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질감에 대한 존중... 사무소 효자동 대표 서승모 건축가

지근화 기자 / 기사승인 : 2023-01-12 13: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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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보면서 이해하기보다 만지며 느끼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건축 언어를 공간 속에 논리적으로 풀어놓는 대신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의 미세한 결을 공간 속에 살려낸다. 손의 감각과 경험의 총화가 맛을 결정하는 요리에 건축을 곧잘 비교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에게 건축은 촉각의 언어이다. 그는 서승모다.

이렇게 말하면 단순한 인상 비평이 되겠지만, 어쨌거나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그의 건축사사무소 ‘사무소효자동’은 무척 깔끔했다. 설계 모형이나 도면이 없었다면 북카페로 착각할 수도 있을 만한 곳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공간의 주인공은 “아직 여건이 되지 않아 최소한의 수준에서 천장만 정리한 상태”라고 말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주변 환경이 정돈돼 있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껄끄러움’을 느끼는 성격인 모양이다. ‘혹시 까다로운 사람인가?’ 생각하며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려는 찰나 그게 그의 저력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 면모에서 감각적인 디테일이 나오는 것일 테니 말이다.

서승모 대표와 만나기 전, 사무소효자동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아니, 이상한 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지금 말하는 점은 어떤 측면(aspect)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진짜 점(dot)을 말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기 그지없는, 그래서 더 미로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홈페이지에는 각 메뉴마다 왼쪽 하단에 점이 하나씩 콕 박혀 있었다. 그 점들 속에는 울퉁불퉁한 돌바닥, 뭉그러진 불빛, 자갈이 박혀 있는 모래, 구겨진 한지 모양의 오브제 등이 숨어 있었다. 이들 사물의 공통분모는 질감이다. 이것이야말로 서승모 대표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키워드가 아닌가. 참 재치 가득한 장난이다.  

 

 

 


- 우선 창성동 한옥 이야기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한옥 리노베이션으로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이유가 뭘까요?

아시다시피 일본에 있다가 귀국해서 시작한 제 첫 작업이 창성동 한옥이었어요. 제가 건축주이자 동시에 건축가였던 셈이죠. 처음에는 ‘ㄷ’자 구조로 개조해 건축스튜디오 겸 살림집으로 이용하다가 사무소를 따로 내면서 다시 ‘ㅁ’자로 고쳐 살림집으로만 쓰고 있어요. 리노베이션(renovation)은 리-이노베이션(re-innovation)이라고들 하잖아요.

흔한 말이지만 저는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공간을 장식적으로 풀어가는 것 쉬운 해법이죠. 저는 공간을 구조와 틀로 해석하는 데 재미를 느껴요. 아마 그런 점이 어필했던 게 아닐까 싶은데요. 당시에는 한옥을 개조한 사례가 희귀하기도 했고요.

(창성동 한옥은 서까래와 들보를 통해 공간을 무형의 파티션으로 구분하는 등 ‘틀’과 ‘선’으로 연속적 분절을 만들어낸 점이 이채로웠다.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SJ하우스’라는 프로젝트명이 붙은 이 작업은 말마따나 한옥 리모델링의 혁신적 사례였기에 그렇게 큰 관심을 받았는지 모른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다. 서승모 대표의 ‘건축 총서’에서 최초의 책으로 기록된 이 작업은 향후 작업에 대한 복선이자, 그의 건축적 태도를 집약한 일종의 도상이 아닐까.)

- 그럼 이제 추보식 구성(?)으로 여쭤볼게요. 이력을 보니 교토에서 태어났던데 혹시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셨나요?

아뇨, 그렇지는 않고요. 태어나서 바로 서울로 왔어요. 일본에 다시 간 건 대학원에 진학하면서구요. 사실 저는 건축학도가 되려던 생각은 없었어요.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미대에 진학할까 했지만, 어머니께서 건축학과에 원서를 접수해 버리셨죠.

그래서 처음에는 데면데면했는데 설계 수업이 참 재미있더라고요. 주어진 주제를 내 식대로 해석하고 풀어내는 게 체질에 맞았어요. 그런 점에서 미국이 아니라 일본 유학을 선택한 것도 잘한 일이었죠. 여기는 전체적으로 밸런스를 맞춰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건 열심히 하고 모르는 건 몰라도 되는 분위기였거든요.


