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와 건축가의 의기투합으로 지은 환경주택
목재의 우수성을 활용한 자연주택
잉글랜드 남동쪽에 있는 던지니스는 사실 마을이라기보다는 집들이 드문드문 세워져 있는 곳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 오랜 세월동안 어부들만, 그것도 임시 건물 비슷한 데 살던 곳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거대한 원자력발전소 두 기가 마을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그중 한 기는 지금은 폐쇄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보헤미안 무리들을 매혹시켰는데 특히 후기 아방가르드 영화감독인 데렉 자먼이 필두가 되었다. 이곳에 살기로 한 그는 1986년에 작은 집을 한 채 인계받고 정원에는 조각상들을 세워 일부러 황폐한 모습으로 꾸몄는데 그가 살던 곳은 그의 살아생전은 물론이고 사후에도 순례지 같은 곳이 되었다. 이 구역에는 특별한 동식물군이 자생하여 특별 과학관심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환경을 응용한 건축물
사이먼 콘더 어소시에이츠의 건축가 사이먼 콘더는 이 범상치 않은 지역에 집을 한 채도 아닌 두 채나 설계했다. 첫 번째 집은 합판으로 어부의 오두막을 증축한 것으로, 내부는 노출되어 있고 외장은 검정 고무로 되어 있다. 이 집의 상징물로 집밖에 세워져 있는 은색 에어스트림 트레일러에는 여분의 침실이 마련되어 있다.
두 번째 집의 기원은 좀 더 기발하다.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엘 레이’라 불리던 이 건물은, 건축가 콘더가 개입하기 전에는 낡은 객차에 빈약한 달개지붕만 겨우 달려 있는 형태였다. 이 객차들은 원래 철도회사 직원들의 은퇴 선물로 주어지던 것들이었는데 해안가의 이런 곳들을 휴가용 별장으로 쓰는 경우는 다른 지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웨일즈의 카디건 근처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객차라는 것이 던지니스 마을의 임시적인 속성과 잘 어울리는 감이 있긴 하지만, 새로운 소유주들은 그것들이 크기도 너무 작을뿐더러 환경에도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대체건물 대신 울타리를 설계한 콘더에게, 객차를 그대로 두면서 객차가 건물의 핵심에 놓이는 새로운 건물을 지어달라고 의뢰했다. 다섯 채의 건물 중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고 다소 임시적인 외관을 하고 있으며 반도의 끝부분 및 발전소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한 채인 엘 레이는 종 모양으로 짓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북쪽 면에는 작은 입구만 나 있는 반면, 남쪽 면은 광대한 풍경이 보이는 데크를 향해 열려 있다. 던지니스의 악명 높은 바람이 너무 극심하게 몰아쳐서 남쪽 데크에 나갈 수 없다 하더라도 집의 울타리 내부에 마련한 보호용 안뜰이 두 개 있다.
건축주의 까다로운 환경적 요구사항들
이 지역의 다른 모든 건물들이 그렇듯 엘 레이도 단층 건물이다. 살짝 기울어진 데크를 따라 앞문으로 들어가면 양쪽에 침실이 있는 복도가 이어진다. 두 안뜰 사이에 위치한 수수한 방이 화장실이고 그 너머에 남향의 생활공간으로 이어지는 홀이 있는데, 보존된 객차가 이곳에 포함되어 있다. 이 객차 안에 주방이 있다. 지붕은 남쪽을 향해 부드럽게 경사져 있어 바깥 풍경이 잘 보이게끔 해준다.
집은 보강 콘크리트 뗏목에 세워졌다. 건물의 구조물은 경량의 Kerto사 합판마루 들보로 구성되어 있는데, 목재 폐기물로 만든 편편한 재료로 안과 밖을 받쳤다. 모든 외장과 마루는 FSC(산림경영인증 Forest Stewardship Council)에서 인증 받은 남미산 하드우드 이타우바(Itauba. 구조재, 외장재로 많이 쓰임)를 깔았다.
내구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목재는 처음에는 올리브 옐로우 색이었다가 빛이 바래면 짙은 체스트넛 브라운 색으로 변한다. 이 목재는 19mm 두께로 비막용 수직 판재로 사용되었다. 외장의 색상 변화는 눈을 즐겁게 해준다.
건축주의 요구조건 중 하나는 새 건물의 환경적 기능이 이전보다 훨씬 더 나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건물은 고단열처리로 설계되었으며 겨울에는 태양열을 이용할 수 있다. 남쪽 입구의 캐노피는 여름에 그늘을 제공하고 뜨거운 태양빛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고단열처리는 재활용 신문지를 활용한 것이다. 외부 통창은 에너지 절약형 유리인 '로이 E'에 열충격을 대비하기 위해 알루미늄 슬라이딩 도어를 결합했다.
건물 내부는 FSC에서 인증 받은 자작나무 합판으로 이루어져 있어 따스하고 깔끔한 인상을 주는데 이는 거칠어 보이는 외관과는 대조적이고 보존된 객차의 투박한 속성과도 대비를 이룬다. 고단열처리를 해서 집은 따뜻하지만, 아주 추운 날을 대비해 침실과 욕실 바닥에 풍력발전으로 얻는 전기로 난방 장치를 했다. 또한 거실 공간에는 나무를 태우는 난로가 있는데 이는 해변에 밀려오는 유목을 활용하기 위함이다.
무작위로 세워진 EL ray 건축물들의 조화성
외장은 지붕에 이르러 곡선으로 세워져 천장이 살짝 라운딩 데크가 된다. 지붕에서는 보호 난간이 없다. 지대가 평평해서 경치를 보기 위해 높이 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둥그스름한 건물 형태는 교외든 도시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기 어려울 법하지만, 던지니스 지역은 미학적인 측면에서 매우 이례적인 곳이다.
이곳을 더욱 매력적이게 하는 것은 마치 수선된 듯 보이는 건물의 무작위적 속성이다. 물론 엘 레이는 철저한 심사숙고와 기술의 산물이지만, 주변 환경과 충분히 어우러질 만큼 비규격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콘더는 마치 아무 노력도 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이는 사실 쉽지 않은 성과다.
마감을 과하게 했더라면 이 지역의 환경에서 뜬금없이 ‘과하게 차려입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치 고난도로 연마한 오페라 성악가가 재즈나 포크 음악에 요구되는 지유로운 형식을 이해하지 못해 안 어울리는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바다의 거친 환경에 견뎌내는 목재
전부는 아니지만 콘더의 이제까지의 대부분의 작품은 목재 작업이었으며 그는 목재 부문의 건축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누군가는 엘 레이를 파도에 닳아 모서리가 둥글어진 유목 조각에 비유할 지도 모른다.
해변에 목재로 ‘딜 피어 카페’를 설계한 건축가 Niall McLaughlin은 염분이 많은 해변 환경에서 목재와 다른 재료를 사용해 의미 있는 실험을 해보고는 이러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재료는 바로 목재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건축물 엘 레이는 기능과 미관 둘 다를 행복하게 만족시킨 성취물이다.
지붕만 두어 개 달려 있던 낡은 객차였을 때보다 환경적으로 훨씬 개선되었으면서도, 객차 자체뿐만 아니라 객차가 가진 특이한 매력도 보존하는 효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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