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디자이너 배세화... 예술가와 나무, 그들만의 대화법

김수정 기자 / 기사승인 : 2022-10-30 23: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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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배세화의 작품들은 예술가구라 부른다. 자연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나무 형태의 순수성을 그대로 드러내 활용하는 조지 나카시마 같은 사람들과 달리, 배세화는 원하는 디자인을 뽑아내기 위해 과감히 목재를 변형하는 가구디자이너이다.

▲ 'Steam 12', 2010, Walnut 170x68x64cm

그간의 커리어가 놀랍다. 가구디자이너로서 활동을 시작한 건 언제였고 어떤 활동을 했나.

대학교 4학년 때 아는 형이랑 둘이서 무작정 코엑스에서 열리는 리빙페어 전시를 나갔어요. 그게 첫 전시였던 거 같아요.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서 나갔다가 실패의 쓴맛을 보고 깔끔하게 돌아왔죠. 반응 자체는 좋았지만 막상 판매가 하나도 안 됐어요. 전시 끝나고 다시 봤더니 왜 이렇게 재미가 없던지. 나중에 생각해 보니 가구 중엔 한 번 보고 즐길 수 있는 가구가 있고, 계속해서 생각나는 가구가 있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후자 쪽을 더 강하게 깊게 파고들다 보니까 현재의 작품과 같은 형태가 나오게 됐습니다.

작품들이 가구인데도 실용성보다 예술적 성격이 강해 보인다.
아니에요. 아주 실용적이에요. 가구니까 어떤 걸 만들던지 하나의 기능은 지니게 되잖아요. 전 주로 벤치를 만들지만 벤치에서 필요한 요소들, 이를테면 각도나 앉는 부분이나 그런 것들을 계속 수정하며 만들기 때문에 제 작품도 그런 기본에 충실해요.

스팀 시리즈 1번 같은 작품을 의자로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해봤는데.
그건 첫 작품이라 기능보다는 개념에 충실하긴 하지만, 그래도 앉고자 한다면 어디든 앉을 수 있어요. 스팀 시리즈의 1번 같은 경우, 가운데 볼록한 부분은 태반 속의 태아를 표현한 거예요. 시간이 흐른 뒤 이야기를 좀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해서 10번은 태아가 태어난 다음에 그 아기를 눕히기 위해 가운데가 파져 있고, 지금 작업 중인 20번은 그 아기가 자라서 부모와 눈높이를 맞추고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보시면 좌판 높낮이가 달라요. 높은 쪽에 아이가 앉고 낮은 쪽에 부모가 앉아서 같은 눈높이로 서로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 이야기는 급하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천천히 풀어나가려고요. 생각이 안 나면 10번 건너뛰고 나중에 만들 수도 있고요.
▲ 'Steam 11', 2010, Walnut, 120x66x60cm

 


- 배세화의 가구 하면 유기적인 곡선, 한국적인 아름다움, 이런 것들을 먼저 떠올린다. 우리나라 산의 능선 같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사실 배 작가님은 자연보다 도형을 기본으로 디자인을 떠올리신다고 들었다.
제 작품을 보면 사람들은 곡선을 먼저 보는데 사실은 반대에요. 직선을 위해 곡선이 태어났다고 보면 돼요. 만약 하나의 곡선이 있는데 직선이 들어간다고 하면 그 직선이 위주가 되고, 따라서 직선을 살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곡선의 형태가 달라지게 돼요. 그리고 매스(mass) 감을 중시해요. 물리적인 무게가 아니라 그 작품 자체의 무게, 굉장히 뭔가 많이 응축되어 있는 느낌… 저는 뭘 쳐다볼 때 동그라미, 직사각형, 삼각형 이렇게 사물을 구획하는 걸 좀 좋아해요. 단순한 형태를 좋아하고, 도형을 좋아하는 게 점점 강해져서 지금에 이르게 된 거 같아요.

현재 배세화의 가구는 외국의 페어나 전시회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페어가 개최되는 첫날 작품이 모두 솔드 아웃될 정도. 구매자들 역시 거의 외국의 개인 컬렉터들이다. 외국 고객들이 그의 작품에서 느끼는 건 동양적인 아름다움이라 한다. 그 미의 원천은 형태, 크기, 덩어리감뿐만 아니라 소재로 쓰는 수종의 차분하고 진중한 색감이기도 하다.
 

▲ 'Steam 20', 2011, Walnut, 266x74x73cm


- 작품들이 다 월넛으로 만들어졌는데 월넛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
제가 추구하는 느낌이 좀 파묻히고 무겁고 중후한 느낌인데 월넛의 검은 빛깔이 그걸 가장 잘 표현하는 거 같아요. 또, 스팀 벤딩 공법이 가능한 수종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밝은 나무 계열이라면 애쉬(ash)나 오크가 있고 어두운 나무 중에는 월넛이 가장 괜찮다고 봐요.