 

 

 

또 하나. 대학원에서 첫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다들 제 설명을 이해 못하고, 재미도 없어 하는 거예요. 제가 그때까지 개념적으로만 건축을 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곳에서는 실증적 경험을 중시했고, 우리나라처럼 반복 학습으로 계속 인풋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느낌과 경험을 아웃풋 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그때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 서 대표님은 섬세하고 디테일에 강하기로 유명하던데 혹시 일본에서 받았던 교육의 영향도 있을까요?

네, 그런 부분도 있기는 한데요, 아마 원체험이 더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참 자유분방하고 취향이 확고한 아이였어요. 속옷하고 양말까지 다리미로 말끔히 다려 입었을 정도니까요. 물론 제가 요구한 건 아니고 어머니가 항상 그렇게 해주신 거지만, 그 경험이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다림질한 옷은 입었을 때 새 옷을 입은 것처럼 느낌이 아주 좋은데, 그건 삶의 형식과 질감과 디테일에 관한 문제라 할 수 있죠.

(글쎄, 다림질한 옷을 입어본 적이 별로 없어 그게 어떤 느낌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유추해 보자면 이런 게 아닐까. 옷과 내가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한 무연(無緣)의 밋밋함이 아닌, 적당히 긴장감이 흐르는 관계 속에 끊임없이 즐거운 시선이 개입되는 상태….)

- 2004년 귀국해 알 디에이 유닛(r DA Unit)을 차리고, 다시 2010년에 사무소효자동을 오픈하셨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두 축의 변별성은 ‘스타트’에요. 알 디에이 유닛 때는 건축 계획을 했지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구현할 수가 없었고, 본격적으로 건축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에 사무소효자동을 만든 거예요. 건축적 태도면에서 달라진 건 없습니다.

제가 알 디에이 유닛을 차렸을 때가 서른네 살이었어요.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에 독립을 하는 게 보통이니 저는 무척 빠른 편이었죠. 게다가 소위 말하는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독립군 같은 건축가인 셈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때가 딱 적당한 나이였다고 생각해요.

저는 굳이 건축과 실내 디자인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았고 그래서 전시, 인테리어 디자인, 프로젝트 등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여러 시도를 했어요. 스케일보다 디테일에 집중할 수 있는 작업을 많이 한 편인데, 그런 경험의 축적이 저에게 자산이 되었어요. 저는 아무개류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지도 않았고, 또 남이 한 설계를 받아서 한 적도 없죠. 처음부터 제가 생각한 걸 그대로 구현하면서 시작했어요. 바로 그 점이 제 변별성의 단초가 될 거라 확신합니다.

 


- 건축적 방향이랄까, 앞으로 어떤 작업에 집중하고 싶으세요?

저는 ‘촉각적 공간’을 추구해요. 다시 말하면 공간의 질감을 살리는 데 무게중심을 둔다는 얘긴데요, 그건 삶의 질과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죠. 결국 좋은 집이란 보기 좋은 미관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의 행복이 좌우하는 거니까요.

질감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저는 진성 재료를 좋아해요. 페인트나 플라스틱은 싸늘한 느낌을 주잖아요. 저는 나무나 벽돌처럼 온기가 있고 물성의 깊이를 체험할 수 있는 재료가 좋아요. 특히 요즘엔 나무에 집중하고 있어요. 월넛으로 테이블 짜고, 육송으로 마루 깔고, 티크로 사방탁자를 만들곤 하죠.

저는 건축을 레시피에 자주 비유하는데요, 레시피가 있다고 음식이 맛있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레시피는 그저 표준일 뿐이죠. 소금을 얼마나 넣을 건지, 설탕을 넣을 건지 말 건지는 전적으로 감각과 경험의 문제에요. 건축도 마찬가집니다.

- 서승모는 경원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예술대학에서 건축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2년 동안 도쿄예술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2004년 귀국해 알 디에이 유닛을 만들었다. 2010년 건축사사무소 ‘사무소효자동’을 설립했으며, 현재도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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