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와 질감에 있어 뚜렷해진 작업 보여줘
시적 풍경을 고스란히 전하는 공간 연출
아트스페이스3 갤러리, 2025.03.18(화) - 04.12(토)까지 열려
한국 조각의 대표적 작가 나점수의 개인전 《無名 下》가 오는 3월 18일부터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신작 전시에서 나점수는 사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사유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그것은 의식이나 인식보다 이미 먼저 존재하는, 의미화되기 이전의 형태에 대한 고찰이다. 그의 작업은 선험적 형태의 존재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그 흔적을 찾아 헤매는 데서 작업의 이유를 얻는다.
전시 제목의 “무명(無名)”은 어떤 사물이나 존재의 의미가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흐르는 세계의 이치와 순리에 순응하는 나점수의 작업 방식이고. “하심(下心)”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작가의 태도를 의미한다.
“無名-사유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한다. 下-언어의 경계 넘어 소리들이 있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사유하기 위해 느리게 머무르고 오래 사유한다. 動-조용히 움직이고 천천히 사유한다. 흩어지면서 드러나고 드러나면서 흩어진다.”라고 말한 작가의 설명에서 전시의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나점수는 재현으로 이미지나 서사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이야기가 유래한 원형과 이미지가 유래한 근원을 찾아 나갔다. 그의 작업은 외관상 자연을 소재로 하는 것 같지만, 자연은 우리가 경험하기 이전부터 그러한 존재의 꼴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험적인 자연의 형태를 찾아내고자 한다.
나점수는 종이, 액자, 숯 등의 소재를 작가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고, 나무의 생애 주기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물질이 스스로 존재하고 순환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거나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으로 하심의 발로를 발견하고자 했다. 즉, 그의 작업은 자연의 형태를 빌려 자연 속에 숨은 자신을 참 모습을 찾는 작가로서의 수행적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나무에서 이미 존재하는 틈새를 살려 그 주변을 깎아내 조각하고, 큰 사이즈의 통나무를 일일이 톱으로 썰어 나무의 살을 발라내는, 노동 집약적 생산성으로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작업을 견지한다. 이처럼 틈새를 살리는 조각 작업은 자기를 발견하는 수행의 도구로써, 작가는 조각 그 자체보다는 조각에 대한 태도를 제안한다.
고충환 평론가는 전시 서문에서 “서사 그러므로 이야기로 치면 이야기들의 이야기, 이야기가 유래한 원형적 이야기를 의미할 것이다. 형태 그러므로 이미지로 치면 이미지들의 이미지, 이미지가 유래한 원형적 이미지를 의미할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작가의 작업은 외관상 자연을 소재로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자연을 빌려 자연 속에 숨은 자기(원형적인 자기, 자기_타자, 혹은 불교에서의 진아)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어느 정도 수행적인 면이 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작업을 선보인다. 기존의 나무를 활용한 정적인 작품과 천천히 느리게 움직이는 키네틱 작업이다. 키네틱 작업은 의도적으로 로우-테크(low-tech)를 활용해 느리게 머무는 방식을 택했다. 관객에게 조용히 움직이고 천천히 사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존에는 사유할 수 없던 것들을 사유하는 시공간을 제공한다.
전시 《無名 下》는 조각가 나점수가 그동안 보여준 일련의 철학적 사유가, 깊이와 질감에 있어 한층 뚜렷하면서 그 깊이 드러내는 전환적 개인전임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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