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두_ 가면의 세상에 사랑이라는 이유로

육상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4-05-29 14: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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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을 위해 장식적 삶을 살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구속을 요구하는 과잉 사랑 시대에 당사자로서의 삶과 타인을 의식하는 부조리한 삶에는 어떤 괴리감이 존재하는 걸까. 도자, 유리, 금속으로 성형한 크리놀린 드레스의 인형과 반인-반인형의 황금 망원경으로 장식의 허세와 사랑의 폐해를 만방에 알리고자 하는 젊은 유리작가의 날선 고백이 선명하게 들리는 까닭이 궁금하다.


유리작가 김남두는 세상과 맞닿아 있는 두 개의 서사를 구축하는 작가로 해학과 슬픔이 공존하는 세계를 조형하는 작가다. 장식적인 과시에 몰입해 있는 현대사회와 현대인을 비판하는 ‘Present’ 시리즈,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의해 자기희생을 강요받는 자녀의 삶을 묘사한 ‘Golden Binoculars’ 시리즈가 그의 예술 축이다.

 

김남두 작. 유리와 도자로 제작한 ‘Present’ 시리즈


유리와 도자로 제작한 ‘Present’ 시리즈는 화려한 장식을 옷에 새긴 크리놀린 드레스 인형이 세상을 풍자한다. 타인의 시선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신의 올바른 모습을 과감히 삭제해버리는 이중인격의 모순성을 크리놀린 드레스에 입혔다. 작가는 화려하고 섬세한 작업으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비범함이 있다. 자기 자신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숨겨 둔 채 관객의 시선을 인형의 머리에서부터 드레스 끝선에 머물게 한 뒤 서서히 문제의식을 노출한다.

크리놀린 드레스 표면에 위치한 수많은 장식의 톱니바퀴는 언뜻 같아 보이지만 크기, 모양이 다르고 기능적이지도 않다. 이는 외부에 노출되는 형식 즉, ‘보이는 것’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의 허세를 견제하기 위한 제스처로 결국, 의도를 위해 장식과 형식에 치중해야 하는 모순에 대해 작가의 고민이 서려 있다.

 

김남두 작. 도자와 동으로 제작한 ‘Golden Binoculars’ 시리즈

도자와 동으로 제작한 ‘Golden Binoculars’ 시리즈는 망원경의 답답하고 한정된 세계의 부조리를 비평하고 있다. 황금 망원경의 오목과 볼록 렌즈에는 부모의 억압적 사랑과 아이의 슬픈 미래가 공존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자기 자신의 꿈을 매단 헐렁대는 큰 옷을 입히고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무거운 황금 망원경을 두 손에 들게 했다. 하지만 부모 역시 현대 사회의 이기적 현상에 종속된 채 타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슬픈 자화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망원경에 얼굴을 갖다 대는 순간, 적나라한 피부 세포의 이글거림에 화들짝 놀란다. 자신의 얼굴이 미세한 세계와 만났을 때 치명적 치부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작가의 이중적 의도가 숨어 있다.

사랑의 본질은 다양성으로 충만한 세계를 이루는 힘이다. 하지만 부모의 일방적 사랑은 자기 에고의 실현이라는 목표 아래 자신과 아이 모두가 물질의 대상을 추락한 채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황금 망원경은 사랑의 보편적 진실을 직시하기보다 사적 욕망의 편의성을 소비하는 현대인의 오늘을 상징한다.

‘Wonderer’ 작가 김남두는 유리, 도자, 금속이 지닌 물성을 분석하고 그 위에 현대 사회의 심각한 문제점을 녹이고 입혀 실재와 허구라는 두 세계가 충돌하는 세상을 우화적으로 조형했다. 가면적 삶과 오염된 사랑이 사라지지 않는 한, ‘Present’와 ‘Golden Binoculars’ 시리즈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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