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영 조각, '수행: 기둥(Practice: Column)'

편집부 / 기사승인 : 2026-09-21 18: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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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은 수평의 반복을 통해 수직으로 응집된 형태다.

작업은 정체를 알 수 없이 내면을 흔들던 모호한 감각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 흙가래를 반복해 쌓아 올리는 수행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은 동일한 행위를 기계적으로 되풀이해 스스로를 단순하고 묵직한 질서 안에 붙들어두려는 일종의 과잉 수행이다.

흙가래를 쌓는 과정에는 손자국과 요철이 필연적으로 남고, 건조와 소성을 거치며 그 흔적은 다시 드러난다. 그 위에 자를 대고 반듯한 세로선을 그어보지만, 흙의 수축과 뒤틀림 앞에서 그 선들 역시 끝내 휘어진다. 정연함을 향한 반복이 거듭될수록 오히려 빗나감의 흔적만 표면에 쌓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 모호한 감각이 단순한 불안정이 아니라 기억이 내면에서 움직이는 상태임을, 그리고 그 감각의 소리는 결코 제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복 수행은 그것을 멈추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거듭될수록 움직임을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로써 물음은 나의 내면의 문제를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 인간은 내면의 흔들림을 완전히 제거함으로 정연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지울 수 없는 흔들림과 미완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표면의 요철과 휘어진 선은 반듯함을 향한 실패의 흔적이자,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내면의 불완전함이 물질 위로 드러난 형상이다. 흰색 테라 시질라타를 바르고 닦아내어 돌출된 곳은 검게, 들어간 곳은 하얗게 남긴 작업의 마지막 과정은 이 빗나감을 더욱 선명하게 시각화한다.

결국 이 작업이 드러내는 것은 인간 내면의 흔들림이 소거될 수 없다는 것, 즉 인간은 매끄럽고 완결된 질서로 환원될 수 없는 '완전한 불완전'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기둥 역시 하나의 곧은 중심축이 아니라 여러 블록이 조금씩 어긋난 채 서로를 지지하며 이루어진 구조를 갖는다.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함께 하나의 몸체를 이루는 이 방식은 인간의 존재 역시 어긋남과 불균형을 품은 채 미완으로 성립된다는 점을 다시 은유한다. 하는 순간의 상태이다.

 

글 김자영(도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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