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평론] 깨진 도자의 귀환...복원된 명장과 돌아온 탕자의 미학

육상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3-05-28 12: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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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 전시 <복원된 명장>
명장: 지순탁, 서광수, 최인규, 박래헌, 유용철
복원: 정수희
장소: 메타포32 갤러리
일정: 2023.5.26 - 6.3

 

신은 흙을 구워 사람을 만들었다. 흙은 물질의 근원이고 생명의 기원이다. 흙은 돌의 입자가 1억 동안 흩어지고 다시 모여 지표를 이룬다. 그 땅에 삶이 융성하고 종(種)의 역사가 기록된다. 흙이 도자 사물로 탄생하기까지는 수십억 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부서지고 사라지고 다시 사물이 되는 과정은 생명의 소멸과 탄생의 순환과 같다.

우주는 카오스의 무질서와 코스모스의 질서가 상호작용을 거듭해 현재가 됐다. 지금도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는 카오스의 범람 속에서 코스모스가 싹트고 있을지 모른다. 하나의 사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혼돈과 무질서의 토대 위에서 결정체가 되는 자연의 질서를 벗어날 수 없다.

작은 풀잎 하나에도 자연의 섭리가 따르듯, 도자 한 점을 얻기까지 어느 도공의 지난한 경험과 기술의 혼돈, 수없이 깨어지고 깨야만 하는 불편한 진리가 스며들어 있다. 도자 파편이 누구에게는 폐기물이만, 도공에게는 잔해로 적층해 곁에 두어야 하는 난제의 소유물이다.

 



전시 「복원된 명장」은 영원히 사라질 뻔한 기록이자 잔해인 도자 조각을 복원함으로써 카오스를 벗어나 코스모스에 재진입 하는 엄숙한 제례의식이다. 수리가 현재적이라면, 복원은 사물의 기원을 톺아보는 역사의식이다. 전통 도자의 기술 보존과 계승에 평생을 바쳐온 5인의 도자 명장들은 긴 시간 지켜오다 막 곪아 터지기 직전의 상처를 도려내고 봉합하는 고통스런 수행을 감당해야 했다.

세상은 노출된 상흔을 보면 그 연유를 궁금해 한다. 그동안 도자 명장들은 그 상처가 혹 치부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기억의 파면에 묻어두었다. 하지만 사물의 역사는 온전한 것에 대한 인식 이전에 온전함에 이르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명장들의 가슴에 남아 슬픔과 아쉬움으로 존재한 불편한 진실을 ‘복원’의 이름으로 드러내는 용기를 응원해야 한다.

이번에 복원된 도자는 명장들에게 성경의 ‘돌아온 탕자’와 같다. 부모의 뜻에 순종하는 자식보다 품을 떠나 세상의 부적응자로 살아간 탕자에 애태웠던 시간을 치유한 아름다운 생명체이다. 명장들은 유물복원가의 시술을 통해 팔과 다리가 재생되고 심장에 숨을 불어 넣는 순간, 미려한 자태로 완성된 도자에 못지않은 떨림을 느꼈을 것이고 더불어 자신도 다시 태어나는 부활의 경이로운 체험을 간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각자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돌아온 탕자들은 재탄생의 미학을 고스란히 재생하고 있다. 돋아난 새 살 부위의 수술 흔적이 완연할수록 고난의 상처는 더욱 생생하다. 실종됐던 본래의 모습을 되새기는 각고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레종 테트르(raison d’être)의 사실 관계도 더욱 분명해진다.

「복원된 명장」은 사물의 탄생 이치를 통해 명장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의 퇴적층을 주시하면서 공예의 역사와 도리가 어떻게 삶과 조화하고 자리매김하는지를 공감하는 자리이다. 또한 온전한 사물로 태어나지 못하고 방기 된 채 통증의 시간을 수행한 깨진 도자의 미학을 확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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