은 세계를 단선적 시선이 아닌 ‘순환’과 ‘생의 탈바꿈’ 이라는 끊임없는 연결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전일적’ 세계관은 수없는 지리적 경계를 넘나들며 쌓인 경험들이 정서적, 정신적으로 승화되면서 형성된 세계로 보인다. 우리는 흔히 동양과 서양을 나누고 민족과 민족을 나누며, 국가와 국가를 구별하게 된다. 그런데 생(生)의 이치란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동과 서의 관념이 무너진 곳, 그리고 민족의 관념이 무너진 곳, 현대와 과거의 관념이 무너진 곳, 물질과 정신의 관념이 무너진 곳, 그 곳이 비로소 한 세계가 열리는 현재라는 실재적 경험이 ‘경이’로써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흔히 신현중을 본격적인 한국 설치 작업의 첫 세대로 말하곤 한다. 특별히 신현중이 거론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보여준 세계관과 더불어 파격적 재료의 사용과 관람자의 즉자적인 지각작용의 반영을 이끌어내는 현대적 성격의 작업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지의류나, 곰팡이 등을 사용해 전시장에서 실재로 성장하는 생명체를 전시하는 방식과 이집트와 그리스를 비롯한 선사의 거대한 전통적 조각의 조형원리를 현대의 조형언어로 전환하면서 융합이나 통섭의 개념을 오래 전부터 작품에 도입했다는 점이다. 근자에 융합, 통섭, 통합이라는 단어들이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미 30여 년 전에 그와 같은 시선으로 작업을 시도한 작가로서의 혜안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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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방주 |
신현중은 현재를 응시하기 위해 인류의 흔적을 수집하고 과거의 시간을 들쳐보며 아직 닫히지 않은 시간 속을 순례의 마음으로 걸어 다니시지 않았을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술가란 무엇일까? 나의 대답은 “무엇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무엇이라는 질문의 역할은 그것이 무엇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하기 위한 화두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한 후에야 세계의 ‘총체적 사태’ 앞에 서계 되는 것이며 이것이 예술가의 첫 ‘시선’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신현중으로부터 이런 시선을 감지하게 되었고, 신현중을 만나고서야 예술가로서 나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술가란 무엇인가
다시 묻게 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아니란 걸 알고 난 후 대면한 그 세계를 무엇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가? 나는 다시 묻는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신현중은 이런 나의 질문에 “술이나 한 잔 하자”라고 웃을지도 모른다. 예술가는 관념적 ‘나’를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세계와 대면하며 해체되어 비로소 ‘현재’를 응시 할 수 있는 시선을 갖은 자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습지만 아마도 이런 내 생각을 들으시면 “야 너만 잘 났다”라고 하실 것도 같다. 아니 실제로 그러실 것이다. 나는 예술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지만, 현재를 응시하는 시선을 조형예술로 풀어내는 신현중의 모습이 적어도 내 가슴 속에는 예술가의 한 표상으로 존재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지금 생각이지만 신현중은 관념적 테두리에 함몰되어 “내적 갈등의 외적 표현”에 머무는 단순한 예술가 상을 우리에게 남기지는 않으셨다. 오직 알 수 없고 붙들 수 없었던 어떤 것들을 예술이라는 확장된 가능성 속에서 총체적 시선으로 또는 조형적, 시적 언어로 제시하고자 하였고 그런 총체적 사태를 우리 앞에 던지듯 펼치셨던 것 같다. 신현중이 애정 어리게 끌어 모았을 길 위의 쓰레기들이 미술관에 펼쳐지는 낯선 광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무엇을 감지했을까?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 압축적 시어로 대면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신현중이 조형언어로 해석한 쓰레기들을 보며 내 스스로를 어떻게 방치했는지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자연이다.’ 우리가 쓰레기라 하는 것도 한때 ‘자연’으로부터 왔으며 우리 자신도 한 곳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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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리가 많은 포자 |
2009년 어느 날 신현중은 쓰러졌다. 50대 후반을 넘은 나이였고, 작가로서는 황금과 같은 귀중한 시간을 관통하는 때였다. 신현중은 건강을 잃은 뒤 기억을 되찾아 현재로 복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아직도 기억된 것을 설명할 수 없는 언어적 상실과 표출되어진 것들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예술가다’라는 글을 혼자서 써내려간 것을 보며 예술가란 누군가에게 생의 의미를 넘어 어떤 실존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 사람의 진면목을 본다는 것은 그가 바라보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고, 그가 삶에서 벌어지는 총체적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일일 테다. 나는 신현중이라는 세계를 통해 나의 세계를 보게 되었고, 나라고 하는 관념의 장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실험과 도전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신현중은 하나의 사건이었고, 그 사건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좌표이기도 했다. 선생님과 함께 한 길 위에서의 시간들이 생생하다. 가난한 호텔의 스프링만 남아있던 침대와 무수한 양들을 실어 날랐던 오래된 왜건을 타고 사막을 종단했던 기억과 냄새, 사막의 새벽과 별, 나무와 먼지바람, 어둠과 새벽, 새와 구름, 그리고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우리를 위험스럽게 했던 가난한 땅의 경계에 서 있었던 많은 사람들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친구들 모두가 짧은 인연의 시간을 관통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대면할 수 있는 관념의 감옥 일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우리를 대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을 보기 위해 그리고 그곳에서 이곳으로 다시 떠나고자 할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글을 쓰면서 이 글이 선생님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늘 나이를 넘어 작품을 하는 사람으로 친구처럼 형제처럼 대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예전처럼 건강이 좋아지시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꿈만 같다. 언제 다시 그렇게 남루하게 길 위에서 쓰러져 잠들 수 있을까?
글 나점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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