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쿠마 켄고(Kuma Kengo)가 제주에 이르러 처음 주목한 것은 제주 삼나무였다. 그가 독백처럼 책 끝머리에 남긴 문장 역시 “동네 뒷산에 가득한…”, 제주의 나무에 주목했으나 이 나무는 아쉽게도 미개발 상태로 남아있었기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는 평소 해외 강연을 통해 '환경부하'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좋은 집이란, 배려의 통찰이 담겼으며 환경적으로 건전해야 한다는 신념을, 그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자연스러운 건축이라는 표제에 담아 풀이했다.
“자연은 유토피아도 아니고, 꿈도 아니고, 각각의 장소에 부여된 고혹하고 구체적인 별칭이다. 어떤 특정한 장소에는 구체적인 자연만이 존재한다."
특정한 장소와 장소, 그리고 교류
제주의 편백과 삼나무 숲은 아트빌라스 프로젝트의 지향점을 자연으로 묶어주었다. 그러나 쿠마 켄고가 말하는 행복한 관계란 단순히 장소의 경관과 친숙해지자는 표상을 따르는 것만은 아니다. 경관과 어울리는 건축물은 서귀포 권역만 해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장소와 뿌리를 내리게 하고, 장소와 접속하기 위해서는 건축을 표상으로서가 아니라 존재로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유기체로서의 건축과 사람에 대한 고민은 제주를 만나 더욱 깊어졌다. 제주 전역이 각양각색의 소재이며, 소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생활이 깃들어 있는 제주만이 가진 독특하고 신비한 오름을 모티브로 유려한 곡선을 머리에 이고 산 아래로 흩어지는 단지를 조성했다.
그는 수평을 중요시하는 건축가이다. ‘흘러가는 물, 수평으로 그리고 입자로’라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다라는 커다란 수면을 몸 가까이에 끌어당기고자 건축의 일부분인 수공간이 수면의 경계를 이루게 하고, 언제나 물이 넘치게 해서 건축의 수면과 눈 밑에 있는 바다의 수면이 연속선상에서 하나로 느껴지는 디테일을 생각했다."
제주에서 만난 오름은 수직으로 솟아올라야만 하는 건축 요소를 배제하고 가능한 약하고 약하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평소 생각을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건축가의 존재감을 점점 지워가는 쿠마 켄고에게 오름은 크고 작고, 높고 낮은 공학적 이분법이 자연의 공식 앞에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를 증명해 보였다.
편백 격자무늬에 매료되다
아트빌라스는 이런 생각들이 모여 완성된 건축 군이다. 치솟거나 반짝이지 않은 고급 건물이 땅속에서부터 나무를 타고 연결되어, 결국 그곳에서 보게 되는 수평의 서귀포 바다는 수면의 움직임을 의식할 수 없는 거리에서도 느껴지는 역동성을 담고 있다. 동네 뒷산 같은 크기 속에 담은 생물 다양성처럼, 그에게 제주 오름은 거대한 파고였다.
내부의 모습은 초가를 엮듯 원목 각재를 엮어서 벽과 천정을 마감했다. 이 격자무늬가 발코니로 이어져 공간을 외부로 이끄는 확장성을 가진다. 격자는 쿠마 켄고가 즐겨 사용하는 디자인이다. 그의 작품인 후쿠오카 다자이후덴만구 스타벅스 매장의 벽과 천정 역시 각재가 서로의 켜를 비집고 들어와 춤을 추듯 엮인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토치기현 아시노 마을의 돌 미술관에서도 돌로 된 격자를 볼 수 있다.
