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나무여, 내게로 오라...네덜란드 부조 아티스트 론 반 데어 엔데

오예슬 기자 / 기사승인 : 2023-03-15 21: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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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목재를 모자이크 부조(bas-relief)로 완벽하게 부활시키는 미다스의 손

 

론 반 데어 엔데 (Ron van der Ende)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입체감, 즉 입체감을 형성하는 구조와 음영, 반사는 사실 모두 가짜다. 3차원 작품이라고 생각했다면 론 반 데어 엔데가 유도한 착시 현상에 걸려든 것이다.

실제로 그의 부조 작품은 모두 평면이다. 합판과 재활용 목재로 기본 토대가 되는 부조판을 제작한 후, 그 위에 나무 조각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붙여 나간다. 한 번에 한 조각씩 풀과 못으로 정성스레. 버려진 가구와 낡은 문짝이 그에겐 쓰레기 더미 속 진주다. 쓸모를 잃어 내팽개쳐진 그것들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폐목재가 지닌 풍부한 색감과 질감이 정말 좋다. 백만 번 이상의 세련 과정을 거친 고급 재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것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궁상맞기까지 한 그것들로 누가 봐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폐목재와 함께하는 삶이 내 운명이다.”

그는 어떤 색도 덧칠하지 않고 폐목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빛바랜 색만 이용한다. 때문에 많은 재료 중에서도 색감이 다양한 문짝을 선호한다. 오래된 문짝을 취급하는 고물상을 들를 때면 한 손에 플래시를 들고 공격적으로 문짝을 찾아다닌다. 이러한 행위는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구하려는 그의 미적 탐색과 다르지 않다.

 



자아를 잃지 않는 모자이크

론 반 데어 엔데의 작품을 사진으로 감상한 소감이 어떠한가. 그가 꾸며낸 ‘3차원스러움’에 속아 조형물이 아닌지 의심해 보기도, 짙은 회화성에 끌려 극사실주의 그림이 아닌지 생각해 보기도 했을 터이다. 이러한 감상을 하는 동안 그의 작품이 폐목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는다. 그가 창조해낸 이미지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실제로 감상하면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실제 작품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굉장히 다르다. 그것은 나무 조각이 지닌 물질성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이미지가 아니라 낡아빠진 나무 조각에 못이 다닥다닥 박혀있는 물체로 인식한다. 내 작품을 처음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어떤 이는 역겨움을 느꼈다”고 했다.

관람객들은 이미지가 아닌 물체를 맞닥뜨리게 된다. 낡고 닳은 쓰레기 목재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덩어리. 아무리 폐목재가 예술로 승화했다 하더라도 본래 가지고 있는 ‘천한’ 물질성은 차마 버리지 못했다. 낡고 닳고, 심지어 더럽기까지 한 나무 조각이 예술성에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그가 색을 덧입히지 않는 이유, 바로 폐목재의 자아를 존중하기 위함이다.


 

“작품에 들어가는 내 에너지를 여러분들께 전달하고 싶다. 사진에서는 그 에너지가 많이 손실된다. 수많은 나무 조각들과 그것을 연결하고 있는 못에서 작가로서의 고집과 상상력, 그리고 작품에 대한 나의 사랑을 봐줬으면 좋겠다.”

과거를 거두어 현재를 살게 한 남자

그는 작품의 모델을 찾기 위해 어딜 가든 사진을 찍는다. 묵은 잡지나 책, 인터넷에서 발견한 대상도 작품 모델이 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을 표현하기 때문에 리얼리티에 충실하다. 그의 작품 은 1969년 영화배우 리처드 버튼이 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40번째 생일 선물로 준 다이아몬드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는 1981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이 암살 위기에 처한 당시 타고 있던 차, 캐딜락 플릿우드를 대상으로 했다. 재현과 모방을 ‘흉내 내기’로 단정 지은 미메시스라는 개념을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 질문에 “나는 재현과 모방을 가지고 놀려고 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미메시스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첫눈에 반한 대상을 모델로 삼아 작업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흉내 내기를 하는 그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


 

 

 

 

그가 재현하는 대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들 과거를 살았다는 것. 시간에 치이고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지금은 존재감도 존재의 의미도 퇴색된 것들. 당시 10억 원을 호가하던 테일러-버튼 다이아몬드도 소리 소문 없이 팔려나갔고, 레이건의 전용차 캐딜락 플릿우드도 오바마 대통령의 애마 캐딜락 원에 밀렸다. 이들의 신세는 꼭 폐목재를 닮았다. 한때는 누군가 소중히 여기던 가구들이 낡고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버려졌다. 시간에게 버림받은 ‘그들’은 론 반 데어 엔데에 의해 현재를 살고 있다. 이 정도면 재현이 아니라 부활이 아닐까.

 

사진 론 반 데어 엔데 제공

론 반 데어 엔데 : 1965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태어났다.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로테르담에 있는 예술학교 Academie voor Beeldende Kunsten에서 조각과 믹스드 미디어(mixed media)를 수학했다. 1996년부터 폐목재로 모자이크 부조를 제작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수백 차례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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