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필과 잉크

칼럼 / 육상수 칼럼니스트 / 2021-08-24 11: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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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울 김용옥 선생은 지금도 원고지에 육필로 원고를 쓴다고 한다. 200자 원고지 수천 장에 기록하는 필기구는 파커, 라미 만년필이다.

만년필의 밥은 잉크다. 도올 선생은 원고를 쓰기 직전에 잉크병 뚜껑에 앞으로 집필할 글의 제목을 기록한 후, 만연필 튜브에 잉크를 가득 채우고 원고를 써내려간다. 잉크를 리필하면서 책 한 권이 완성되면 그의 책상에는 제목이 기록된 다수의 잉크병이 남는다. 도올 선생은 지금까지 쌓인 수백 개의 속이 마른 잉크병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공예의 정체성에 대해 이런저런 주의 주장이 여전하고, 나 또한 그에 대한 탁견이 부족해 우유부단했었는데, 도올 선생의 만년필.얘기를 접하면서 그 부분이 좀 더 선명해졌다.

대개의 만년필은 호사스런 디자인과 재료의 장식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팔리지만, 정작 일년에 잉크 한 병 소비하지 못한다.

100만년 전, 주먹도끼로 시작된 인류의 도구는 하루를 버티기 위해 찌르고, 켜고, 잘라야 하는 말 그대로 처절한 생존의 역사였다. 그 도구에 장식이 부여되기까지 다시 100만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정착 생활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를 맞이하면서 그 날카로운 가장자리는 무뎌졌고 형태는 곡선을 띤다. 이 마저도 청동기와 철기 시대를 거치면서 사라져갔다.

요즘 '공예'라는 언어는 도구의 치장이거나 사물의 개념을 장식하는 대체어로 안착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고급진 것이어도 기능이 부재하면 공예의 본질은 사라진다. 잉크가 말라버린 만년필은 어떤 수식어도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공예에 대한 정의가 분분한 것은 디자인 산업이 대체한 '도구의 자리'를 상실한 후의 공백 때문이다. 장신구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결국 사람의 몸을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어떤 의자도 자리할 수 없다면 의자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다. 감상의 대상물로 예술화하려면 순수미술과의 경계를 규명해야 한다.

손의 감각과 기능으로 만들어진 것에 앞서 손과 몸으로 부단히 쓰여지는 사물이 바로 공예의 속성이 아닐까 단정해본다.

도올 선생의 만년필이 엄청난 양의 잉크를 소비하는 시간과 그 시간을 지속하는 사용자의 태도 사에에 공예는 실존한다. 만년필의
장식과 조형미는 그 후에 언급해도 되는 형이하학의 개념이다.

결국, 빈 잉크병을 쌓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태도와 그에 상응하는 사물의 관계가 공예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리라 예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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