사실 격자는 상당히 비효율적인 문양이다. 수공비가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면적당 가장 많은 부재가 투입되어야 한다. 이것이 플라스틱이나 철 재료가 아니라면 일이 커진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를 뒤로하고서라도 편백나무로 격자 문양에 새긴 이유가 있었다. 격자무늬는 바로 오름의 형상을 빼닮은 제주 민가 초가의 줄엮기 이엉 문양이다. 거센 바람과 견주는 새끼줄은 그리 불러 이름이 새끼줄일 뿐 민가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용마름과 다름없다. 물의 것이라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나 제주 초가지붕에 드리운 격자무늬는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약한 건축의 이면
마스터룸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으면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을 통해 목수의 재단 흔적을 볼 수 있다. 연필선 흔적이 흐트러짐 없이 꼭짓점에 들어맞는다. 쿠마 켄고의 제도 선에 정확히 맞추고자 대패와 끌을 들었을 당시 목공의 수고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침실은 현무암과 편백 원목 그리고 간접조명이 조화를 이루며 최고급 빌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불을 수납하는 스토리지까지 일정한 레벨을 보여주고 있다. 나무 공간이 보여주는 품격은 적당히 넘어가는 법이 없다. 현무암과 나무의 긴장 관계는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적당한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가 유연하게 풀어 헤치는 역할은 대리석 바닥 몫이다. 현무암과 나무의 충돌을 우윳빛으로 희석시키고 있으나 결국 편백 루바의 고운 살점이 대리석에 비쳐 드러났다.
파우더 공간을 비추는 간접조명은 용암이 지표에서 급속 냉각되면서 나타난 현무암 특유의 구멍까지 세세하게 묘사하며 제주의 지역색을 드러낸다.
반면, 일본 정서가 느껴지는 다다미방은 이곳이 일본인 쿠마 켄고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잠시 다다미방에 앉아 제주의 정서가 역시 섬나라인 일본인과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다.
일본에서 활약한 한국인 이타미 준 역시 일본적인 요소와 한국 정서를 결합한 건축물로 이곳 제주에서 명성을 떨친 건축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는 고전을 통달한 문인이자 건축가였고, 정서의 맨바닥부터 한국인의 피를 이어 받은 부류였다. 그렇다면 이 진짜 일본인 건축가는 일본풍의 장치를 고의적이고 의도적으로 남긴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미칠 즈음 차실 바닥이 다다미가 아니라 한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본에 대한 편견이 오해를 불러왔지만 이 건축물을 사랑하기까지 아직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좀 더 소박하게, 좀 더 낮은 문턱을 말이다.
나무는 성공한 사람의 눈높이
쿠마 켄고는 도치기현 돌 미술관이 다름 아닌 조선시대 건축의 영향을 받았노라 고백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나무로 골조를 만들고 회벽을 바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도치기현의 돌 창고는 돌로 창고를 만들었고 일본에서는 농경이나 운송에 쓰이지 않는 말을 사용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 전통이 조선, 특히 제주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신을 밝혀왔다.
“조선의 이름 모를 장소의 고유한 문화가 돌 미술관과 쵸쿠라 광장을 탄생시켰다.” 누구의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영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생활에 활용하는가가 중요하다. 토치기 현의 주민이 조선의 주거 풍습이라고 외면했다면 지금의 미술관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 깨인 눈으로 건축물을 즐기자.
쿠마 켄고는 평소 한국과 일본의 자연관이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삶의 터전이 자연을 결정짓는 것이지 국적이 지배하는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듯 마음을 열고 보니 히노키 욕조와 야외 자쿠지 또한 이해가 된다. 놓여야 할 곳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면 편견 덩어리는 바로 저 자신이다.
아트빌라스가 가진 위세는 글로 표현하기에 뭐 한 구석이 있다. 편백나무가 만들어낸 감성 공간을 눈으로 목격하는 것만이 유일한 진실이 된다. 그러나 하룻밤 묵기에 지불해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기에 고민의 끝 점이 비싼 숙박비로 귀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의도하지 않은 쿠마 켄고의 '럭셔리‘가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훗날 이곳을 다시 찾을 때 나무는 회색빛으로 변하고 건물은 낡았겠지만 건축사에 남을 이름들 세계 3대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프랑스 출신 도미니크 페로(B블록),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알려진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 디자이너 중 한명인 승효상(A블록) 그리고 이종호(C블럭), DA Global Group(블록)의 명성이 살아있기에 그 감동은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룻밤 묵어가는 것은 개인의 재력이겠지만 외형이나마 건축물을 보기 원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코스이다. 상위 1% VVIP를 위한 명품 리조트라는 광고 문구에 걸맞은 상위 1% 건축가의 건축물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지만, 성공에 대한 갈망도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거부할 이유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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