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의 어떤 우상(偶像)

육상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6-01-06 14: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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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공예를 지배하는 어떤 '우상偶像'을 언뜻언뜻 감지하게 된다.

쌍둥이 같은 엇비슷 양식, 모호한 텍스트, 기묘한 형상, 강요적 개연성, 순화보다 자극성, 자연스러움보다 작위성, 극단적 개인성 등이 현대 공예의 우상들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들이 획일화, 집단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상은 개인보다 집단성을 요구한다. 정치는 그나마 강을 사이에 두고 여・야라는 경계를 두지만 현대공예는 '여' 집단체만 존재한다. 

 

▲ 조선 다완


쌀은 밥이 되어야 하고, 밥은 그릇에 담겨야 하고, 다시 그릇은 배고픈 사람에게 긴요한 사물이 되는 것처럼, 세상은 이런 단순한 이치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싶다. 땅 위의 온갖 사물들은 저마다의 숭고한 존재의 이유가 있고 그 자리에 공예가 살아 있는 것일 텐데, 예술에 혼을 빼앗기고 산업에 기능을 상실한 오늘의 공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집단적 개인성에 의존해 기묘한 조형에 머뭇거린다.

전쟁 때 피난민들이 집단 행렬로 한 길을 따라 이동하듯이 몸체를 분리 당한 공예도 모두 같은 길, 같은 방향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다. 장르와 사조를 분실한 공예의 허탈감을 약점으로 파고든 '우상'은 뾰족한 독수리 부리로, 허물거리는 하마의 턱으로, 색맹측정표의 난삽한 색으로 변이하면서 관객을 앞서가려는 우상화 의도가 짙어 보인다.

공예는 실용이 아름다움으로 옮겨지는 여정일 텐데, 그 시간에 존재하는 침묵의 미학은 온데간데없고, 역사적 해석은 미미하고 단지, 외침과 관종의 우상에 도취해 있다. 어느덧 선생도 제자도 없이 각자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지금의 공예체계는 벼랑 끝을 맴도는 중이다. 하긴 예술 그 자체가 절벽의 허리에 거주하는 것이라서 이런 관점 또한 노파심일 수도 있겠다.

작품 앞의 관객이 10초를 머물면 열심히 만든 것이고, 30초를 머물면 괜찮은 작업이고, 1분을 머물면 작가를 만나고 있는 것이라면, 현대공예는 어떤 시간을 맞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상이 아닌, 삶의 근간에 다가서는 즉물적 공예가 되지 않고서는 어떤 우상의 추종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끝내, 침묵으로 자리하는 조선의 막사발이 그리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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