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아 보이는 것들의 진가를 일찌감치 알아챈 정현 작가는 한 곳에서의 쓸모가 다한 사물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 참 가치 있다! 내가 너와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너에 대해 알아가고 싶어.”
작가에게 쓸모없음은 아직 발현되지 못한 잠재력이다.
정현 작가가 원래의 자리에서 뜯겨 갈 곳을 잃은 폐침목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다. 사실 그 이전부터 그것의 존재를 인식했고 작업 재료로도 썩 마음에 들었지만, 오랜 세월 기차의 무게를 오롯이 받아내느라 새겨진 자국들이 주는 숭고한 질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폐침목이 견딘 인고의 시간과 그 시간이 가진 에너지를 작가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 데는 꼬박 10년이 걸렸다. 한 평론가가 그의 작업 스타일을 두고 ‘아이디어가 아닌 내장으로 작업한다’고 표현한 것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더는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 폐침목의 또 다른 쓸모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기차에 대한 추억 덕분이었다. 그가 나고 자란 인천에는 장갑차, 탱크 등 군용 물자를 실은 화물 기차가 자주 경적을 울렸다. 전쟁이 막을 내린 60년대였지만, 그것들과 마주할 때마다 아이였던 그는 여전히 전쟁의 공포를 느꼈다. 그러한 시대적 공포와 맞서야 했기 때문일까. 3m에 달하는 그의 폐침목 작품들은 고요히 침묵하면서도 물러섬 없는 단단한 느낌을 자아냈다.
새로운 쓸모를 불어넣는 작업

처음 폐침목을 마주했을 땐 나무를 많이 쪼개는 방식의 작업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 침목이 가진 이야기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겉보기엔 하찮은 폐침목이 가지고 있는 좋은 본질 즉, 자갈에 눌리고 기차의 무게에 눌린 자국들을 그대로 살리면서 가장 단순한 형태를 구현하는 쪽으로 작업의 방향을 틀었다. 좌우에 다리를 세우고 가운데 머리 조각을 끼워 넣었다. 눈에 띄는 것은 보통 인간의 그것보다 확연히 긴 머리의 길이다. 정현 작가에게 인간의 머리는 에너지가 뻗어 나가는 중심이고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업 과정은 고되지만 그가 작업에 담아내는 이야기에 비해 단순하다. 쌓여 있는 폐침목 중 무르지 않아 작업이 가능한 것을 솎아낸 후엔 정해진 길이와 모양에 맞춰 다리와 머리 형상을 잘라낸다. 이후 진행되는 체인톱 드로잉은 폐침목 작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복장과 장비를 갖춘 정현 작가가 주황색 체인톱을 움직이자 검붉은 톱밥이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사방으로 튀었다.
톱과 나무가 맞닿을 때는 꼭 김 굽는 것과 같은 냄새가 났다. 그는 정해진 패턴 없이 그때그때 마주하는 폐침목의 느낌과 특성에 따라 체인톱을 움직였다. 그렇기에 폐침목 작품들은 멀리서 보기엔 모두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는 폐침목 작품 50개를 아우르는 하나의 이야기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어쩌면 이런 과정을 거치는 중에 폐침목 작품 각각의 이야기가 생겨났을지도 모르겠다. 겨우내 작업한 50개의 폐침목 작품들은 프랑스로 가는 배 위에 올라타 있다. 그것들은 파리에 도착해 루이 14세가 베르사유로 궁정을 옮기기 전까지 거주했던 왕궁인 팔레 루아얄의 정원에 약 3개월 동안 전시될 예정이다. 그곳에 세워진 작품들은 봄 산책을 나온 프랑스 사람들에게 왕궁에 닿기까지의 이야기를 더해, 이곳에서와는 또 다른 감성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사람의 이야기를 하다
폐침목 작업은 기존에 그가 해왔던 인체 작업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주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작가 자신이 사람이기에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처음엔 사실적인 표현에 중점을 둔 작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닌 표현된 사실 자체만 보였다. 자신의 속에 있는 진짜 얘기를 하기 위해 육체를 변형하고 왜곡했다. 여기에는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유학했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그를 가르쳤던 선생은 수업시간마다 날카로운 비수를 꽂았다.

“예술가는 자신의 시적 감상이나 철학을 작품에 드러내야 하는데 네 작품에서는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사실에 집중하는 것과 예술은 다른 문제다. 너는 예술가가 아니라 장인 같다”는 게 이유였다. 덕분에 프랑스에 있던 6년은 그가 30년간 가지고 있던 경직된 사고, 잘못된 정서적 습관 등을 깨는 고된 시간이 됐다. 재료를 깨부수고 깎아내는 동시에 재료의 속성과 깊이 교감하며 이야기를 심는 그의 작업 뒤엔 이와 같은 자신과의 사투가 숨어 있었다.
그가 작업에 심는 자신의 이야기는 시대적 외로움이다. 성장기였던 6~70년대와 청년의 피가 들끓었던 80년대라는 시대는 국민을 억압하고 몰아세우기 일쑤였다.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국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던 시절이었고, 그렇기에 외로웠다. 이러한 그의 이야기와 만난 폐침목들은 단단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처연한 분위기를 갖게 됐다.
현재 모교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조각과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한 그는 학생들에게도 늘 선생을 닮으려 하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라고 강조한다. 자기 시대의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예술이라는 그의 지론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은 미술계에서 인지도도 얻었고 교수라는 직함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렇게 되기 이전에 그는 단지 배고픈 예술가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으니 그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책에 나오는 수많은 갈매기는 먹이를 찾는 것 외에 다른 것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조나단이라는 갈매기는 달랐죠. 조나단은 나는 것 자체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행해요. 더 높이, 더 멀리 나는 것, 때로는 정지하거나 어떤 바람이 불어도 정지할 수 있는 비행술 같은 것들을요. 그러한 모든 것들이 예술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저는 조나단이라는 갈매기가 가진 순수성에 매료된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순수에 계속 끌려갔던 거죠.”
그렇게 그는 조각 작업의 깊이를 더해가면서 아스팔트 콘크리트, 침목, 파쇄공 등 매번 가장 흔하면서도 새로운 재료로 오늘도 계속해서 대중에게 말을 걸고 있다.
정현|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고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 조소과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조소과 교수로 재직 했다. 다수의 개인전과 기획전에 참여했으며, 조형적 표현의 대상으로서의 인체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 세계를 드러내는 조각으로서의 인체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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