- 스팀 벤딩 공법 얘기가 나왔는데, 증기로 목재를 부드럽게 만들어 휘는 공법이다. 그건 처음에 어떻게 쓰게 된 건가.
스팀 시리즈 1호 중에 가운데 볼록하게 된 부분 있잖아요. 그걸 구현시키려고 그 공법을 썼어요. 그냥 덩어리로 깎으면 너무 무거운 느낌이 날 것 같아 싫었죠. 대신 스팀 벤딩이란 걸 한번 써봤는데 그게 해외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그쪽으로 좀 더 해봐도 되겠다, 그러다가 지금 여기까지 왔어요. 하지만 공법 자체에 구애받는 건 아니고, 그 점에 관해선 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 'Steam 18', 2011, Walnut, 286x105x109cm


그는 공구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도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현재 그의 가구를 만들었을 거란 짐작이 충분히 들었다.

- 이제 유명해진 작가 배세화를 롤 모델로 삼는 후배들이 많이 있을 거 같다. 그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제가 따로 드릴 말씀은 없어요. 디자인에 정답도 없는 거고요. 그냥 자기가 재미있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항상 그래요.

- 배세화에게 있어 좋은 가구란.
가구는 가구니까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기능을 사용함에 있어 불편하지 않아야 하고, 하지만 그 기능을 사용하지 않을 때도 하나의 조형물로서 아름다운 가구. 어떻게 보면 ‘예술가구’죠. 그리고 십 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해요. 위치를 바꾸더라도 마치 십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마냥 어울려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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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 벤딩 공법이란?]
: 나무를 구부리는 벤딩 공법 중 하나. 목재를 증기로 쪄서 부드럽게 만든 뒤 틀에 맞춰 곡선 형태로 휘게 하는 방식.

· 벤딩의 역사
인류 역사에서 벤딩은 유서 깊은 공법이다. 가장 일반적인 용례는 선박, 술 저장통, 활 등이 있다. 이 기법을 이용해 아메리카대륙 원주민들은 눈 위에서 신는 신발, 썰매, 카누 따위를 만들었고, 중세 유럽에서는 장식판 등받이 의자(slat back chair)나 사다리형 등받이 의자(ladder back chair)를 만들었다. 현대에도 윈저 체어 같은 가구나 첼로, 바이올린 같은 악기 제작, 건축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 스팀 벤딩의 장점
열을 이용한 벤딩에는 젖은 목재에 직접 열을 가하는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나 두꺼운 목재일수록 직접 가열하면 건조 속도의 차이를 유발해 벤딩 시 손상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때는 스팀 벤딩이 더 적합하다. 스팀 벤딩은 스티머와 호스, 주전자만 있다면 집에서도 가능할 정도로 간단한 공법이다.

· 스팀 벤딩의 단점
구부릴 수 있는 각도가 한정되고 있고 특히 두꺼운 목재일수록 더하다. 또, 모든 수종이 스팀벤딩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스팀 벤딩은 목재의 내구성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공정이 끝난 뒤 스프링백(springback,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는 현상)이나 갈라짐과 같은 변형이 발생할 수 있다.

· 스팀 벤딩에 적합한 목재
갓 베어낸 나무 쪽이 수분 함유량이 높아 구부리기 쉽다. 수종으로는 느릅(elm), 팽나무(hackberry), 오크(oak), 너도밤나무(beech), 물푸레나무(ash), 히코리(hickory), 호두나무(walnut)가 벤딩에 적합하다. 열대나무의 경우 고무나무나 티크(teak)가 비교적 구부리기 쉽다.

· 준비물
베니어판이나 PVC파이프로 만들어진 스티머, 보일러(증기 또는 열 생성기), 온도계, 호스.

· 방법
1. 스티머에 목재를 넣는다. 스티머는 증기를 잡아둘 수 있도록 견고해야 하고, 동시에 대류현상이 일어날 수 있게 공기구멍이 있어야 한다. 또한 증기가 폭발하지 않게 뚜껑이나 여닫이가 있어야 한다.
2. 스티머와 호스로 연결된 보일러로 물을 끓여 스티머 안에서 증기가 순환되도록 한다. 뚜껑이나 여닫이 쪽에 온도계를 달아 내부 온도를 체크한다.
3. 적당한 시간과 온도로 쪄낸다. 성공적인 스팀벤딩의 열쇠는 공정 후 변형이 오지 않도록 소재와 목재 두께를 고려해 가장 알맞은 시간과 온도를 찾아내는 것이다.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목재 1인치 당 한 시간, 온도는 82~105℃이다.
4. 목재를 꺼낼 때는 화상을 예방하기 위해 오븐 장갑같이 두꺼운 장갑을 끼도록 한다.
5. 즉시 포머(former, 틀)에 클램프로 고정시킨다. 목재의 한쪽 끝부터 반대 끝으로 천천히 맞춰주되 이 과정은 30초 이내의 짧은 시간에 끝내야 한다. 또한 틀에서 빼냈을 때 스프링백을 고려해 포머는 자신이 원하는 각도보다 더욱 휘어져 있어야 한다.

6. 두께와 주변 습도를 고려하여 하루 이상 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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